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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버린 딸들에게

엄마 에세이

by 치유빛 사빈 작가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 쓰레기를 함부로 투척하는 아이는 가정에서 부모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 책 일부분이다. 감정의 쓰레기통이라는 말에 어찌나 섬뜩하고 불쾌하던지. 이 감정이 왜 들었는지 글을 쓰고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받았던 상처의 감정을 치유하지 못한 채 큰 딸에게 대물림이 되었던 사실을 인정했다.


큰 딸이 유치원생일 때 일이다. 이 아이는 나를 닮아 문제나 상처가 속으로 곯고 곯아 터지기 전에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아이였다. "있잖아. 그 친구가 나보고 이거 해주면 이걸 준다고 했고 저것을 해주면 저걸 나에게 준다고 했어"라는 말에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거 같았다. 이건 지시였다. 자신의 지시를 따라주면 보상을 주겠다는 말과 같았다.


내가 어떻게 키운 아이인데. 내 목숨과 맞 바꾸려고 했던 아이에게 감히 누가 자신의 좋지 않은 감정을 내 아이에게 투척하는지 정말 화가 났다.


그렇다고 섣불리 행동은 자치 잘못으로 오해를 살 거 같아 일단 아이가 세 번 정도 같은 말을 하면 유치원에 말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아이를 기다렸다. 엄마 속은 타 들어갔다. 상처를 쉽게 받는 아이라서 나와 너무 닮아서 하루하루가 피가 말라갔다.


결국 아이는 연달아 말했다. 모든 것이 친구 딸이 우선이 되었던 유치원 생활이 힘들었다고 말하는 아이의 눈망울에는 눈물이 고였다. 더는 방치할 수 없어서 유치원 원감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내 아이에게 감정 쓰레기통으로 생각한 아이는 바로 나와 절친이었던 친구의 딸이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유치원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서라도 기분 나쁜 감정을 친구에게 표현하면 어떻게 되는지 이거 해주면 너의 소원 들어줄게라는 지시적인 말은 친구사이에 있을 수 없는 거라고 교육해달라고 강경하게 요청했다.


그때 그 유치원은 상황극을 자주 했다. 상황극을 이용해서 교육을 해달라고 요청하고 나서 내가 나서야 할 차례였다. 친구 사이가 멀어지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친구는 아이가 세명이었고 늘 짜증이 가득했고 그 짜증을 큰 딸에게 아침마다 했던 것을 내가 모르는 건 아니었다. 설마가 크게 화가 되고 말았던 날. 아직도 심장이 떨린다.


하필 같은 유치원을 다니겠다며 입학서를 낸 친구를 바라보며 조금은 마음이 불편했다. 친구 둘째는 사내아이라 친구말을 좀처럼 듣지 않았고 아침마다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말을 매일 듣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친구는 아침마다 잔소리 퍼붓고 짜증스러운 말투를 딸이 들으면서 원에 등원했다. 늘 가해자는 친구 딸이었고 피해자는 아들이었다. 거기에 부부관계는 좋지 않아서 친구의 심리적으로 지쳐 있었다. 엄마에게 받은 감정을 풀기 위해 친구 큰 딸은 자신보다 만만해 보이는 친구를 골랐고 그게 바로 내 딸이었다.


"너 지금도 아침마다 큰소리치며 아이들을 등원시키는 거야?"

"그건 왜 물어봐"라고 친구가 되물었다. 모르는 거 같아 사실대로 말을 했다. 큰 딸이 너에게 받았던 상처나 기분 나쁜 감정을 내 아이에게 한다고 그러니 아침마다 화를 내지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면서 너도 피곤하고 힘든 거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굳이 딸에게 아침마다 화낼 필요는 없지 않으냐고 네가 낸 짜증을 받고 등원한 나은이 입장을 한 번쯤 생각해보았냐고 물었다. 친구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는 이어 나은이가 받았던 상처가 아무래도 유치원 친구에게 화풀이를 하는 거 같다고 말했다.


친구는 나에게 미안하다 사과는 하지 않았다. 기분이 상당히 나쁜지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해한다. 자신의 자식에 대한 말을 들었으니 그러나 친구가 냉철한 판단을 하기를 바랐다. 어색해진 분위기가 지속되었고 다음에 만나자며 각자 볼일을 봤던 날이 기억난다. 그 후로 친구와의 사이는 멀어졌고 가까이 지낸 것을 후회하며 거리를 두게 되었다.


최후의 방법은 유치원 반을 옮기는 일만 남아 있었다. 내 아이는 힘들다고 말했고 원감에게 아이를 다른 반으로 옮겨달라고 말했다. 아이도 그걸 원했다. 딸이 그 친구와 멀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딸 성향은 자신의 힘으로 해보는 데까지 해보고 안되면 도움을 요청하는 아이라서 이내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힘든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원감은 곧 한 해가 마무리되니 반을 옮기는 건 그렇고 담임과 자신이 아이를 잘 보살피며 나은이와 떨어져 유치원 생활할 수 있도록 도울 거라고 했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여리고 여린 아이는 나와 너무 닮았기에 마음에 깊은 생채기가 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다 마음을 바꿨다.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차선책을 선택한다면 앞으로 세상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


나부터 전전긍긍하지 말고 슬기로운 생각과 지혜로운 마음을 가진다면 아이는 엄마 따라 잘 가줄 거라는 믿음으로 몇 개월 남지 않은 6세 반을 마무리하기로 아이와 대화하며 약속했다. 원감 선생님은 나와 통화를 하면서 희니가 유치원 생활이 어려워하면 곧장 유치원으로 알려 달라고 말했고 7세 반은 서로 다른 반으로 갈라놓겠다는 약속을 했다.


딸은 5살 무렵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또 이런 일이 일어나니 엄마인 내 심정은 타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딸들은 어김없이 엄마가 지나온 길을 비슷하게 걷고 있었음을 깨달았고 육아 서적을 뒤적일 때가 이때였다. '배려 깊은 사랑이 행복한 영재를 만든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원하는 문장이 띄지 않았고 공감되지 않았다. 자꾸만 가슴 아픈 상처가 책을 읽을 때마다 솟구쳤다. 결국 책 절반을 읽지 못하고 덮었던 기억이 난다. 아직 집에 책이 있다.


친구의 딸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이고 있었음을 그때 충분히 알고 있었고 그걸 피해보려고 무던히 노력했건만 그건 노력일 뿐 내 아이가 처한 상황, 여섯 살 아이가 겪어야 했던 친구관계는 어려웠고 힘들었음을. 내 아이를 위해서 내 친구와 절연을 하는 것에 아쉬워하지 않았다.


심리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큰 딸을 낳고 인간관계로 상처를 입은 일들이 자꾸 튀어 오른다. 나와 내 아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나를 질책하고 수치스러워 숨겼던 그때의 상처. 열세 살 나의 어린아이가 어느 정도 울음을 그치니 서른 살 어른이 울고 있었다. 열세 살 어린아이를 보듬어 주기까지 3년이 걸렸는데 서른 살 어른을 안아주고 떠나보내려는 기간이 얼마나 될지 줄어들지 길어질지 모른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머리가 어지럽고 몽롱해지고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저하게 상처를 입히고 받았던 과거를 회상하는 일은 무지 아프다. 그렇다고 숨겨둘 수 없는 시기가 왔나 보다. 늦기 전에 서른 살 엄마가 울고 있으니 말이다. 최희수 소장은 그랬다. 내면을 직시할 때마다 어지러웠고 무기력해졌다고. 지금 내가 그렇다.


수없이 싸내려 간 열세 살 어린아이의 분노. 열세 살 어린아이를 보듬어주고 떠나보내기까지 힘들었다. 가슴에 멍이 들 때까지 두들기며 울었고 가슴 아파하고 억울해했다. 슬픔을 떠나보내기 위해서 실컷 슬퍼해야 한다고 했다. 억울한 사건, 슬픈 사건, 분한 사건을 대면하면 할수록 머리가 아파서 이어질 수 없다.


실컷 슬퍼하지 않았고 분노하지 않았기에 고인 감정은 썩어버렸다. 고인 감정의 냄새는 맡을 때마다 역겨웠고 통증이 유발된다. 인간관계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나를 안아주지 못했다. 방치하다 가장 가깝다는 남편에게 공감을 얻고 싶었지만 비난을 받았던 거 같다. 이 감정이 그대로 내 안에 잠들었다는 것이 놀랍다. 잊힌 줄 알았기에.


정말 딸은 엄마 감정을 먹고 자란다는 말이 틀림없다. 잊어버리고 무의식적으로 지워버린 딸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내 감정에 충실하지 못하고 책임지지 않았던 그 시절. 다양한 감정으로 나를 대했던 사람들은 아마도 내가 나를 그렇게 대하고 있었기에 만만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들의 감정 쓰레기를 나에게 투척했고 나는 나에게 잘못이 있어 그들이 이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했고 나를 다그치고 질책하며 더 잘하려고 노력했는지 모르겠다. 결국 배신으로 얼룩진 상처가 마음 한 구석에 덕지덕지 붙어 수면 위로 하나씩 튕겨져 나온다.


서른 살 그 여인 엄마가 처음이었고 성숙하지 못했기에 열세 살 아이의 상처를 끌어안기가 부족했을 것이다.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취급한 그들을 모르는 채 했다. 그들과 함께 하고픈 마음에 그들 잘못도 내 잘못이라고 받아 들었던 그 여인은 인생을 배우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어지러웠던 머리는 조금 안정을 찾았다. 말이 되든 안되든 써 내려간 분노와 상처를 보면서 인정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몰라서 그랬던 거라고 금쪽같은 내 새끼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내 아이에게 상처를 준 그 아이를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을 보았고 내 친구를 미워하는 마음을 보았다. 용서받지 못해서 억울해하는 서른 살 여인을 내가 보듬어 줄 차례다.


그 친구 역시 자신의 감정 쓰레기를 귀한 아이에게 준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 친구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모든 것이 처음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이젠 10년 전 끊긴 인연을 놓아주어야 한다. 그 친구는 자신보다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간 나를 멀리했으니 말이다.


상처가 많아서 인간관계를 끊고 고립된 상태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잘못된 선택까지 덤으로 얻었다. 참 다행이다. 이 정도에서 곯아 터진 상처를 바라볼 수 있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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