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에세이
설 연휴 때 최강 한파로 아랫동네인 경상도 부산은 얼음이 꽁꽁 얼고 바람까지 불어 체감 온도는 영하 20도까지 되는 듯했어요. 결국 한파로 여니는 목감기가 온 건지 설 당일 목이 아프다고 했었죠.
엄마가 설은 함께 아침 먹자고 해서 오전 10시쯤 갔었거든요. 근데 까불이 여니는 놀지 않고 눕거나 말이 사라진 거예요. 오후에는 엄마는 자신의 친정집 간다고 가고 우리 모녀는 집으로 향했어요.
집에 오자마자 목이 아프다고 하더니 제치기와 콧물이 나는 거예요. 빨간 날이 많아서 병원은 못 가고 집에서 민간요법으로 배숙을 만들어 배즙을 먹였죠. 사실 배숙은 20년 전 한식을 학원에서 배웠는데요. 조리사 기능 시험에 나오는 요리 중 하나였죠. 배숙은 임금님이나 왕이 자주 먹었던 음식이라고 해요.
조선시대는 약이 없었잖아요. 민간요법으로 왕을 보좌했다고 하니 얼마나 효과가 크겠어요. 집에 목감기 약도 없고 민간요법으로 하루에 한 번 정도 배숙을 마시게 했는데 확실히 효과가 있는 듯했어요. 심한 기침을 막을 수 있었고 아프다고 한 목은 차츰 좋아졌죠.
설 연휴로 나흘을 쉬었지만, 등원하지 않고 하루 더 쉬었고 병원을 찾았어요. 단순히 비염이라고 판단한 선생님은 콧물 약만 처방해 주셨죠. 그 약을 먹은 후 여니는 피곤하다며 이내 잠들었어요. 자신도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면서 누우면 금방 잠이 들더라고요. 하루 더 쉬지라고 말하니 이제는 유치원 가고 싶다고 해서 5일을 쉬고 등원했어요.
배숙 효과인지 모르겠지만, 여니는 씩씩하게 등원을 했습니다. 목이나 몸이 으슬으슬 아프다고 느끼면 배숙을 먹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 거 같아요. 배숙 만드는 방법은 유튜브나 다른 인플루언서 분들이 많이 공유하고 있지만 저도 한 번 올려볼게요
재료는 배 하나, 꿀, 도라지, 생강, 대추이지만 꼭 필요한 건 배와 꿀, 도라지만으로 충분했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아이가 먹을 거라 생강을 제외했어요. 아주 섬세한 미각의 소유자 여니라서 조심스레 배숙을 만들었죠.
후각조차 섬세해서 도라지도 아주 소량만 넣었어요.
배는 중간을 파야 해요. 잘 파야 해요. 잘못하면 밑동까지 파지거든요. 이건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기니 너무 염려하지 말고요.
씨가 있는 부분을 파내고 나면 먹을 수 있는 배를 썰어 파낸 배 안에 넣고 꿀 한 스푼 넣고 도라지 넣고 꿀을 넣으면 되어요. 첫날은 꿀을 너무 넣었더니 달아서 먹기가 불편했고 한 스푼이 적당했어요. 이건 배숙을 만들어 즙을 내고 맛을 보면 알아요. 부족한 간은 다시 하면 되니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찜기에 배를 올려서 찌면 되는데 두 시간가량 찌면 배가 물렁물렁해져 으깼는데 힘들지 않았어요. 첫날에는 한 시간 정도 쪘더니 배가 익지 않아 으깼는데 힘이 들었어요. 즙도 많이 나오지 않았고요.
두 시간 정도 쪄내고 나니 한 컵가량 배즙이 나왔고 한 시간 쪄낸 배숙은 반컵 정도 나왔어요. 이건 참고하세요. 아이가 먹을 민간요법은 내 아이 성향을 잘 알아야겠죠.
영상 찍는 것이 벅차고 사진 찍는 것도 귀찮아서 대충 찍고 말았어요. 자세한 내용이 알고 싶다면 다른 분들 영상을 보면 됩니다. 저는 말로 설명하는 거라 이해가 안 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요리라서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강조해요.
첫날은 너무 달았고
둘째 날은 싱거웠고
셋째 날은 달달하니 먹기 딱 좋았어요.
도라지 향이 약간 나니 후각이 섬세한 딸은 먹기 싫다고 오만가지 인상을 쓰는 거예요. 그때 훅 올라온 내면 아이가 말합니다.
"엄마는 어릴 때 아프면 할머니가 배즙을 안 해줬어."라고 말하고 말았죠. 나의 내면은 '아픈 엄마를 할머니는 정성스레 공들어 배숙을 해주지 않았으니 넌 엄마에게 고마워하며 마셔라'라는 암흑적인 압박과 감정이 모두 담겨 아이에게 전달을 했던 거죠.
여니는 엄마 말을 듣고선 '이거 안 마시면 잔소리 폭격이 날아오겠지' 생각했을 거예요. 배숙을 만들고 나면 설거지가 굉장히 많이 나오거든요. 설거지를 끝날 무렵 여니는 배즙이 담긴 컵을 가져다주었고 "엄마 나 다 마셨어. 버리지 않았어. 참말이야" 말하며 웃었어요.
보호받아야 할 어린 시절 내면 아이는 늘 쓸쓸하게 지냈다는 것이 감정으로 올라왔어요. 아이와 함께하면 내가 몰랐던 아니 애써 지워버린 쓸쓸한 감정을 억눌려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배 하나로 만든 배숙으로 내면에서 홀로 울고 있는 아이에게 배숙을 주며 다독이는 날이 되었어요. 늦은 육아를 하며 불쑥불쑥 튀어 오르는 용수철 내면 아이. 과거 나라면 억압했을 감정을 이제는 애쓰지 않고 다독이는 내가 되어 갑니다.
아이만 먹이지 말고 나도 마시면서 서러웠던 과거를 지우개로 조금씩 지워 나가는 거죠. 형제 중 가장 많은 보살핌을 받은 나지만 (다른 형제들 시각으로) 오히려 다른 형제보다 큰 상처를 받은 나는 오늘도 끊임없이 내면 아이와 대화를 시도하며 다독이는 날이 되겠어요.
두 시간 쪄낸 배숙은 한 컵 정도. 딸과 엄마 그러니깐 딸을 시기 질투하는 나의 내면 아이 열세 살과 나누어 마시며 그때 그 시절 상처를 안아봅니다.
여덟 살 아이가 마실 수 있는 배숙. 약보다 몇 배 더 몸에 좋은 배숙. 일단 약과 함께 배숙을 먹이면 효과는 몇 배 더 효과를 봅니다. 엄마가 조금만 힘을 내면 우리 가족 건강을 지킬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