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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인 아이와 감성적인 엄마의 대화 방식

엄마 에세이

by 치유빛 사빈 작가


"엄마! 저기 봐봐. 장미꽃이 피었어"

"정말이네. 벌써 폈네. 아직 추운데 장미는 봄을 알리고 있어. 여니야 잠시만. 엄마 사진 찍고 올게"

오늘 아침에 본 장미꽃이에요. 음지에서 찬바람을 이겨내고 화려하게 피어오른 장미.


"버스 오나 봐. 어서 와"

여니의 외침에 뒤돌아보니 유치원 버스가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고 있었죠.


"친구들과 재미나게 놀다 나중에 보자"

"응. 엄마. 안녕"

아침마다 아이와 날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해요. 왜 이렇게 추운 건지? 왜 이렇게 더운 건지? 에 대한 대화는 유치원을 다니고서부터 시작되었어요.


유치원에 다니지 않을 때는 이른 아침에 나올 일이 없었으니 말이죠. 여니가 태어나고 6년이 흐른 후 사계절 아침을 매일 느끼면서 현재 기후에 대한 이야기까지 연결되었다는 것이 참 의미가 깊어요.


"여기 이렇게 쓰레기 버리면 지구가 아파하는데 왜 어른들은 몰라?"

"그러게 말이야. 주머니에 넣어뒀다가 집에 가서 버리든지. 엄마도 속상해. 지구가 아파하는데 어른들은 왜 그럴까?"

"선생님이 그랬단 말이야. 쓰레기를 아무렇게 버리면 지구가 아파해서 아름다운 계절을 볼 수 없을 거라고. 다른 사람이 이렇게 버린 쓰레기 우리가 주워서 버리자. 집게랑 쓰레기봉투를 항상 가지고 다닐까?"

"그래 알았어"


여니는 어느 순간 지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자동차 배기가스에 대한 이야기까지 했어요.

저는 그저 무심결에 본 자동차 배기가스가 아이에게는 지구를 망친다는 걸 알고 있었고 눈여겨보며 "저 차는 연기가 안 나는데 왜 저 차는 연기가 나와"라고 물었죠.


"차가 너무 오래되면 연기가 나오는 거 같아"

"그럼 차를 바꿔야지. 지구가 아파하잖아"

"차를 바꾸려면 돈이 많이 들거든. 그래서 자주 못 바꿔. 완전히 망가지기 전까진 차를 바꿀 수 없어. 울 딸 지구에 관심이 많네. 그럼 엄마가 운전면허증 발급받고 차를 사면 지구가 더 아파할 건데 괜찮아?"

"그건 아니지. 차 사지 마. 그냥 걸어 다닐게. 지구 아픈 거 나 못 봐"


기특한 여니는 엄마를 또 한 번 감동하게 해요.


장미 새순





자연의 신비를 알아버린 아이는 지구가 아파하면 이쁜 장미도 볼 수 없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사라져 뜨거운 여름만 남게 되는 건 싫다고 했어요.

아이 말에 어른인 저부터 재활용 쓰레기부터 줄여보자고 다짐했어요. 어른 혼자는 쓰레기가 그다지 나오지 않지만 아이와 하루만 지내면 쓰레기통은 금세 차버리죠. 이걸 보며 저는 또 아이에게 훈계를 합니다.


"여니가 쓰레기를 줄이면 지구가 덜 아파해."

"왜?"

"이 많은 쓰레기가 어디로 가겠어. 대한민국 사람들이 쓰레기를 많이 내면 지구는 그 쓰레기를 처리하지 못해 힘들어하지. 그러니 꼭 필요할 때만 휴지를 사용하고 꼭 필요할 때만 종이를 찢어서 쓰고 꼭 필요할 때만 일회용을 쓰는 거야"

"알겠어"


그 후로 아이는 반나절만 되면 작은 쓰레기통이 차버렸는데 지금은 며칠이 지나도 쓰레기통은 차지 않았어요. 환경 보호, 지구 아끼기 사랑은 나와 아이에게 지켜야 할 덕목 중 하나가 되었어요. 점점 병들어 가는 지구를 지키면 이 아름다운 봄을 잃지 않을 테니 말이죠.



활짝 핀 장미



온몸을 얼어붙게 만든 시린 겨울이 있으면 벚꽃 향이 피어오르는 봄이 기다리기에 겨울을 이겨낼 수 있잖아요. 불구덩이 속처럼 화끈거리는 여름이 있으면 시원한 바람이 간간이 불어주는 가을이 기다리고 있어 여름을 잘 이겨낼 수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사계절이 참 고맙고 아껴야 할 이유가 되겠어요.


젊은 나였을 때는요. 더운 여름도 추운 겨울도 참 싫었어요. 추위를 참 많이 탔거든요. 패딩 하나로 안되던 저는 윗옷만 3~4벌을 입어야 했고 아래옷도 3벌 정도 입어야 했죠. 옷 무게로 어깨는 내려앉는 듯했고 활동하기가 둔해서 겨울이 싫었고 여름만 되면 아팠어요.


죽을똥 살똥만큼 아파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어요. 그래서 여름은 그저 죽은 사람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살았어요. 인공 바람은 더욱더 싫어 에어컨 바람을 피하다 더워서 헉헉대던 옛 생각이 나요.


지금은 여름보단 겨울이 낫고 예전처럼 옷을 몇 겹씩 입지 않아도 될 만큼 건강해졌어요. 발끝과 손끝이 시려도 참을 수 있었던 건 곧 봄이 우리 곁으로 찾아오니 이겨낼 수 있었던 거 같아요.


현실만 생각하는 아이와

사계절 앞에서 감성적인 엄마의 대화는 현실과 감성적 그 어디쯤에서 대화가 마무리됩니다.


시큰거리는 겨울, 온몸이 얼 정도의 북극 한기가 찾아오더라도 따스한 햇살을 맞을 수 있는 봄을 기다리기에 이겨 낼 수 있는 거예요. 저기 장미처럼 말이죠.


추워도 자신이 피어야 할 계절에는 어김없이 찾아와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잖아요.

저도 장미꽃처럼 어김없이 찾아오는 사람이 되어 언제 어디서나 환하게 웃게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내가 머문 자리에 향기가 나도록,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 중입니다.


금요일 오늘은 잔뜩 흐리네요.

내일부터 비가 온다고 하죠. 아마 봄을 재촉하는 비가 될지 모르겠어요.


요즘 쓰는 소설이 있는데 방향이 어디로 잡힐지는 써봐야 알 거 같아요. 생각나는 대로 문득문득 쓰는 거라서요. 사람은 꿈이 있어야 되는 거 같아요. 꿈이 있다면 늦더라도 그 길을 찾아 떠나게 되거든요.


불금이네요. 모두들 장미 향 가득 싣고 금요일을 맞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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