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혼 후 더 근사해졌다
어제저녁 아이에 대한 감정을 놓친 것이 있었습니다.
화장실 다녀온 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겁에 질린 아이 얼굴을 보는 순간 화가 났고 당황했습니다.
딸 말을 듣지도 않고 버럭 화를 냈으니 아이 입장에서는 얼마나
황당하고 놀랐을까요?
이튿날 아이를 등교시키고 집으로 오면서 골목길에서 문득
아이가 왜 울었는지에 대한 감정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하교하면 물어봐야지. 내가 화낸 이유를 여니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너에게 화낸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지'
교문 앞에서 아이를 만났습니다.
"엄마" 하며 내 품에 안기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버스 정류장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제가 물었습니다.
"어제 엄마가 화내서 놀랐지. 왜 울었어?"라고 물었더니
"응가를 했는데도 배가 아파서... 너무 놀라서 울었는데 엄마가
화를 낸 거야"라고 하더군요.
"사실 엄마가 화낸 이유는 여니가 우는 이유가 옷에 묻었거나
화장실 바닥에 너도 모르게 응가를 해서 미안한 마음에 울은 줄
알고 버럭 화부터 냈어. 미안해. 배 많이 아팠어?"
"응. 응가를 했는데 왜 배가 아파? 응가하면 배가 안 아플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아팠어. 그래서 놀라서 울었는데..."
"미안해. 울었던 이유는 배가 아파서 울었고 엄마한테 지금 너의 상황을
알리는 거였네. 말로 하면 더 좋았을 텐데. 다음부터는 울지 말고 놀라지 말고
엄마한테 와서 말을 해줘. 응가했는데 배 아파라고 알았지.
그러면 엄마도 화를 내지 않고 여니의 현 상황을 파악할 수 있고
너의 마음을 알 수 있어" 말했어요.
여니는 알겠다며 다음부터 울기 전에 말부터 한다고 약속했죠.
이렇게 저는 아이와 생활하면서 나의 감정과 아이의 감정을
서로 공유하며 공감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아이가 운 그날 밤 화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어요.
그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단 하나, 나처럼 아프면 안 되는데 아프다고 하니
속상한 마음은 알겠더라고요.
글을 쓰면 쓸수록 나의 잘못을 알아차리기 쉬워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자식에게 공유하지 않고 살았죠.
자신이 다 해결해야 하고 자식에게 말하는 건
수치스럽다고 느꼈던 거 같아요.
저는 여니에게 말합니다. 현재 경제 상태나
관리비가 얼마 나왔는데 조금 더 아끼자고 말합니다.
엄마는 저에게 그리고 여동생에게 그런 사정을
말하지 않았고 탓으로 돌렸어요.
"머리 감을 때 샴푸를 적게 써라.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그만해라"등 잔소리 아닌 잔소리만
열거했었어요.
원인을 말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샴푸가 비싸. 그러니 조금씩 쓰자.
아껴 써야 돈을 아낄 수 있고 부자가 돼"라든지
"냉장고 문을 계속 열었다 닫았다 하면
전기세도 많이 나오지만 냉장고 안에 있는
음식물이 상할 수 있어. 꼭 필요할 때만 문 열어"
설득할 수 있는 말을 해줬다면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않았을 거예요.
엄마 세대는 몰랐기에 자식에게 집안 사정을 말하는 건
부모 체면이 서지 않았던 거 같아요. 그리고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다고 자식을 과소평가를 하고 맙니다.
만약, 엄마가 결혼자금을 모으지 못한 사정을 맏이인
나에게 말했다면 결혼 준비하면서 어른들 사이에서
힘들어하지 않았을 거예요.
생활비를 번 사람은 오직 맏이인 저뿐이었어요.
10년을 회사에 다니면서 벌어다 들인 월급이
꽤 컸어요. 하지만 엄마는 돈만 벌어달라고 했지
현재 집 사정을 말하지 않았고 결국 딸들과 엄마
사이에 불편한 관계가 되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책에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