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혼 후 더 근사해졌다
요즘 책을 홍보하는 일에 몰입하다 보니
다른 걸 놓칠 때가 있어요.
가령 아이의 마음과 나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 흘려보내는 일이지요.
봄은 봄인데 여유가 없다는 것이 현재 봄이고요.
여니는 '여행 가자 놀러 가자' 떼를 쓰는데
제가 마음에 여유가 없다 보니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게 되더라고요. 참 웃기죠.
여유가 없으면 한가한 소리 하는 사람을
쥐 잡듯 미워하는 마음이 드는지...
상대 마음을 공감하면서 현재에 대해 말하면
될 것을 화를 내고 짜증을 내다니.
사람은 두 가지 일을 못하는 동물이어서 그런가 봐요.
집안 살림과 여니 케어 거기다 책 홍보를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감.
자고 일어나면 개운해야 하는데 어깨와 목은 뻐근해요.
생각이 많고 걱정거리가 많아서 자면서도
걱정한 이유일 거예요.
어제 오후 부랴부랴 작성한 홍보물 카드 뉴스입니다.
사람들은 왜 이혼이라는 걸 숨기며 살까요?
굳이 말하면서 살 필요는 없지만,
또 굳이 숨길 이유도 없는 듯해요.
저는 여니에게 말했어요.
가족 형태가 다른 친구 집과 다르다고요.
여니도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보고 들은 것들이 있을
것이고 영상물이나 티브이를 보더라도 가족이라면
엄마, 아빠가 한 공동체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근데 제가 아이 눈 가리고 아옹하기는 역부족이었죠.
제 시대는 엄마가 숨겨도 자매는 거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어요. 아빠 사랑을 태어나는 순간, 아니 엄마 뱃속부터
느끼지 못했거든요.
그냥 아빠만 없으면 엄마와 자매가 웃으며 살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으니깐요. 저는 온전한 가족형태를 원하지
않았어요. 그저 마음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 저였으니 말이죠.
근데 지금은 내 시대와 아이 시대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아이에게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아이는 아이대로 오해하고 자신 멋대로 생각하고
재단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죠.
한참 심리센터에 다녔을 때 여니
담당자 선생님께 여쭤봤어요.
선생님은 그러더군요.
"아마 아이는 알고 있을 거예요. 엄마가 말하지 않아
자신도 말하지 않고 있을 테니."
선생님 말에 울컥했었죠.
여리고 여린 아이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는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저의 마음이 쓰리고
아려와서 울컥했어요.
여니는 어느 순간 외할머니 집에 찾아오던 아빠가
보이지 않았고 천안 집에 있었도 아빠는 보이지 않았기에
직감적으로 알아차렸을 거예요.
어른들 대화를 안 듣는 척하면서 다 들었던
여니였고 지금은 유치원이다 학교다
해서 아이 없는 틈을 통해 엄마와 대화를 하지만
4년 전에는 엄마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여니였기에
아이 앞에서 이런저런 말을 했어요.
아이 앞에서 할 소리 못할 소리를
다 하다 보니 아이는 간접적으로
다 들었던 것이지요.
외할머니의 하소연 같은 넋두리도 여니는 다
듣고 기억하고 있었으니깐요.
6살이던 여니에게 말했어요. 심리센터 선생님께서 말하는 것이
아이 마음을 안정시키고 현실을 인정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하셨거든요.
"엄마와 아빠는 헤어졌어. 너도 알고 있었지?"
"응"
"엄마와 아빠가 사랑하지 않아서 헤어졌지만
여니 아빠로서는 남아 있어. 여니가 아빠 보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 볼 수 있어. 그러니 여니 감정이나 마음을
엄마를 위해 외면하지 말고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 만나고
싶으면 만나고 싶다 솔직하게 엄마에게 말해줘. 알았지"
"이혼이 뭐야"
"이혼은 엄마와 아빠가 헤어져 살아가는 거. 지금 우리 집처럼.
근데 여니야 다른 친구들은 아빠가 있는 모습에 부러워?
여니 옆에는 엄마가 있는데 부러워?"
"난 아빠 보고 싶지 않아. 엄마만 내 곁에 있으면 돼"
"정말, 여니가 중학교 언니가 되고 고등학교 언니가 되어서
아빠가 보고 싶다면 언제든 만날 수 있어. 이건 약속할게"
"알았어"
이혼했다고 좌절하거나 우울해하며 보낼 시간이 없었어요.
폭언과 폭행이 난무하는 온전한 가정보다
마음 편히 지내며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들에
제재받지 않고 지원받으며 지내는 가정이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훨씬 낫다는 생각이 컸어요.
저의 유년 시절 바뀌지 않는 사람 마음을 잡아보겠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 엄마 모습을 볼 때마다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외도, 노름, 폭행, 폭언이 난무하던 집은 겉모습 보기에만
온전한 가정처럼 보였지 속을 들여다보면 피 터지게
싸우고 있었으니깐요.
눈에 멍이 든 엄마 얼굴을 아침에 보고서 화가 났어요.
미련 없이 훌훌 털어버리고 이 자리에서 박차고 나가지.
무슨 미련으로 이 가정을 유지하려고 저럴까? 엄마
마음을 이해하기보단 처절하게 무너져 있던 엄마 얼굴과 몸에 난
상처와 멍을 보고 있노라면 우울감이 저절로 왔어요.
결혼을 도피처로 생각했던 2002년.
저의 첫 결혼식이 있던 날입니다.
새아빠보다 인성이 바른 사람이라서
선택했는데 살아보니 친아빠와 유사하게
닮은 사람을 선택한 것이지요.
병이란 병을 다 가진 채 이혼을 하면서
머리카락 한 톨까지 숨기며 살았어요.
왜냐고요?
엄마를 잘 아는 이들이 친정엄마 팔자처럼 맏이도 똑같네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엄마 지인, 내가 알고 있는 지인을
피해 다녔고 외갓집 식구조차 만나지 않게 되었죠.
숨죽여 지내야 할 곳은 내가 태어난 곳이 아닌
다른 곳이어야만 한다고 오류를 범했고
엄마가 있는 곳에서 먼 곳으로 떠납니다.
이혼 단어가 무서워 도망쳤어요
숨기고 살던 어느 날 두 딸이 보고 싶어
밤마다 기도했던 것이 우주가 알았을까요?
병든 몸에 새 생명을 주셨죠.
두 번의 유산, 내 몸에서
여리고 여린 새 생명은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있던 그 순간
기적적으로 새 생명이 찾아왔고
아픈 엄마라도 좋으니 자신을
세상으로 나오게 해달라고
제 손을 꼭 잡았어요.
보지 못하는 두 딸을 그리워하지 말고
지금 곁에 온 아이를 두 딸에게 주지 못한
사랑을 주라고 우주가 메시지를 던지는 듯
했어요. 제 목숨 바쳐 여니를 출산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또 다른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고
지금은 두 번의 이혼이 자랑스럽습니다.
여니는 보지 못한 언니가 있다는 걸 알아요.
언젠가는 보게 될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사는데요. "그래! 언젠가는 언니들을 만날 수 있을 거야"
여니에게 말해줬습니다.
여니를 위해서
보지 못하는 두 딸을 위해서
제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나는 이혼 후 더 근사해졌다 책은
이 세상 딸들에게, 엄마에게, 여자에게
그리고 한 부모 가정의 가장에게,
저보다 더 많이 아픈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어찌 보면 '여자'라는 단어가 통일감을 줘요.
딸의 인생, 엄마의 인생, 맏이의 인생이 담긴 책
나는 이혼 후 더 근사해졌다
여자라서 고달프지만 고달프다고 말하지 않을게요.
남자도 고달픔이 있으니 말이죠.
여자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한 부모 가정의 가장이자
엄마 그리고 딸인 그대여 정말 위대하고 위대합니다.
이혼은 전염병이 아니라
이 사회에 한 가정의 일원으로서
당당한 가정입니다.
부부가 키워도 힘든 육아를
오롯이 여자 힘으로 키워내는 그 힘은
모성애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지요.
저 또한 모성애로 여니를 키우고 있고
보지 못한 두 딸을 위해서 힘을 내고
있어요. 과거가 수치스러워한다면
이 길을 가지 않았을 것이고
숨어 지내고 있었겠죠.
딸들이 나를 찾지 못하게 지구
저편에 숨어서 지냈을 겁니다.
지금은 여니가 힘을 줍니다.
'엄마 할 수 있어. 힘내. 내가 옆에서
응원해 주잖아. 힘들면 여니 손잡아'
힘을 주고 용기를 줍니다.
싱글맘이여! 그대들은 위대하고 위대합니다.
우리 손잡고 이 세상을 즐기며 살아가봅시다.
꿈과 용기를 줄 책 '나는 이혼 후 더 근사해졌다' 많은
위로를 받고 힐링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