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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Jul 14. 2023

천국에 띄우는 러브레터

엄마 에세이

여기는 장마로 비가 많이 오는 날들이 많아지고 있어.

하늘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겠지.

이렇게 비가 쏟아지면 너는 너의 아이를 자가용으로

등교해 주던 너의 모습이 떠올라.

너의 딸이 비바람을 뚫고 학교 가는 모습을 

바라봐야 하는 너의 지금 심정, 엄마 없이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학교 가는 너의 딸 심정을

누가 헤아려 줄 수 있을까?

오늘은 비바람으로 학교 가는 것도

출근하는 것도 벅찬 날이야.




네가 이곳을 떠나 저곳에 간지도

석 달이 지나고 있어.

어제 문득 네 생각이 나는 거야.

너에게 편지를 쓰려고 노트북을 켰는데 세상에

내가 뭘 적고 있었는지 아니?

이별을 겪어낸 방법을 쓰고 있었어.

엄마나 나나 네가 우리 곁을 떠난

슬픔을 지니고 다니다 엄마는

목감기가 자주 찾아왔었고 

여니는 폐렴과 이유 모를 열병으로

한동안 학교 가지 못했어.

이렇게 우리는 아픔과 슬픔을 몸을 통해

이별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난 잘하던 글과 책을 덮고

내가 해야 할 ppt 자료를 만드는 일도 모두

접고 오롯이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했던 석 달이었어.

여니가 아파서 병원 생활과 이유 모를 열로

 집에서 지냈지.

언니는 언니 나름대로 너와 한 갑작스러운 이별을

이겨냈던 거 같아.

너와 함께 한 오래된 사진들이 보관된 앨범을 꺼내

먼지가 앉은 사진 한 장 한 장 닦아냈어. 그리고 

언제나 어디서나 네가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도록

새로운 앨범에 정리하는 작업을 했지.

그걸 왜 했냐고 너는 물을 거야.

너의 사진을 보면 더 슬프다는 걸 알지만

마음에 묻어두기에는 슬픔이 너무 컸어.

괜찮아. 이미 예상했고 마음의 준비를 했잖아

언니를 다독였지만 역부족이었어.

너와 함께 한 추억을 꺼내 '그때는 그랬지'라며

회상하는 것도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한 방법이며

슬픔을 한결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이라고 하더라.

언니가 한 행동,

엄마와 한 대화,

너와 함께 한 모든 추억을 회상하며

너에 이야기와 

나만의 방식대로 한 행동으로

 한결 편안하게 이별했고

 현실을 인정하게 되었어.

현실을 인정하면 모든 것이 편안해지는 마법을

너를 통해 또 배우게 되었다고 말해주고 싶어.

언니도 인간인지라 문득 너의 모습을 떠올라.

언니 집 거실 중간에 누워있던 너의 모습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웃었던 그 시간을 되돌리게 되네.

아직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가 봐.

오래가지 않을 거야.

너를 잊고 살아가지 않을 거거든.

네가 우리 곁에 있었을 때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기쁜 일이 있을 때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어.

"오늘 작은 딸이 있었다면 참 좋아했을 건데"라는 엄마의 

절절한 심정을

"이거 현이가 좋아하는 음식인데 생각난다. 여기 함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라는 언니의 말이 너에게 닿기를 바랐지.

항상 어디를 가든 무엇을 먹든 좋은 것이 있다면

너를 떠올리며 기다렸어. 지금도 마찬가지.

육신은 이 세상에 없지만 추억은

 기억 속에 고스란히

살아서 숨 쉬고 있어.

그러니 너를 잊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 말고

거기서 행복한 나날들만 보내기를 이 언니는 

바라고 있어.

참 많이 아팠어. 내 동생

참 많이 외로웠어. 내 동생

참 많이 사랑을 고파했어. 내 동생

참 많이 슬퍼했어. 내 동생

참 많이 참았어. 내 동생

이제는 참 많이 다음 단어가

행복했어, 설레고 있어, 기뻐

충만해, 충분해 등 다양한 긍정 언어로

새로운 세상에서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즐기기를 바랄게.

아참 이건 고자질인 거 알지만,

너의 반쪽 제부는 신난 거 같더라. 

동창들과 놀면서 신났더라고.

너 언니 친구 알지. 친구들이 모두 똑같은 말을 해.

"죽은 사람만 손해야"라고..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아파서 또 눈물이 핑 돌았어.

언니 마음은 조금 더 너를 애도하지.

벌써 친구들과 놀면서 술 마시는 제부 사진을 보면서

화가 났어. 너와 나는 같은 핏줄로

연을 맺었기에 제부에게 섭섭한 기분이 들었던 건 당연한 거지.

제부는 남이니 나와 같은 기분으로 살 수 없잖아.

그렇다고 없는 사람 그리워하며 

폐인처럼 지내라는 말이 아니야.

그런데 섭섭해.

그 섭섭함을 '인정'이라는 단어와

'놓아버림'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어.

그러니깐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걸

알아야 했어. 인정하고 제부를 놓아줘야 한다는 걸

알면서 마음은 자꾸만 서운한 건 어쩔 수 없나 봐.

1년여 동안 제부 혼자 너를 케어하고 집안일을 한다는 건

숨이 벅찬 거라고 알아. 하지만 지금은 흥청망청 술 마시고

노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조카도 입시를 준비하는 고2잖아.

곁에서 아이를 케어하며 안정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닐까?

그 집이 조카 혼자 있을 때마다 무서운 기운으로

혼자 있을 수 없어 너 언니 집에 왔다 곧장

집에 갔잖아. 그런 아이를 밤에 두고

동창 집에서 노는 건 아니거든.

이게 바로 엄마 마음과 아빠 마음일까?

서로 다름을,

서로 인생을,

서로 생각을 인정해야 하는 거지?

그래 그래야지.

언니의 생각이 다른 이와 같을 수 없겠지.





지금 네가 언니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 같아.

"언니야! 걱정해 줘서 고마워.

언니 조카 매 순간 잘 헤쳐나갈 거야.

그러니 걱정 내려놓고 그냥 곁에서 지켜봐 줘"라고.

"언니 알잖아. 내 남편은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고 마는 성격인걸.

그는 그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 알아서 살도록 내버려 둬.

어쩔 수 없어. 자신이 깨닫지 않는다면 곁에서 백날

말해도 못 알아듣거든. 이젠 제부는 언니에게 남남이야.

내가 없으니 말이지.

남이니 남의 인생 신경 쓰지 말고 언니는 언니 가정

지키며 언니 건강 챙겨"라고 언니 귀에 대고 속삭이는 듯했어.

그래 그러자.

우리 쉽게 살자. 

그래 그러자.

우리 가볍게 살자.

그래 그러자.

우리 건강하게 살자.

요즘 부쩍 너의 살결 내음이 맡고 싶어서 예전에

네가 입고 온 옷을 벗어두고 갔거든.

깨끗하게 빨아 놓은 너의 옷을 서랍에서 꺼냈지.

혹 너의 내음이 남아 있을 거 같아서.

근데 말이야!

안 나.

세제향만 그득한 너의 몇십 년 된 옷.

모두가 그러더라.

세상에 남긴 모든 유품을 처리하라고.

언니는 이것만은 안되네.

조금만 더 가지고 있을게.

너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남기려고

너와 내가 40년 넘게 지내온

추억을 어떻게 버리겠어.

조금만 더 간직하는 언니 마음 이해하지?

비바람이 23년 여름을 강타하고 있어.

거기는 날이 좋지?

화창하고 맑은 날이 되어야 해.

잘 지내고 있어.

언니가 또 올게!

2023년 7월 14일 금요일

비바람이 몰아치는 여름 앞에 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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