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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Aug 03. 2023

나에게 안경은 인생의 중반이라는 신호다.

엄마 에세이





시력이 좋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지금도 시력이 나쁜 건 아닌데 노화로 인해

돋보기를 권한 병원 말에 잠시 머리가

멍했어요. 19년도 엄마 집에서 살면서

밤에 스탠드 불빛 아래 책을 봤던 것이

눈 노화가 급격하게 진행되었던 거 같아요.

이미 놓쳐버린 것에 안절부절못하기보단

인정했어요. 왜냐고요.

책을 읽어야 하고 글 작업을 해야 하니

돋보기를 착용하며 수시로 눈을 쉬게 해주고 있어요.

돋보기도 오래 착용하면 시력이 나빠진다고

하니 30분 몰입하고 10분 쉬는 패턴으로

안경 쓰는 것을 즐기고 있거든요.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히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죠.

현실을 인정하고 현실에 벌어진

상황대로 대안과 방법을 마련하면 되는 거죠.

내가 편안하게 대할 수 있도록 말이죠.

피한다고 잃어버린 것을

제자리로 돌리지 못해요.

특히, 건강은 말이죠.

안경은 내가 가진 병과 함께 친구가

살포시 찾아왔음을 알아요.

반가운 손님이죠.

'너의 몸은 점점 익어가고 있는 거야.

그러니 지금 몸과 건강을 소중히

여기며 하루를 내가 가진 소중한 것들에게

감사함을 잊지 말기를' 고요한 내 몸 소리예요.

늙는다는 건 서럽고 우울해지죠.

한편으로 단단하게 익어 가는 나를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거 같기도 하고요.

 아주 작은 글씨가 보이지 않고

희미하게 보이는 현실,

안경이 있어 얼마나 다행이에요.






그동안 내가 잘 살아왔음을 알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하고요.

글을 읽지 않고 글 작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귀한 손님을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지금 나에게 온 귀한 손님은 그동안

잘 살아왔음을 증명하는 거니깐요.

슬프지만 기쁘게 받아들이는 연습.

앞으로도 노화나 노안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할지 모르니 귀하게

찾아온 안경을 쓰면서 연습 중이에요.

소중하고 귀하게 받아들이는 연습 말이죠.

한번 태어나면 한 번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죽음' 단어가 불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자신의 몸을 제대로 바라봐야 할 거예요.

'죽음'은 불길한 단어가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일이죠.

부인한다고 내가 천년만년 살 수 있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창조주가 인간을 창조할 당시 수명이라는 걸

제약을 두셨죠. 평생 산다면 이 지구는 인간으로

폭발할 것이고 아이들은 태어나지 않을 테니 

말이죠. 이 세상에 놀러 왔으니 잘 놀다

잘 떠나면 됩니다.

죽을 때까지 먹어야 할 약과의 대면,

죽을 때까지 써야 할 돋보기의 대면,

그리고 삶과 죽음.

우리네 인생입니다. 노화가 천천히 와줬더라면

지금 현재를 더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거예요. 아니 눈에 대한 소중함을

알지 못했을 거예요.

당연히 난 눈이 좋고 시력이 좋아라고 자만에

빠져 눈을 보호하지 않을 테니까요.

조금씩 노화가 오면서 눈에 좋은 차를 알아보고

마시게 되었고

눈에 좋은 블루베리를 매일 먹게 되니

건강을 더 챙기게 되었어요.

잃은 것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잃은 것에 연민을 두지 말고

잃은 것에 미련을 두지 말고

잃은 것을 위해 더 나은 방법을 찾아

나만의 의미를 부여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즐겁지 않을까요?

한 가지 잃었지만 열 가지 얻게 되는 

마법 같은 인생.

내 눈을 보호하는 안경과 

좋은 먹거리에 초점을 두는 거.

쉽게 취급할 수 있었던 인공 눈물과

눈이 피로할 때 미련을 떨지 않고

내려놓고 쉬는 거.



잃지 않음 얻지 못함의 진리를 건강이든

노화이든 물건이든 다양하게 깨우치게

됩니다. 노화 덕분에 영상보단

귀로 듣게 되고 책과 글은 시간을 정해

그 시간 외에는 건강을 챙기게 됩니다.

그리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게 되지요.

잘 익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잘 늙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당신의 익어가고 늙어감은 어디쯤입니까?

당신의 익음과 늙음 그것을

응원하고 또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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