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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Nov 16. 2023

나의 육아는 새롭게 재 탄생되었다

육아 일지


저의 육아는 큰 딸 초등학교 입학하고 두어 달에서 끝이 났어요. 여니 초등학교 다니는 이 시기에는 내가 해왔던 육아가 아니라서  다시 배우고 있는데요.


사실 육아 시기를 정확하게 말하자면 큰 딸 육아는 아홉 살에 끝났어요. 그런데 내가 왜 초등학교 1학년에서 끝났다고 말하냐면 큰 딸 초등학교 1학년 봄에 제가 아팠거든요.


그 후로 부모들이 아이들 학교와 유치원 육아를 대신해 줬어요. 나는 병원을 오고 가며 병마와 싸우고 있었거든요. 내가 몸이 회복되는 시기가 큰 아이 초1학년 겨울방학 때였어요. 손이 많이 가는 초등학교 1학년과 작은 딸 네 살을 양가 부모님들이 번갈아 가며 보살폈기에 나의 육아는 초등학교 겨울방학과 네 살 겨울 방학에 다시 시작되었어요.


몸이 점점 회복되는 상황에서 다시 병원행을 이어가야 했는데요. 길을 가다 넘어져 발목을 다쳐 뼈가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했어요. 큰 딸 초등학교 2학년 생활과 작은 딸 다섯 살 생활은 또다시 부모님이 맡아줬어요.


수술과 깁스로 인해 거동이 힘들었거든요. 수술은 잘 되었고 발목뼈가 잘 붙어 깁스를 풀고 정상적으로 다닐 때쯤 부부는 각자 생활을 선택하게 되었는데요.


이 시기가 아이들 아홉 살과 다섯 살 때였고 육아를 온전히 했던 건 큰 아이 초등학교 1학년 봄이었어요. 그러니 여니 초등학교 입학 당시에만 몸이 기억했죠. 신기했어요. 여기까지가 나의 기억이자 무의식이었다는 것을요.


여니 학교생활을 이어가는 지금 오늘이 수능시험일이라고 학교에서 공지를 했어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수능치는 날 큰 딸과 작은 딸 그날 어떻게 대처했는지 기억나질 않는 거예요.


그리고 비로소 알게 됩니다. 사경을 헤매다 마침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내 기억 중 과거 일부분이 소멸되었다는 것을요.


수능 치는 날 늦게 등교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두 딸 그때의 생활이 기억날지 않았고 모든 것이 처음오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여니 학교에서는 등교 시간 맞추어 등교하라는 공지에 학원 선생님께 물었어요. 경험이 없다 보니 저 또한 당황했거든요.


오늘 아침 겁이 많은 여니에게 "오늘 교실 가서 아무도 없으면 엄마한테 전화해. 근데 학원 차에 너희 반 친구가 탄다고 그랬어. 무서워하지 마"라고 다독이니 여니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어요.


"무서우면 전화할게" 말과 동시에 딸이 내뱉지 않은 무의식 생각을 알게 되었죠. '이런 날은 엄마가 나를 많이 안아주고 위로해 주네'라는 푸근한 웃음을 보여줬어요. 


안 되는 일에 끊임없는 생각을 접어두고 딸에게 지금 상황을 제대로 인지 시키고 다독인 오늘 아침이었어요.


학원차에 딸이 탈 때쯤 원장님은 이런 말을 해요.

"아고, 초등학교 1학년 엄마들만 대 걱정을 하네요. 혹시 일찍 등교하면 어른들이 없을까 봐요. 하하하하하. 걱정 마세요. 아이들 태우고 천천히 학교에 데려다 줄게요"라는 안심되는 말에 한시름 놓았던 아침이었어요.


때마침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걱정하는 엄마들이 있다는 것에 위안받게 되더라고요.


이런 게 내맡김일까요? 걱정한들 지금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내려놓았던 것이 신의 한 수였어요.


최선의 방법을 찾아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었어요.


첫 번째는 학원차로 등교하는 대신 일찍 학교에 도착해서 선생님과 친구들도 시간 맞추어 등교한다는 것과 혼자 교실에 있어야 한다는 점.


두 번째는 엄마와 함께 등교하면 선생님이 말한 시간에 등교할 수 있지만 버스를 타야 하고 많이 걸어야 한다는 점을 말하며 아이에게 선택하라고 했어요.


여니 선택은 첫 번째였어요. 무섭고 가슴이 뛰지만 학원 차를 타고 편안하게 가겠다는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 줬어요. 사실 저와 함께 등교하면 학원 차량이 아파트에 도착하는 시간보다 더 일찍 집에서 출발해서 버스를 타야 하거든요. 그걸 딸은 알았던 거예요.


이래나 저러나 일찍 나가야 한다면 엄마와 가는 것보다 학원 차를 타고 처음부터 편안하게 가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결론을 내린 딸이었어요.




핑크 핑크 러블리 내 새꾸


며칠 전부터 걱정을 하며 메시지를 남겼던 나에게 학원 원장님은 여니가 지금 등교하고 있다는 사진을 보내오셨어요. 걱정하지 말고 안심하라는 신호이겠지요.


사소한 문제에 걱정을 많이 하고 생각을 많이 하면 오히려 일이 꼬였어요. 근데 성격상 걱정이 많고 생각이 많은 나로서는 곧 닥칠 미래를 걱정 안 할 수 없었죠. 걱정하고 생각하다 결론이 하나면 그걸 선택하고 더는 걱정하지 않기로 결론 내렸던 것이 나와 아이에게 좋은 결과가 되어 돌아왔어요.


수능 치는 날 등교가 9시 30분에서 40분이었고 학원 차량으로 등교하면 9시 10분쯤 도착이라 여니 담임선생님은 극구 등교 시간을 맞춰달라고 했어요. 거기에 덜컥 겁을 먹은 나는 학원 선생님께 등교 시간을 맞춰주면 안 되냐고 사정을 했지요.


그러다 안 되는 일에 더는 깊게 생각하지 말고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었어요. 결과는 아침 등교 시간 9시 16분에 학교로 걸어가는 여니 뒷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시간을 맞추려고 노력해 준 학원 원장님께 고마웠어요. 여니 차량이 첫 타임이었고 뒤이어 다른 학생을 픽업하러 가야 한다는 원장님 말에 더는 부탁하지 않았거든요.


학원도 학원 사정이 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차선책을 찾아야 했고 여니는 자신 몸이 편안한 쪽으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큰 딸 육아가 아홉 살에서 끝났지만 실질적으로 내가 했던 육아는 큰 딸 여덟 살 봄이라 여니 여덟 살 겨울은 우왕좌왕하게 되네요.


학원 선생님이 "초1 엄마들이 경험이 없다 보니 다들 대 걱정하네요." 하며 호탕하게 웃으셨어요. 


딸을 학교로 보내고 집에 돌아와 청소를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학부모 생활은 언제까지 했는지 나 자신에게 묻고 싶었어요. 그리고 답은 초등학교 1학년 봄에서 끝이 났다는 걸 명확하게 기억해 냈어요.


혼자 온전히 학부모 생활을 했던 시기는 큰딸 초등학교 1학년 봄이었고 작은 딸은 4살 봄이 저의 육아가 끝이 나고 말았어요. 병마와 싸워 그 당시 기억은 사라졌지만 몸은 기억해 냈어요.


여니 유치원 생활은 순조로웠고 경험이 풍부해서 걱정 없이 순탄했고 초등학교는 좌충우돌 부딪히면서 배우고 있어요.


오늘은 큰 딸 수능 치는 날이에요. 큰 딸 수능 치는 날 감정이 미묘했어요. 수험생 부모가 될 수 있었던 그 상황을 벗어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육아를 하는 나는 제대로 된 부모 노릇을 하라는 우주의 뜻이 아닐까 짐작하게 되네요.


마음속으로 며칠 전부터 큰 딸에 대한 기도를 했어요. 떨지 말고 그동안 해왔던 공부를 실수 없이 너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기를 염원하는 기도를 했죠. 좋은 성과가 있으리라 저는 장담해요. 공부를 아주 잘한 딸이었거든요. 지금도 기도 중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라고 기도하며 설사 실수가 있더라도 자신을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말고 자랑스러워하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큰 언니 수능 치는 날 여니는 아주 느긋하게 등교를 했어요. 묘한 감정에 휩싸인 오늘 아침 그저 감사하다는 말만 합니다.


모든 것이 다 감사하고 축복이며 평화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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