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머물 수 있는 품
타지에서 엄마 고향으로 돌아온 날, 넌 세 살이었어. 크리스마스이브. 첫눈 같은 하얀 눈송이가 내리던 날이었어. 아무것도 모르는 넌, 어른들 손에 이끌려 다니던 모습이 이맘때가 되면 떠올라. 모녀가 있어야 할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어. 벌어진 일을 수습하느라 타지에서도 시간이 부족한 상태였지. 엄마는 너와 다시 둥지 틀 곳을 찾았어. 낯선 곳보단 엄마가 나고 자란 고향이 편안할 거 같았고 엄마 형제와 부모가 머무는 곳이기도 해서 거기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어.
엄마는 또다시 혼자가 되었고 엄마와 너를 안아 줄 품은 할머니였지. 한겨울 시린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15년 만에 할머니 품으로 돌아갔어. 혼자가 아닌 어린 너와 함께.
지금 집으로 이사 오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어.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눈초리, 여자라는 이유로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로 속상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단다. 사람들은 여자를 연약하다고, 혼자선 버티기 힘들 거라 말했지만, 엄마는 여자가 아닌 엄마로 성장하고 있었어. 비바람이 몰아쳐도 집이 무너지지 않도록, 엄마는 견고한 벽돌을 하나 둘 쌓고 있었어.
훗날, 네가 돌아올 곳은 바로 엄마 품이고 집이니까, 앞으로 수없이 겪어야 할 일 중 하나를 먼저 겪었다, 생각허니 상처 하나는 금방 치유가 되었어.
좁은 집에서 4년을 보내던 날, 훌쩍 커버린 너를 보게 된 거야. 영상을 보던 넌, 독립적인 공간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며, 나에게 말했지.
언제나 아기 일 걸, 같았던 너는 독립을 준비하고 있었어.
엄마는 계획을 수정하고, 네가 다니고 있는 학교 근처 이사하기로 했어. 한 학년 오르기 전 이사할 계획은 이루어졌어.
너와 나의 품을 다시 그렸고, 상상했던 꿈이 눈앞에 펼쳐졌던 날, 침대 위에서 뛰던 네 모습이 아직도 선명해. 방바닥 생활 품을 정리하던 순간이었어.
누구 도움 없이 엄마 힘으로 해낸 품을 보며 엄마가 대견했어. 언제나 그렇듯 최선을 다해 살아낸 삶은 값어치가 넘쳤지. 음식만 포만감을 주지 않아. 엄마의 포만감은 최선을 다해 이루어낸 삶에서도 포만감을 느꼈어.
포만감을 느끼지 못했던 지난날은 누군가의 그늘에 숨어 지냈던 거야. 나도 하면 뭐든 해내는 사람이었는데, 누군가의 품에 가려 잊고 살았던 거지. 너와 내가 머물 집이 소박하게 꾸며진 모습에, 그동안 서럽고 아팠던 과거를 웃음으로 기억할 수 있겠더라. 엄마 나름대로 꾸민 집은, 지금도 바라보며 흐뭇함이 풍겨와.
여니야, 집은 단순히 머무는 공간이 아니야. 벽과 지붕이 아니라 엄마의 눈물과 웃음으로 쌓아 올린 하나의 삶이란다. 너도 언젠가는 네 삶의 집을 지을 거야. 세상의 문을 잠시 닫고도 숨을 쉴 수 있는 곳, 넘어지고 다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품을 가슴 가득 안고서 말이야.
돌아올 집이 있다는 건 단순한 주소가 아니라, 내 마음이 무너져도 쉬어갈 수 있는 자리, 세상이 등을 돌려도 나를 품어주는 온기가 머무는 곳이야. 이제 엄마는 너에게 그 집이 되고 싶어. 네가 어떤 길을 걷든, 어떤 선택을 하든, 돌아왔을 때 따듯하게 맞아주는 온기, 세상이 널 몰라줘도 여기서는 널 안아 주는 곳이 여기 품이야.
사람은 누구나 흔들리고, 때로는 길을 잃어. 하지만,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만큼 든든한 백이 없을 거야. 그리고 언젠가 네가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더라도, 네 뒤에는 언제나 따뜻한 집, 네 이름을 불러주는 엄마가 있을 거야.
흔들리고 무너질 듯해도, 네가 세운 집은 네가 믿는 힘으로 굳건히 서게 된단다. 이 집은 언제나 네가 돌아와 쉴 수 있는 자리로 남아 있을 테니까.
엄마가 세운 이 집, 그리고 내가 걸어온 길이 너와 세상 모든 딸에게 ‘너도 해낼 수 있어’라는 작은 노래가 되기를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