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흔들려도 마음의 등대는 꺼지지 않는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뜻하지 않은 풍량을 만나곤 헤. 햇살만 가득한 날도 있지만, 예고 없이 소나기가 내리기도 하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 마음을 흔들어 놓을 때는 날도 있어.
폭풍우 같은 소낙비가 쉼 없이 내리는 날에 엄마는 쓸쓸해져. 소낙비가 엄마 눈물 같거든. 엄마가 어린아이 일 때, 우는 아이를 싫어하는 어른들로 엄마는 울음을 참아야 했어. 울음을 가슴에 삼킨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울지 못하는 바보가 되어 있었어.
시원하게 내리는 비를 마주하면, 나 대신 울어주는 것만 같아, 비 오는 날에는 엄마만의 세상에 들어가곤 했어. 그곳에서 마음껏 울면 아무도 우는 걸 알아채지 못할 거 같았거든. 비 오는 날은 쓸쓸하면서도 후련한 날이란다.
엄마가 인생을 먼저 살아보니 그래. 시원하게 한바탕 울고 나면 또 다른 태양이 떠오르고, 암흑만 있을 거 같았던 세상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어 주었어.
불운한 유년 시절을 겪은 엄마는 거친 폭풍우가 눈앞에 와도 겁 내지 않았어. 다만, 가슴은 무너질 것처럼, 아팠지만 돌아가지 않으려 애를 썼지. 끝이 없을 높은 산을 한 번 올려다보고 결심해. 포기보단 해결이 우선이다라고. 그때 엄마를 지켜보던 이모가 “언니는 정말 대단해.” 말은 아마 끈기로 버텨낸 모습을 보고 말한 거 같아.
몇 년 전, 거대한 산이 엄마 앞에 놓인 날.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어. 그 이유는 엄마가 넘고 넘었던 거대한 산보다 높았거든. 세상에 가장 높은 히말라야처럼 느껴졌지. 앞으로 살아내야 할 인생에서 히말라야보다 더 높은 산이 놓이게 될 테지만, 그때는 가장 높은 산이었어.
인생길에 고속도로를 내어준다면 숨쉬기가 한결 편안했을 거야. 하지만 신은 엄마에게 비포장도로를 늘 내어주면서 엄마를 지켜보는 듯했어.
처음에는 얽히고설킨 가족을 주시더니, 두 번째는 병으로 인한 죽을 고비 두 번을 주고, 세 번째는 사후세계라는 곳을 가게 해 거기 모습을 보여줬지. 네 번째는 이룬 가정을 결국 지키지 못한 거야. 다섯 번째는 다행히 몸은 다치지 않았어. 사후세계는 더더욱 아니었지.
세상에 존재하는 어려운 일 중 엄마가 겪어보지 않은 고통을 주셨어. 인간이 주는 벌 ‘법’ 앞에 선거야. 엄마가 죄를 지은 건 아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에게도 책임이 있었던 거야. 그러니 아는 이 없는 타지에서 '법'이라는 산을 마주하게 했겠지.
이겨보라고 그리고 살아내 보라고 말이야. 그렇게 엄마는 높은 고난을 겸허히 받아 들었어. 한 걸음 두 걸음 시행착오를 겪으며 어지럽게 얽혀있던 일들이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고 해결해 나갔지.
산을 타면 곳곳에 위험한 일이 도사리고 있어. 한 눈만 팔면 크게 다치는 곳이 바로 산이거든.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나뭇가지에 찔려 피가 나기도 하지. 수많은 상처를 내고 결국 엄마가 이겨냈어.
잃었던 건강을 회복한 것처럼, 죽을뻔했던 고비를 두 번을 넘기고 살아 돌아와 환하게 웃었던 것처럼, 일어난 거야. 인생은 긴 고난의 연속이지만, 하나, 둘 해결하면 그것만큼 달콤한 건 없어. 고난 끝에 달콤한 열매는 이겨낸 삶만 맛볼 수 있지.
누군가가 엄마에게 그러더라. 여자 몸으로 굳이 겪지 않아도 되는 숱한 경험이 지금을 살아갈 수 있는 버팀목이 된 거 같다고, 살아줘서 고맙다는 위로가 참 고마웠어.
여니야,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굴곡진 길이 펼쳐질 거야. 삶에는 정답이 없어. 그냥 몸으로 부딪혀야만 해. 그렇지 않고서는 알아내지 못하고 길을 잃고 말아.
힘들다 생각을 접고, 일단 부딪혀 봐. 그러면 길이 보이고 희망을 보게 될 거야. 엄마가 주저앉으려고 했던 몇 회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해맑게 웃으며 힘을 주던 너를 보았기 때문이야. 너를 외면하지 않고 일어서서 당당히 법과 싸웠어. 너도 할 수 있어. 엄마 딸이니까.
여니는 엄마처럼, 어려운 고난을 겪지 않고 쉽게 세상을 살아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건 너의 성장을 멈추게 하는 거라는 걸 알아. 그래서 엄마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렇게 유언장을 빌어 메시지를 남기는 거란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란 특별한 바람이 아니야. 거창한 책 속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지혜는 일상의 작은 순간 속에 숨어 있어.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한마디,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서는 작은 용기, 흔들려도 스스로 믿고 나아가는 발걸음 속에서 이미 깃들어 있단다.
지혜는 시련과 역경 속에서 자연스레 배우는 거라서 그때 닥친 위기를 지혜롭게 헤쳐 나가면 돼.
엄마는 거실 창가에 앉아 하루의 해가 저물고 다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곤 했어. 약을 의지한 몸이라 단순한 행동을 무한 반복하며 삶을 되돌아보기도 하지. 이치 속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는 거야.
해는 어김없이 다시 떠오르고, 폭풍은 모든 걸 휩쓸고 간 후 잠잠해지는 지혜를 자연스럽게 가슴에 담아봐. 네가 맞닥뜨릴 어려움도 결국 지나가. 그러니 삶의 끈을 놓지 말고 잠시 쉬었다 앞으로 걸어가면 돼. 기다림을 기회를 줘.
어느 날은 폭풍우가 끝없이 내리는 날이 올 거야. 그러나 거센 비는 지나가. 또 다른 날은 먹구름을 가득 메운 날이 올 때도 있을 거야. 그리고 다 암흑일 거 같았던 날을 뒤로하고 잠시 쉬어도 된다며 맑은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을 내 등 뒤에 비춰 주기도 해. 이런 게 바로 삶의 지혜야.
너는 아직 아홉 살이지만, 친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눈길에 엄마는 벌써 작은 등대를 보았어. 시험성적이나 생김새로 사람을 재지 않고, 마음으로 먼저 다가가는 그 태도는, 세상을 따뜻하게 살아가는 큰 지혜 중 하나야.
여니가 실아가다 큰 산이 오는 날, 널 힘들게 한다면 아홉 살 여니를 기억해 주기를 바랄게.
앞으로 수많은 고난이 닥친다면 앞으로 너에게 더 큰길이 열린다고 생각하렴. 그 길 위에서 사람을 귀히 여기고,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어떤 폭풍이 몰아쳐도 네 삶은 무너지지 않을 거야. 흔들리더라도 마음속 등대가 너를 지켜주고 다시 중심을 잡게 해 줄 테니까.
엄마가 전하는 지혜는 흔들리면 중심을 잡으면 돼. 넘어지면 어때.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내고 다시 일어서면 돼. 세상에서 가장 강한 지혜는 바로 내 안의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걸 잊지 마.
엄마 등대는 너야.
너의 등대는 엄마라는 걸, 우리는 서로의 등대가 되어, 꺼지지 않는 불빛을 가슴에 품고 어려운 삶을 견뎌내자.
네 삶이 지혜와 사랑으로 단단하게 물들기를, 엄마는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