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인생 겨울 편 12월 호 - 할머니 화롯가의 군고구마 향처럼
겨울비가 내리는 밤은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하다, 어디선가 고소하고 달콤한 군고구마 향이 퍼질 시간에, 딸은 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그 노래를 듣는 순간 나를 과거로 돌아가게 했다. 엄마를 조용히 지켜보던 딸은 “엄마 이 노래 무슨 노래인 줄 알아?”라고 물었다.
나는 반가움에 “그럼, 이 노래는 엄마가 20대 들었던 노래야. 하늘로 떠난 이모가 이 노래 정말 좋아했거든. 근데 너 이 노래 어떻게 알아?”라고 물었다.
딸은 유튜브를 보다 우연히 알게 된 영상이라고 이 노래를 듣는데 기분이 좋아져 엄마에게 보여줬다고 했다.
한동안 잊고 지낸 노래가 딸이 보여준 음악으로 예전 과거 지점에 머물게 해 줬던 것이, 그리고 그 노래에 담긴 추억을 볼 수 있어 기뻤다.
딸이 보여준 영상 속 노래는 첨밀밀 OST였고, 딸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주말 저녁을 보냈다.
내일은 여유로운 시간이라 첨밀밀 노래가 더 가슴에 와닿아 오래전 어느 시점을 떠오르게 했고 감성에 젖게 했다.
동생과 그날은 서로 이마를 맞대며 노래를 부르다 까르르 웃었던 나의 20대 추억 속 사진 한 장이 마음 한 곳에 놓여 있었다. 유년 시절 힘들었던 시기에 자매는 서로를 의지하며 내일은 분명히 자매에게 따스한 햇살이 비춰줄 거라는 믿음으로 살았다.
지금은 내 마음속에 있을 동생은 언니가 언제, 어디서나 행복하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나의 오래전 추억을 딸과 나눈다는 것이, 뭉클했고 벅찼다.
딸 역시 엄마처럼 가슴 깊은 곳에 남겨둔 첨밀밀 노래가 있기를, 엄마와 나누었던 대화를 먼 훗날 딸의 자녀와 나누기를 나는 딸 모르게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
딸은 첨밀밀 OST를 부르며 특이한 점을 발견하고 나에게 물었다. 유덕화, 주윤발, 장국영 이름이 왜 한국 이름과 비슷하냐고, 이들은 한국 사람이 아닌데 한국 이름처럼 쓰냐고 의아해했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나, 내가 아는 선에서 아이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그들은 한자를 쓴다고, 그래서 이름이 우리와 비슷한 거라고 더 깊이 알고 싶다면 엄마와 공부하자고 했다.
딸은 호기심이 대충 해결되었는지 더는 묻지 않았다. 나의 추억에서 딸의 추억까지 덧입히지는 날이었다.
딸과 나눈 추억의 크기는 더 커 내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그 추억을 붙잡고 눈을 감을지도 모른다.
첨밀밀 OST 노래를 들으면서 딸은 나에 대해 궁금한지 물었다.
“엄마는 조용한 노래가 왜 좋아. 사실 난 조용한 노래가 졸려. 난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 신나고 기분이 좋아지거든. 엄마는 조용한 노래가 엄마를 신나게 해주는 거야.”라고.
각자 생김새도 다르고 목소리도 다른 듯, 음악도 다를 뿐이라고, 어떤 음악이든 각자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거라고 딸에게 속삭였다.
엄마는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할 때가 많아 힘찬 노래보단 엄마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차분한 노래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딸을 보며, 첨밀밀 OST 노래는 슬픈 노래인데 왜 듣냐고 물었다. 딸 말에 난 크게 웃고 말았다. 에스파 밍밍이 부른 노래라서 듣는다는 말에 딸의 얼굴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딸의 표정 하나하나를 새기듯 내 눈에 새겼다.
좋아하는 사람이 부른 노래라 자신의 음악 취향과 상관없이 딸에게는 가슴을 울리는 모양이었다. 딸은 순수했고 맑은 아이라서 그 어떤 것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거 같아 가슴이 울컥했다. 그 후로 딸은 그 나이 아이답게, 음악은 또 다른 음악으로 옮겨갔다.
10대와 20대 나는 눈물이 마를 시간도 없이 힘겨웠다. 배신, 시기 질투를 한 몸에 받으면서 발라드로 나를 슬픔에 빠지게 둘 수 없었다. 그래서 음악과 잠시 이별을 선택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오히려 차분하고 조용한 음악으로 아픈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속상해하는 마음과 외로워하는 가슴을 끌어안아야 앞으로 갈 수 있기에 나는 음악과 함께, 외롭지도 속상하지도 않았다.
음악은 나를 불행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었다. 음악 끝에는 애써 슬픔을 삼키다 끝내 버티지 못한 나의 어린아이가 거기 서 있었다.
더는 울지 않기를 바란다며 음악의 길목에 서게 했다. 몇십 년 동안 고인 눈물은 음악을 통해 쏟아졌다.
5년 전에 그랬다. 울어도 된다고, 울지 못해 힘겨웠을 나의 어린아이를 달랬다. 더는 너를 다그치거나 꾸중할 어른이 없다고, 내가 너를 지켜줄 거라고 마음껏 울어보자고 속삭였다.
어느 순간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한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더는 답답한 가슴을 끌어안지 않아 고맙다고 했다. 모든 걸 털어내고 흘려보낼 거는 보내고 나니 자연스레 음악이라는 곳으로 시선이 갔다.
첨밀밀 OST로 딸과 추억에 추억을 더하며 오늘을 새겼다. 이젠 네가 아프지 않기를, 아파도 더는 가슴으로 슬픔을 끌어안지 않기를, 오늘을 기억하자고 나는 나에게 말했다.
혼자만 간직한 추억이 둘이 되니 계절에 색을 입힌다. 새하얀 겨울에 핑크 한 방울이 퍼져 온기를 나누어 준다.
계절에 계절을 덧입힌 색으로 모녀는 오늘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