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의 겨울, 한 여자의 달빛

엄마 인생 겨울 편 12월 호 - 부딪히고 견디며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

by 치유빛 사빈 작가

한 남자의 축 처진 어깨가 보였다. 한없이 견고하고 단단할 것만 같았던 내면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그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허탈함과 공허함이 한꺼번에 몰려온 듯한 표정과 말투, 거기에 더해진 과한 행동을 보며 내 마음은 한겨울처럼 시리도록 아팠다.


덤덤해 보이려 애쓰는 얼굴과 평소와는 다른 과한 리액션을 보며 그는 아주 깊고 깊은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 있구나, 느껴졌다.


인생에는 모진 바람이 늘 분다. 바람의 세기도, 몸에 닿는 고단함의 크기도 사람마다 다를 뿐, 인생의 풍파는 늘 곁에 있다.


그 남자는 한번 마음을 내어주면 모든 걸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람이었다. 브레이크가 없을 만큼 사랑이 깊은 사람. 그 깊이를 다 내어주고 난 뒤 남은 건, 지나온 시간을 원망해야 할 만큼의 상처였을 테니, 혼자 감당하기 벅찼을 것이다.


깊이가 깊은 사람은 다시 마음을 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나 역시 오랜 시간 동안 혼자 지내면서 다친 마음에 연고를 바르고 흉이 지지 않도록 다독여 왔다.


상황은 다르지만, 나 또한 모진 세월의 풍파에 온몸을 내맡기며 여기저기 부딪히고 찢겨 재투성이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내면과 외면은 부드러운 온기가 스며들었다. 상처 속에서조차 사람은 자라나고 있구나,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사람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부딪히고 아파하는 존재라는 걸 안다. 세상은 사랑을 내어준 만큼 삶의 고단함도 함께 쥐여준다.


겉으로 단단해 보이는 사람도 속으로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한 번쯤은 마음 놓고 울고 싶을지도 모른다.


성별과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다. 그 권리를 누리지 못해 꾹꾹 눌러 담은 감정들이 내 두 눈에 고스란히 비쳐 함께 울어주고 싶었다.


나약해지지 않으려는 모습이,

무너지지 않으려, 앙다문 입술이,

슬픔을 숨기려 힘을 주고 있던 두 눈이,

결국엔 눈물이 맺혀 있었고, 허무함마저 그의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아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간다는 걸, 아는 사람은 버티고 견딘다. 혼자가 되어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시간 속에서 다시 서는 법을 배운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눈물이 나면 시원하게 울어보기도 하고, 위로가 필요하면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다면 그 무거운 짐의 절반은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고요한 달빛 아래 아프다고 말하고 두 눈에 눈물이 맺히면 또르르 흘려보내고 위로가 필요하다고 마음이 속삭일 때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아주었다. 그렇게 시간을 견디며 온전히 혼자가 되었고 결국 스스로 일어났다. 그렇게 난 온기를 품은 달빛과 함께 녹였다.


인생에는 정답도 없고 해답도 없다. 그냥 마주하고 부딪히는 수밖에.


모진 풍파도 시간이 지나면 잔잔해지듯, 시끄러웠던 마음도 어느 순간 잠잠해지고,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이 곧 곁으로 다가온다.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은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자신을 바라본다. 나에게 쉼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삶은 그저 살아내는 곳이니까. 그래서 모두가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내는 것이리라.


거친 바위가 거센 파도를 맞아 서서히 부드러워지듯, 삶의 파도도 거세게 부딪히며 일구어낸 인생은 깎이고 다듬어져 더 고귀해진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고단함과 함께 기쁨을 안겨주고 그 기쁨을 즐겨야 또 이겨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즐겨보는 거다.


아파도 즐기고

행복도 즐기는 것이, 바로 인생의 향로일 것이다.


그러니 오늘만 슬퍼하고 내일은 인생의 향로대로 움직이면 된다.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그렇게 살아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