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이 있던 겨울

엄마 인생 겨울 편 12월 호 - 어린 시절, 희망이 삶이 되기까지

by 치유빛 사빈 작가


어린 시절 빨간 머리 앤 집에서 살고 싶었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 과연 앤의 집에서 잘 살고 있을까, 깊은 생각에 잠기는 12월 주말 어느 날이다.


희망이었던 앤은 꼭 지금 모습과 닮아 있다고 믿으며 그 시절을 건너왔다.


빨간 머리 앤의 마을에도 지금처럼 고요하고 고즈넉한 겨울이 찾아왔을까. 아마도 편안한 주말 오후처럼,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핫초코를 눈으로, 냄새로, 입으로 마시듯 앤도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상상만으로 흐뭇해지는 오후 한때다.


어린아이는 늘 앤과 약속을 했다. 곁에서 지켜봐 달라고, 어린아이 또한 언제나 앤의 곁에서 무얼 하든 응원하겠다고, 그 약속을 지금도 지키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마음에 온기를 피워주던 빨간 머리 앤. 어디에 있든, 사람에게 밝음을 선물로 주는 아이였다.


지금 앤이 되어,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삶을 나누는 도구로 글을 내민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마음을 문장으로 새겨, 가슴에 남긴다.


어린아이는 앤에게 받았던 위로로 이제는 아이가 아닌 어른이 되어 앤에게 다시 건넨다. 그들이 머무는 마을에, 그들이 서 있는 공간에 사계절 자연이 늘 피어 있기를 바라며, 곁에서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앤에게 받았던, 따스함과 밝음, 그리고 용기를 그대로 돌려준다.


지금 앤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앤을 그리워한다.


앤이 말한 것처럼, 이전보다 더 이상적으로 행복해지고 있다고, 닥친 불행을 스스로 이겨내며, 단점을 미워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앤을 다시 만나면 말하고 싶다.


'이게 난데 어쩌라고'를 외치며, 뚱뚱한 몸을, 새까만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나는 흰 머리카락을, 눈가에 늘어난 주름살과 중력에 따라 내려앉은 피부를 고요하게, 그러나 조용히 받아들인다.


앤은 늘 그렇게 말했었다. 머리카락이 빨갛다고 해도 나는 그냥 앤 이라고, 불평 대신, 단점을 장점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쓰디쓴 삶과 고달픈 인생에도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으며, 몸을 살피고 또 살핀다.


그 믿음은 어느 순간, 설명할 수 없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다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끊겼던 손금의 생명줄이 운명이라는 선을 타고 이어진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 앤의 마을에는 겨울이 왔을까. 새하얀 솜뭉치 같은 눈이 내리고 있을까. 앤은 지금 웃고 있을까. 무엇을 먹으며 힘을 내고 있을까.


행복이 찾아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을까. 나에게 왔던 불행과 행복 앞에서, 앤 역시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내고 있겠지. 이 세상에 오는 일들은 모두 이유가 있으니까.


떤 날은 같은 겨울이었지만,

어떤 날은 버틸 수 있었고,

어떤 날은 주저앉았다.


마음속 앤은 묻는다. 살아내기를 잘했느냐고, 고통스러웠던 수많은 순간 앞에서 무릎 꿇지 않고 일어선 보람이 있었느냐고.


조용히 답한다. 당연히 잘 살아냈다고. 살아냈기에, 이제 해야 할 일을 알게 된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앤을 만나게 된다면 이렇게 말할 거다. "앤 너, 덕분에 고비가 수차례 찾아와도 굴복하지 않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어. 잘 살았지? “


”앤, 내게 찾아온 난치병도, 내가 온전히 지켜내야 할 딸도, 삶과 인생에는 분명한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아. 그리고 그건 내 마음 안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 오늘을 멋지게 보낼 수 있도록 작은 용기를 한 스푼만 건네줘. 앤은 언제나 내 마음에 있으니 기억하렴. 너는 소중하고 귀한 존재야. 열세 살일 때도, 늙어가는 지금일 때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는 마음을 알아줘 앤. “


오늘도 겨울 어딘가에 머물고 있을 앤과 함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