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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지어낸 이야기 속에서 살고 있다

오랜만에 쓰는 글이다.


왜 그토록 글 쓰는 것이 어려웠을까.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버거워서 그랬을까. 분명 바쁘다 바쁘다 해도 쪼개면 충분히 만들 수 있었던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왜 글을 쓰지 못했을까. 오늘은 꼭 글을 써보리라 다짐했지만, 집안 대청소를 핑계로 시간을 죽이다 결국 또 하루 해가 저물어버렸다.(의기소침) 그래도 오늘을 기필코 넘기지 않겠다란 일념으로 키보드를 꺼내 들었다.


2022년은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한 해였다. 2023년 새해가 밝았다고 해서 바닥을 치던 자존감이 단숨에 올라오는 기적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기대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사람마다 디폴트값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일종의 기질이나 본성이라 불리는 이 디폴트값이 문제였다. 난 애당초 타인이 나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디폴트값을 장착하고 있는 인간이었다. 주변 가족들은 나와 달리 타인보다 자신이 더 우월한 존재라고 인식했고 같은 시간이 주어졌을 때 타인보다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장착하고 있었다.

난 나 자신이 항상 불안했다. 우월해 보이는 타인의 기에 눌리고, 실수할까 눈치 보고 항상 주눅이 들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약한 내면의 나를 알아보는 듯했다. 그들의 불신의 눈빛은 나로 하여금 겉돌게 만들었다. 팀에 합류하지 못하고 겉도는 이방인으로 만들었다. 원망하는 마음이 생겨났고 그 화살은 모두 타인에게로 향했다. 몹시도 괴로운 시간들이 흘러갔다. 어느 순간, 혹시 문제는 내게 있는 건 아닌가란 의문이 들었고, 그 의문은 타라 블랙의 [자기 돌봄]이라는 책에 끌리게 했으며 심리상담센터라는 높은 문턱을 넘게 만들었다.




‘나는 불완전한 존재다’라는 생각은 필연적인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다.
- 타라블랙, [자기 돌봄]중에서 -


인간의 뇌 속에 들어오는 정보들은 ‘생각’이라는 필터에 의해 왜곡되고 착각, 망상, 오해로 변질되기 일쑤다.
인간은 평생 타인의 눈 속에서 살다 간다는 말이 있다. 빈방에 홀로 있을 때조차 머릿속에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며 스스로 제약하는 우리들이다.
우리가 의식하는 대상은 ‘만들어진 타인’이다. 눈앞에 실재하지만, 우리 의식이 덧씌워진 타인이다.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는 늘 누군가를 향한 원망과 비난, 원한이 웅크리고 있다.
우리는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약한 부분을 헤아리기보다 상대를 비난하는데 더 익숙하다.


우리는 하루 내내 우리가 지어낸 이야기 속에서 살고 있다.


타라블랙의 [자기 돌봄]에서 위의 문장을 읽었을 때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그간의 고통이 모두 습관적으로 나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불과했단 말인가? 상상통처럼 나 스스로 고통을 만들어내고 있었단 말인가? 혼란스러운 생각들이 오고 갔다.


타라블랙은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이루어졌던 것과의 연결을 끊는 것이야말로 내면 치유의 핵심이라 말했다. 문득 인정하기 싫은 마음이 썰물처럼 밀려들었다 금세 밀물처럼 쓰윽하고 사라져 갔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지어낸 이야기 속에서 가장 괴로운 건 나 자신이었으니까. 원망의 화살을 타인에게로 돌리면 역설적이게도 나 자신에 대한 무력감과 불신감이 동시에 생겨났다. 작은 실수에도 자신을 질책하게 되고 실망하게 되고 또다시 불신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이러한 생각들은 필연적으로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다.


실수해도 괜찮아. 그러니 자책하지 마.


괜찮아. 그래 괜찮아.


자신에 대한 심판관에서 자기를 돌보는 사람으로 옮겨가라.

완벽은 그 어느 것의 조건도 아닙니다. 오직 고통을 위한 조건일 뿐입니다.


기왕 지어낼 이야기라면 왜 생각의 물줄기를 건강한 쪽으로 흐르게 하지 못했을까? 글을 써 내려가면서 새삼 나의 부정적이고 암울한 디폴트값이 느껴졌다. 기질적인 부분도 멈춤이 가능할까? 타라블랙은 현존하기 위해서는, ‘내가 아픈 것이 아니라, 아픔이 일어나고 있다’는 진실을 자각해야 한다고 했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일에서 내가 지어내는, 지어내고 싶은 이야기와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해 친절하게 관찰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오래된 나의 습과의 연결을 하나씩 끊어내야겠다.



[자비 명상]
오늘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 보고 듣고 만나고 행했던 모든 것들이 나의 자비와 지혜를 일깨우기를 바랍니다.
- 타라블랙, [자기 돌봄]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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