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모제인 Feb 07. 2023

나는 꿈을 이루었다

자화상

나는 일이 그리웠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열렬히 하고  싶어서 하는 그런 일이.

- 럭키드로우 중


평생 해도 지겹지 않은 일


지난 2년간 늘 그랬듯 새벽요가로 하루를 연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수강생이 아닌 강사로, 앞쪽이 아닌 뒤쪽 벽을 향해 사람들과 마주한다. 연화좌로 앉아 명상을 하는 사람, 폼블러로 근막이완을 하는 사람. 수업 시작 전, 5명의 수강생들이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잠들었던 몸을 깨우고 있다. 여기 있는 모두가 요가에 진심이다. 어떤 누구도 새벽시간은 허투루 쓰지 않는다. 새벽에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그 무언가에 진심이다. 수업이 시작되자 중저음의 차분한 내 목소리가 이 새벽, 요가원의 공기를 깨운다. 나의 목소리와 손길이 그들의 몸과 마음을 따스히 깨운다. 송글송글  한 방울이 더해지자 감각은 더 섬세해지고 정신은 한층 또렷해진다. 우리는 한층 영글어진 겹겹의 시간을 느낀다. 마지막 시르시아사나로 몸의 기운을 극대화하고 나서 마침내 땅에 몸을 뉘는 순간 형형할 수 없는 포근함을 느낀다.


첫 수업은 쉽지 않았다. 평소 목이 불편하던 것이 수업 발성에도 영향이 크다. 하지만 첫 수업은 만족스러웠다. 나는 한 동작을 오래 지속할 때 긴장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멘트에 좀 더 집중해서 수업을 준비한다. 힘든 요가 자세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마음가짐은, 인생의 굴곡을 대하는 태도 묘하게 닮아있다. 요가라는 뷰파인더로 인생을 바라보는 치유의 한마디가 내 수업의 백미(白眉)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지난 몇 년간 나의 감각을 꾸준히 수집해 기록했. 이곳에서의 새벽은 모두에게 행복이다.


내 수업의 가장 큰 원칙은 사람들이 요가를 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요즘은 자기 운동 하나 갖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래서 시작보다는 지속이 더 중요하다. 몸과 마음의 변화를 알아차리게 하는 여러 가지 포트폴리오를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한다. 루틴, 변화, 연결성 이 세 가지가 지속성의 시드(seed)가 된다. 운동을 계속하게 하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좋다. 지속성 원칙에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바로 커뮤니티이다. 나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일을 즐긴다. 오늘 수업의 성과는 지난 2년간 꾸준히 네트워킹을 해온 결과다. 즉각적인 수입은 바라지 않는다. 조만간 새벽 기상을 모토로 한 리츄얼 프로그램도 오픈할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엔 아로마 공부를 시작했다. 향기는 강력한 심신안정제다. 요가 수업에 접목해도 좋을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세계를 하나씩 알아가는 건 언제나 즐겁다. 모든 걸 경험해 볼 순 없기에 새로운 시도에는 명실상부 원칙이 생겼다. 내가 요가를 알기 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다. 그전에는 내 의지가 중구난방 튀어 다니는 관심사를 쫓아가지 못했다. 뭘 해도 1개월을 넘기기 힘들었다. 요가로 연결된 여러 가지가 내 인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요가소품, 아로마, 명상, 치유글쓰기, 프로필 사진 찍기 등. 내 일상은 온갖 요가스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더구나 이 모든 것이 적절히 어우러져 브랜딩이 되고 일이 되고 수입이 된다.


언뜻 관련이 없을 것 같은 것들이 요가로 귀결되는 경험. 이 일이 평생 지겨워질 수 없는 이유다.



재능 있는 일


나는 공부에 재능이 있다. 동시에 내 아이는 공부에 재능이 없다는 걸 알았다. 더 이상 학원에 호구가 되기 싫어서 홈스쿨링을 시작했다. 하다 보니 난 공부를 가르치는 데도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다. 늘 기웃거리던 교사라는 역할을 내 인생에 들였다. 지금은 그저 재능기부 수준에서 소소하게 과외를 몇 개 한다. 시간이 있어서 아이의 친한 친구 공부를 좀 봐준 적이 있는데 그 이후 입소문이 난 모양이다. 감사하게도 별다른 홍보 없이 집 주변에서 몇몇 아이를 지도하고 있다. 엄마, 학원 차리게? 아이가 농담 삼아 나에게 하는 말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재능 있는 일을 하면서 살려면 재능 없는 일을 아주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재능을 현실과 타협한다. 최적의 브랜딩 목표는 하루 두 타임 한정판 그룹과외다.  지금 지도 중인 아이들은 대부분 일찍이 수학을 포기했던 아이들이다. 하지만 난 안다. 적어도 13살 전에는 수포자 꼬리표를 붙이기엔 이르다. 나는 그 꼬리표를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냈다. 눈에 보이는 학습량을 만회해 주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나는 빠르게 변해가는 아이들의 말랑한 태도가 참 좋다.


재능이 돈이 되는 경험은 얼마나 귀중한가.

하지만  재능 있는 일만 하면서 살고 싶으면 어딘가에 고용되는 게 가장 편하다. 재능으로 돈을 벌고만 싶고 그 일로 돈을 쓰고 싶지는 않으면 월급생활자가 제일이다. 내 노동력만 들이면 되기 때문이다. 재능 있는 일을 오래오래 하고 싶으면 재능 없는 일에는 돈을 써야 한다. 하지만 내 시간과 노동력은 아주 유한하고 게다가 예전만큼 빠릿하지도 않다. 난 은퇴 없이 재능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이 일을 선택했다. 그렇기에 내가 가져야 하는 것은 한정판이라는 부가가치다.


만약 내 경험을 확장시켜야만 한다면 난 지금 10대인 나의 제자들이 20살이 될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때까지 유지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연구하고 그들과 그들의 부모가 필요한 것들을 무상으로 제공할 것이다. 성인이 된 그들이 자신의 경험을 나 대신 대물림 할 수 있도록 사람에 투자할 것이다. 후학을 양성하는 것은 노련함 대신 둔해진 몸을 갖게 된 늙은 이가 꼭 해야만 하는 인생의 순리다. 이곳으로 이사를 결심한 순간부터 나는 10년 뒤 내가 원하는 인생의 모습을 선명히 그리고 있었다.




나는 꿈을 이루었다.

요가를 하고 과외를 하지만, 지속할 수 없거나 재능이 딸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 둘 다 내 노동력을 파는 게 아니라 포트폴리오를 팔고 노동력을 사서 키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이 저절로 따라오는 일을 한다. 고용되기보다는 누군가를 고용하기 위해 산다. 내 노동력은 얼마 못 가 쇠퇴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고연봉으로 몇 년 바짝 벌어 여생을 편히 살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다. 젊음을 바친 직장은 나의 노후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더구나 그 명함을 내려놓는 일은 지금보다 1년 뒤가, 1년 뒤보다 5년 뒤에는 더 애처롭다. 그때는 돈보다는 할 일이 필요해진다.


60대에내 일을 하면서 산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은 우연이 아닙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