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매일 자신이 업으로 삼은 일을 뷰파인더 삼아 인생을 배운다. 어떤 누군가의 뷰파인더는 글이고, 어떤 이는 그림이고, 악기이고, 이 책의 작가에게는 사진이다. 어떠한 도구를 이용하느냐의 차이일 뿐, 삶이 지속될수록 많은 이들이 어떠한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 같다. 가령 보편화된 삶의 진리 같은.
남과 똑같은 사진을 찍으려고 하지 마. 오늘부터 다른 곳에 앉아 다른 렌즈를 쓰며 다른 방향을 보도록 해봐. 네 사진이 남보다 좋을지 아닐지는 몰라. 하지만 최소한 남들과는 다를 거야. 그게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 단계라는 것도 잊지 마. - p.150
좋은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아? 바로 "선택"이야. 인생은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사진도 그래. - p.222
이 책의 표지를 본 순간 내 머릿속은 "우연", "인생", "관점", "시선" 이 네 단어의 강렬한 연결고리가 착 붙어 떨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자발적 선택, 비자발적 선택,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선택된 어떤 것들에 의해 내가 여기까지 왔다고 하면 그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책 내용이 궁금해진다. 목차를 살핀다. 거리, 각도, 색감, 피사체. 4가지 대주제와 소제목. 22개의 세부목차가 제목에서 느껴지는 기대감을 깔끔하게 커버하고 있다. 아주 찰나의 순간에 이 책의 매력 스캔 완료. 오늘의 픽은 바로 너야!
첫 장을 넘기면서 사진사의 이야기라는 걸 알고 다소 의외였다. 난 사진사의 일상을 절대 궁금해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로 다소 진부해 보이는 인생 진리를 이야기하는 책이었다니. 술술 읽히는 활자들 속에 어느 순간 몰입하게 된 나를 발견한다. 그래. 사진이 이런 거였지. 매일 몇십 장의 사진을 찍으면서도 난 사진이라는 존재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구나. 학창 시절 소풍 가서 30장짜리 필름을 일회용 카메라에 딸깍 장착시키고 한 장 찍고 몇 장 남았는지 보고, 또 한 장 찍고 남은 필름을 살피던 기억. 친구들과 스티커사진을 찍고 휴대폰 배터리에 붙여 다니던 기억. 그 추억들이 인화된 사진들과 그 안의 우리 모습은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사진을 찍고 놀았던 기억만은 아직도 선명하다.
사진 찍기 싫은 사람
사진이라는 물성은 과거의 내 모습을 다시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진 찍는 행위 자체로 대변되는 추억을 남겼다.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는 건 사진에 남은 옛날의 내 모습을 보는 게 그닥 즐겁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른다. 두꺼운 안경알에 가려진 동그란 얼굴, 어색한 화장, 철저히 계산된 사진 각도로도 커버하기 힘든 군살들.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촌스러운지. 아무리 봐도 거울 속 내 모습과는 다르단 말이지.공황돼지님의 카메라마사지 글처럼 다각적 자기 객관화가 부족해서 사진 속에 비친 내 모습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다.
축제 현장에 가보면 누구나 사진을 찍는다. 사진으로 남긴 물건과 사진 없이 눈으로 본 물건 중 어느 쪽이 더 그 물건에 대해 잘 기억할 수 있을까. 이를 증명하기 위한 실험이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결과는 사진이 아닌 눈이었다. 찰나의 순간을 기억에 남기려고 사진을 찍지만 정작 내 기억 속에는 카메라 화면 속의 기억밖에 남지 않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아이의 졸업공연을 동영상으로 찍다 보면 나는 무대 위에 선 아이의 눈을 바라볼 수 없는 것이다. 무대의 아이는 나를 보고 있지만 나는 카메라 속 영상만 바라보는 시선의 불일치가 생긴다. 그래서 난 사진을 찍지 않는 거야.라고 생각한다.
사진 찍는 게 좋아진 사람
사진 찍는 행위 자체가 축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사진을 남기기 위해 의상과 소품을 준비하고, 찍혀 나온 피사체를 관찰하여 울퉁불통한 면을 다듬어 예쁘게 만든다. 거울 속 내 모습보다 훨씬 아름다운 추억으로 둔갑시키는 과정이다. 그렇지. 역시 이게 진짜 내 모습이었어!사진이 나를 객관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점에서는 사진이 나를 이상화한다. 두고두고 꺼내보는 그런 사진이 된다. 기억에서 잊혀질만 하면 사진을 꺼내보며 추억의 유효기간을 연장한다. 내가 사진의 효용성을 전파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 지점을 파고들 것이다. 실제 내 모습이 아닌 내가 보고 싶은 나를 기록하면서.
넌 있는 그대로 예뻐
"어머니의 사진첩"이라는 글이 아련히 기억에 남는다. 전문 사진사인 작가가 어머니에게 치매도 예방할 겸 산책하시며 찍으라고 휴대폰으로 사진 찍는 법을 알려드리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