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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는 어릴 때부터 많이 들어봤지만, 막상 읽어보진 않았던 고전 중에 하나였다. 그런 고전들이 어찌 이 책뿐이랴. 하지만 유독 '위대한 개츠비'는 언젠가 한 번은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날이 좋던 어느 주말이었다.

오래간만에 들린 시립도서관에서 김영하 작가님이 번역하신 '위대한 개츠비'를 대여해왔다. 약간은 설레기까지 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내가 상상했던 것과 달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화자는 닉 캐러웨이라는 인물이었다. 닉 캐러웨이는 언뜻 '그리스인 조르바'의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비슷한 느낌으로, 어릴 적 '항상 남의 좋은 면을 보도록 노력하라'는 아버지의 충고를 가슴속에 새기며 반 세속적으로 성장하였다. 1920년대 미국은 주가가 기록적으로 폭등하고,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도시로 몰려든 이들 중엔 호황의 흐름을 타고 신흥 부자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기존 부자들과 신흥 부자들 사이엔 여전히 이스트에그와 웨스트 에그 사이에 놓인 처럼 갭이 존재했다.


닉 캐러웨이는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면서도 동시에 세속적인 세상에 대한 메스꺼움(disgusting)을 느끼는 인물이다. 저자 스콧 피츠제럴드는 닉 캐러웨이라는 중간계적인 인물을 화자로 세워 제삼자적인 시선으로 이야기를 서술해 나간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았는데, 책의 내용이 영화 속에서 입체적으로 되살아났다. 세상에 네다섯 번 밖에 못 보는 이해심과 믿음을 주는 아주 특별한 개츠비의 미소를 책을 보며 상상하곤 했는데, 영화 속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어느 정도는 표현해주지 않았나 싶다.  

 책과 영화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영화 속의 닉이 좀 더 세속적으로 그려졌다는 점이고, 개츠비의 그녀 데이지는 책 속에서 상류층 여성으로 아름답지만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여자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부유한 삶을 휘감고 사는 머리가 텅 빈 여자로 그려졌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딸이 바보로 컸으면 좋겠다라든지 그런 여자로 사는 게 속 편한 세상이라며 슬픈 눈을 하고 닉을 바라보는 모습과, 개츠비의 저택에서 개츠비의 고급 셔츠들을 부여잡고 뭔가 다른 말을 하려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는 처음이라며 눈물을 짓는 모습에서는 단순히 생각이 없다고 하기보단 이 생에선 예쁜 바보가 되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보였다.

5년 전 개츠비가 장교 시절, 상류층 여성이었던 데이지에게 한눈에 반하고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가난했던 제임스 개츠비는 데이지를 빈 손으로 잡을 수 없었다. 데이지가 미국의 최고 부자 톰 뷰캐넌과 결혼하던 날, 개츠비는 기다려달라는 편지를 데이지에게 전하지만 데이지는 톰이 주는 안락함을 뿌리칠 수 없었다.


데이지의 남편 톰 뷰캐넌은 양면적인 캐릭터로 정비사 윌슨의 부인 머틀 윌슨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면서도, 고전 읽기에 열을 올리는 인물이다. 톰 뷰캐넌은 머틀 윌슨을 사랑하면서도 사랑하지 않았다. 닉이 안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밖에 있었듯이 말이다.




오직 데이지를 다시 만나기 위해 주가조작과 밀주 매매로 악착같이 부자가 된 개츠비. 만 건너편 데이지의 저택 그린 라이트를 바라보며 그녀를 만날 날만을 기다려왔다. 그렇게 기다려왔던 그녀와의 재회에서 개츠비는 마치 소년같이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개츠비는 부를 원해서 이 자리까지 온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데이지를 위해 이 자리까지 온 것이었다. 하지만 서글픈 건, 5년 전 사랑은 진실이었지만 그 사랑은 그 순간의 진실이었을 뿐이었다. 그가 없던 5년의 세월 안엔 데이지와 톰의 추억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톰을 사랑한 적 없노라고 말하라고 종용하지만, 지금은 아니더라도 한때는 톰을 사랑했던 시간들 때문에 데이지는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한다. 개츠비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데이지가 톰을 사랑한 적이 없다고 해야만 자신이 5년간 이뤄온 모든 것이 정당화되고 완전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개츠비는 데이지를 사랑했다라기보단 데이지를 사랑했던 자신을 사랑했던 것이다. 끝까지 데이지가 자신과 떠나 줄 거란 믿음으로 데이지의 전화를 기다리지만 기다리던 전화의 벨이 울리는 순간, 정비사 윌슨의 총에 죽음을 맞이한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울린 주인공은 데이지가 아닌 닉이었다.


가슴이 저려왔다. 개츠비의 지독한 사랑 때문에...

화려한 저택과 파티 그 이면엔 결국 인간의 본능인 사랑이 근저에 깔려 있다. 인간이 이뤄놓은 화려한 문명의 기저엔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본능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그 본능들이 연료가 되어 거대한 문명을 이뤄낸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본능인 사랑조차도 인간들이 만들어낸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본래 '사랑'이란 건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것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존재하지도 않는 것에 모든 걸 바치는 것이다. 그것이 안타깝고 슬퍼서 눈물이 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린 그 믿음을 쉽게 저버릴 수가 없다.

닉은 말한다. 헤아릴 수 없는 불확실성 너머 초록색 불빛을 찾아, 쉴 새 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어떻게 될진 모르지만, 초록색 불빛을 찾아(그것이 헛된 희망일지라도) 과거에도 오늘도 내일도 우린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어찌 보면 개츠비는 성공한 것도, 실패한 것도 아니다.

그냥 나아간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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