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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글쓰기란...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

[최근 방영 중인 MBC 드라마 '신입사관 구해령']


글을 읽고 쓰는 거밖에 할 줄 모릅니다.
그거조차 할 수 없다면 제겐 아무것도 없습니다.

MBC 드라마 '신입사관 구해령'에서 왕자 '이림'이 염정 소설의 작가 '매화'임이 밝혀지자,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게 하라는 어명에 눈물을 흘리며 하는 말이다. 이림의 절규가 귓가에 맴돌았다. 왜였을까?


처음으로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2008년 3월부터였다. 예전 블로그를 뒤져보니 블로그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말이란 것이 생각을 온전히 대변해주지 못한다.
말주변이 없는 나로선 내 생각을 대화로써 표현해 내기가 쉽지가 않았다.
블로그가 편한 이유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편하게 풀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기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평범한 외모와 달리 가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엉뚱해서 누군가에게 그런 생각들을 말로 풀어놓는다는 것이 어려웠고, 난해한 생각들을 풀어놓으면 들어줄 누군가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계기로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뭔가 번뜩이는 생각들이 떠오르지 않으면 블로그에 새 글은 올라오지 못했다. 그러한 번뜩이는 생각들을 불러오는 대개의 수단은 책이었다. 내게 책이란 카프카의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라는 말처럼, 현실에 매몰되어 꽁꽁 얼어버린 뇌를 자극하는 촉매제였기에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브런치에는 매일 글쓰기를 하는 작가분들이 많다. 하지만 내겐 매일 글을 쓸 정도로 글쓰기가 쉽지는 않다. 지금 이 글도 가득 충전한 노트북의 배터리가 다 닳고 나서야 제목 밑에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말 다했지 않은가. 그렇게 쉽지 않은 글쓰기 이건만 글쓰기를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왕자 '이림'의 절규처럼 나 또한 글을 읽고 쓰는 거밖에 할 줄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거조차 할 수 없다면 내겐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삶의 나날들 속에서 그 유한함을 느끼는 순간이 올 때면 그 덧없음에 소스라치곤 한다.

한 사람이 태어나 애쓰고 살다가 죽는다. 그게 다이다. 삶이란 것이...

재산을 아무리 많이 쌓아도, 지식과 지혜를 아무리 쌓아도, 죽으면 그 모든 것이 무용하다. 그 덧없음을 견딜 수가 없는 건 나만의 생각인 걸까? 단, 재산은 사후에 기부를 하면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쓰일 것이고, 지식과 지혜는 글로 남기면 누군가의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릴 수 있는 도끼가 되어줄 수 있다. 전자는 아무래도 근근이 살아가는 월급쟁이로선 쉽지 않을 듯하고, 후자는 나도 가능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그것이 카프카가 말하는 그 도끼가 될 수 있을지 보장은 못하지만 말이다.


내게 글쓰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글을 쓰는 이유는 참을 수 없는 이 존재의 가벼움을 견뎌내기 위함이다. 언제 사라져 버릴지 모를, 그렇게 사라져도 어느 누구도 기억조차 하지 못할 나의 존재함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함이다.


글을 쓰기 전까진 나는 '일하는' 존재로서만 살아왔다. '인간'으로서의 존재가 아닌. '일하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은 수동성을 의미하며 조직의 부품으로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자는 시간을 제외한 하루의 60% 이상을 '일하는' 존재로 살아간다. 일이 끝나도 일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우린 소비, 탐식, 각종 오락에 남은 시간을 써버린다. 그렇게 하루가 흘러가고 세월이 흘러 일하지 못하는 나이가 되었을 땐, 남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며 이제야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생기더라도 그 시간을 활용할 수 없게 된다. 그때 느끼는 고립감과 외로움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을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 마주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나의 생각들을 끄집어내야만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글쓰기는 '일하는' 인간만이 아닌 '인간' 으로서의 존재감을 실현할 수 있는 도구로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을 때, 작가라서 신청한 것이 아니라 브런치를 통해 작가로 거듭나기 위해 신청했노라고 소개에 적었었다. 작가라는 말이 내겐 가당치도 않지만, 글쓰기를 통해 이전보다 성장하는 나를 발견하고, 그렇게 나의 존재함을... 글자욱들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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