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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만 열면 보이는 푸른 바다

에드워드 호퍼 'room by the sea'

세상에 명화는 많다.

하지만 보는 순간 '아! 갖고 싶다.'란 생각이 들었던 명화는 단 하나뿐이었다.

바로 에드워드 호퍼의 'room by the sea'.



우연히 명화 액자를 구경하던 중에 호퍼의 'room by the sea'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보는 순간, 난 이 그림에 반하고 말았다. 벽의 반을 채울 정도의 커다란 크기로 창문 옆에 걸어두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그 열망은 실로 강렬해서 '내가 이렇게 그림을 좋아했던가?'란 의아함이 생길 정도였다.


에드워드 호퍼 'room by the sea'


이 그림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뭐였을까?


우선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열린 문 저편으로 넘실거리는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였다. 열린 문을 닫으면, 일상생활을 하는 공간인 '집'이다. 그 일상 공간인 '집'의 문이 열리고 청푸른 바다의 파도가 넘실거린다!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확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창문 옆에 걸어두면 방에 있어도 답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열린 문 저편으로 보이는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해방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에드워드 호퍼는 어떤 화가일까?


에드워드 호퍼는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로 도시의 일상적인 공간들에 희미한 음영을 드리워 도시의 고독함을 그려내는 그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지닌 화가였다. 그림의 1도 모르는 내겐 생소한 이름의 화가였지만 'room by the sea'를 통해 설레는 이름으로 다가왔다.


호퍼의 그림은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나의 그리기 열망 또한 일깨워, 쓴 지 오래된 아크릴 물감을 세상 밖으로 불러냈다. 그렇게 완성한 'room by the sea'. 오랜만에 그린 그림이다 보니 채색도 쉽지 않았고, 선도 삐뚤빼뚤하니 엉망진창이었다.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완성했다. 완성된 그림을 벽에 걸고 나니 뿌듯함이 몰려왔다.




피곤한 일상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가만히 소파에 앉아 오랜 시간 동안 그림을 바라보았다.


내 일상은 그림 왼편으로 보이는 방처럼 답답하다. 그러한 답답함을 떨치기 위해 문턱을 밟고 서 있는 나를 상상해본다. 푸른 시야 너머 시원한 바다 내음이 코에 살랑거린다. 파란 바다 바람이 얼굴을 쓸어 넘긴다. 가슴에 느껴지는 청량감에 절로 깊은숨을 들이마시게 된다. 이런 상상만으로도 답답한 일상의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또 어떤 날엔 그림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집에서 바라보는 푸른 바다는 '가고 싶은 곳'이다. 쉽게 갈 수 없는 곳이기에 선망의 대상이다. 집에선 바다를 그리워한다. 허나 반대로 바다에 가면 집이 그리워질지도 모를 일이다. 주말에 집에 있으면 밖에 나가고 싶고, 밖에 나가면 시끄러운 세상을 피해 집으로 복귀하고 싶은 생각이 절실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은 항상 문 저편의 세상을 꿈꾼다.

하지만 문을 열고 나가면 문 저편에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반복 속에 인생의 만족이란 영원히 없을 거란 생각이 드니 왠지 슬퍼졌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문 저편의 푸른 바다를 일종의 희망이라 부를 수 있다면 그 희망이 살아가는 힘이 되어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명화 'room by the sea'의 정답지 같은 해석들이 존재하겠지만, 그 해석들이 내겐 그다지 중요치 않았다. 벽에 걸린 작은 그림이지만, 그 안에서 나의 사유는 문 저편 광활한 바다처럼 풍부하게 펼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유를 가능케한다는 것이 바로 명화의 진정한 힘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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