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공저자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Junstone입니다.
우선 이전 글 '함께 만드는 제목'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레오님, 로운님, 에너지드링크님, 유미애님, 루카님, 빛작님, 공감의 기술님, 박매드님, 이서지님, 카이로스엘님, JA님, 야미야니님, 양윤미님, 머큐님, sopia 신미영님, 박혜경님, 이빛소금님, 요리하고꿈꾸고 경애님, 진리님, Songvely님, 더나은님, 초원의빛님, 송유정님, 작은나무님, 뽀닥님, 문샷님, 궁리인님, 소리여행님, 보리님, 김세정 연두씨앗님, 알라코알라님, 아침해님, 이작가야님, 도레미님, 나무tree님, Jasmine님, 꽃들님, 다시봄님]
소중한 투표와 새롭게 추천해주신 아이디어는 책 제목을 선정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함께 공동집필 중인 작가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솔직히 나는 개성이 뚜렷하고 주관이 강한 편이라 다른 사람과 함께 공동 프로젝트를 하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대학시절 팀플을 할 때에도 대부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편이라서 '팀원'을 고를 때에도 서포트해주는 성향의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더 수월했었다.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는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공동 프로젝트'를 제안하게 되었다.
선생님, 저랑 글 한번 써보실래요?
선생님과 알게 된 지 약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나는 공동집필에 대한 프러포즈를 했다. 평소의 나라면 확률이 높은 일에만 제안을 던지는 편이나 그냥 '해보고 싶다'라는 느낌만을 가지고 반신반의의 마음으로 질러버렸다. 나는 당연히 '약간의 고민의 시간'을 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바로 흔쾌히 수락해주셔서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는 왜 그와 함께 글을 쓰고 싶었을까?
글에 의사가 필요했더라면 바로 "Yes"를 외칠 친한 의사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처음 '서울대 출신 전문의'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속으로는 호기심 반 어려움 반이 있었다. 지금껏 만나왔던 서울대 의대생들에게서 쌓아온 약간의 편견이 작용했던 것 같다. 그런데 1년 반이라는 시간을 함께 일하며 그가 가진 의학이나 환자에 대한 철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뭔가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많이 공부할수록 권위의식을 세우기보단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인정하려는 자세에서 배울 점도 많았다. 그가 가진 메시지를 함께 글로 풀어보고 싶었다.
선생님에게 총 12 꼭지를 제공받아 '글의 메시지'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열심히 교정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중에서 소개하고 싶은 한 꼭지의 일부를 공개해보려고 한다.
어느 소아과 의사의 악몽
선생님의 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대학병원에서 보호자들을 상담하다 보면 꼭 듣는 말들이 있다. “만약, 선생님의 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혹은 "선생님 혹시 아이가 있으세요?” 의학적 선택을 내리기 어려운 보호자의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하게 건네는 질문일 것이다. 그러나 미숙했던 전공의 시절에는 이런 류의 질문을 받을 때면 살짝 기분이 나쁠 때가 있었다. ‘만약 내 아이였다면 내가 제시한 방법이 아닌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라 생각하나?’ 아니면 ‘내가 아이가 없어서 이해를 못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라고 곡해해서 받아들였던 부분도 있었다. 가끔은 심통이 나서 아이가 없으면서도 쌍둥이 아빠라고 거짓말을 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보호자를 대하는 경험과 노련미가 부족하고 서툴렀기에 생겼던 치기 어린 마음이었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어느덧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나니 당시 보호자들의 어떤 마음에서 그런 질문을 했었는지 이해를 하게 되었으며, 내가 대처했던 방식들이 부끄러운 흑역사처럼 느껴지곤 한다. 부모가 되어보니 아이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으며 그 어떤 질문도 담당 의사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그만큼 아이가 걱정되어서 나온 이야기였다. 부끄러운 시기들이 있었기에 지금은 머리로만이 아닌 마음으로도 보호자를 이해할 수 있는 내공이 생긴 것 같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후회스러운 순간들
어느 날 새벽, 응급실에 한 부모가 아이를 안고 급하게 뛰어왔다. 매우 다급한 목소리로 아이의 배에 뭐가 만져지는 것 같다며 초조해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새벽 당직을 서고 있었기에 졸린 눈을 비비며 내려가 아이의 배를 검진해보게 되었다. 초짜 의사였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배를 만져봤는데 주먹보다 큰 덩어리가 만져졌다. 나 역시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고, 함께 있던 보호자들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선생님, 만져지는 덩어리가 뭐죠? 큰 이상이 있는 건가요?”라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네, 저도 이렇게 큰 덩어리는 처음 만져봅니다.”라고 대답했었다.
한 아이는 개인 병원에서 혈액 검사한 후 백혈병이 의심되어 전원을 온 응급실 환자였다. 새벽녘이었으니 지방 병원에서 급하게 올라온 것으로 추정되었다. 의사인 내가 보기에는 아이가 너무 창백했으며 혈액 검사 상 소위 ‘빈혈 수치’라고 불리는 혈색소가 정상인의 1/4 수준이었다. 이를 설명하자 보호자는 “아이가 뽀얗고 예쁘게 하얀 줄 알았어요…”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당시 설명의 의무에 투철했던 나는 “혈색소가 낮으면 창백하고 하얗게 보일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을 했었다.
한 환자는 사고로 뇌사 판정 직전의 환자였다. 의학적으로 보기엔 뇌사판정을 내리긴 어려우나 사실 상 회복 가능성은 없는 ‘장기 입원’ 환자였다. 뇌사 판정을 기다리면서 이 교수님, 저 교수님을 떠돌며 병동을 전전하던 환자와 보호자는 병실 자리가 귀한 3차 병원의 퇴원 압박을 받고 있었다. 서울대학교 병원의 입원 자리는 항상 부족하고 대기가 많기 때문에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는 요양 병원에서 케어하기를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보호자는 항상 회진을 돌러 가면 아이가 어떻게 움찔했으며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설명해주곤 했다. 어떻게든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느 정도 친분이 쌓였다고 판단하였을 때, 나는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보호자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움찔거림은 단순한 반사 반응입니다. 현재로썬 회복 가능성이 매우 낮고, 아이는 오히려 더 고통받고 있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었다.
절대 부모의 잘못이 아니다
어느 날 아이를 놀이방에 데려다주는데, 선생님께서 “따님이 처음에는 차가웠는데 이제는 많이 자신감도 생기고 친구들과도 잘 놀아요!”라고 신나게 이야기를 해주셨다. 분명 선생님은 우리 아이가 예전에 비해 자신감과 사회성이 늘었다는 칭찬을 해주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귀에는 후단의 칭찬이 들리기보단, ‘어? 우리 아이가 왜 처음에 차가웠지? 왜 사회성이 부족했었지? 내가 뭘 잘못했나?’라는 생각이 더 앞선다. 부모란 늘 그런 것일까?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제삼자가 보았을 때… 내가 그만큼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인가? 내가 잘못한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것은 언젠가 죄책감의 씨앗으로 자라날지도 모른다.
후회가 남는다.
첫 번째 환자를 데리고 온 부모에게는 조금 더 침착하게 “이 부분은 정말 많이 만져봐야 압니다. 부모님은 아무리 신경 쓰시더라도 이 정도 크기면 눈치 못 채시는 게 당연합니다”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두 번째 환자에게는 “피부색으로 빈혈을 판단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부모님이 어떻게 얼굴만 보고 빈혈인지 알겠습니까?”라고 말해줬어야 했다. 마지막 환자의 경우에는 보호자의 이야기를 조금 더 오래 들어줄 걸 그랬다. 보호자가 잡고 있는 희망의 끈을 천천히 놓을 시간을 주었어야 했다. 이런 후회들이 남아 가끔씩 잠을 설칠 정도로 악몽처럼 떠오르곤 한다. 그 찰나의 순간 의사가 ‘보호자는 당연히 모를 수 있다’는 말을 해줬다면, 넋두리를 들어줄 여유가 있었다면 그 부모의 죄책감이 그렇게 커지지 않았을 수 있었을 텐데…
아이의 중증 질환은 마치 교통사고처럼 가족에게 찾아온다. 갑자기 발병하는 경우도 있고, 경미한 질환인 줄 알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눈치를 채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런 상황에서 꼭 해주고 싶은 말이면서도 보호자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소아의 중증 질환은 절대 부모의 잘못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부모라 할지라도 더 빨리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기에 그 누구도 소아의 중증 질환의 발생 원인을 부모에서 찾아선 안 된다. 심지어 유전 질환 조차도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며 대부분은 교통사고처럼 아이가 만들어질 때 우연히 생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소아의 중증 질병에 대해 깊게 알아보기
소아의 중증 질환은 종류도 많고 양상도 제각각이기 때문에 일관적인 조언을 하긴 어렵지만, 보호자에게 꼭 말해주고 싶은 두 가지 조언이 있다. 첫째는 ‘세계 최고의 명의를 찾는데 너무 에너지를 쏟지 말자’이다. 대부분의 중증 질환은 세부 분류 상으로 들어가 보면 ‘일반적인 유형’인 경우가 많고, 명의는 이런 ‘일반적인 유형’ 외에 특이하거나 아주 고위험군일 때 빛을 발하게 된다. 오히려 명의가 있는 병원에 ‘일반적인 유형’의 중증환자가 몰리게 되면 환자가 많아 물리적으로 환자 당 신경 쓸 에너지나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일반적인 유형’이라면 약간 규모가 작더라도 내실이 튼튼한 병원을 찾는 것을 추천한다. 두 번째는 대체 치료 요법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반적으로 중증이나 서양의 치료법으로 치료가 어려운 난치성 환자의 경우 보호자들이 대체 치료 요법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이를 금지하도록 유도하지 않는다. 차라리 한약이나 침과 같은 대체 요법을 선택하였다고 하더라도 어떤 치료를 구체적으로 하고 있는지 담당 의사와 미리 상의하고 솔직하게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담당 의사가 이를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소아의 중증 질환은 절대 부모의 잘못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