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에게 '얘는 정말 착한 것 같아~'라는 이야기를 듣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데 사실 요즘 세상에는 '착하다'라는 뜻이 문자 그대로 착하다는 느낌으로만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오히려 '다루기 쉬운 애' 혹은 '만만한 애'라는 것을 돌려서 평가하는 기분이 든다. 몇몇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강제로 '착함 프레임'을 씌운다. 이를 통해 소극적인 성격을 착한 것이라고 '가스 라이팅'하여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는 데 활용하곤 한다. '착함 프레임'에 빠진 사람들은 남들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해 계속 손해 보는 장사를 되풀이한다. 그들이 바보인 것이 아니라 정글 같은 세상 속에서 누군가의 '먹잇감'이 되어버린 것 같다.
주변에도 '자신보다 타인의 기분을 먼저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다. 남들의 기분을 배려해주는 것이기에 분명 착한 것은 맞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면누구보다 '기분의 중요성'을 아는 섬세한 사람이기 때문에 타인을 배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말 '선하고 착한 사람'과 '배려하다가 착함 프레임'이 씌어진 사람들 명백히 다르다. 선하고 착한 사람(해탈의 경지)은 어떤 외부의 자극에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하면서 유연하게 흘려보낸다. 하지만 '착함 프레임'에 씌인 사람은 모든 외부의 자극을 맞아가며 상처를 받는다. 특히 요즘 같이 '남의 기분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과 '되로 주고 말로 받으려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착함 프레임'에 씌인 사람들은 사람 관계에서 더 스트레스를 받고 몸과 마음의 병을 얻고 있었다.
그런 친구에게 물었다.
"너는 스스로 착하다고 생각해?"
"아니... 나는 착하지 않은데 주변에서 자꾸 착하다고 하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내가 이해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더 무리한 부탁을 하고 막대하는 것 같아. 그래서 늘 참고 참고... 억울하지만 내 속만 터지고 나만 힘들고 지쳐"
"하지만 남들이 상처받을까 봐 너의 마음이 상처받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너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은 너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는 사람인데 그들을 위해 너를 희생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참는다'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참는다라는 단어는 억누르고 견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물리학에는 '질량 총량의 법칙'이 존재하듯이 마음에도 '배출 총량의 법칙'이 존재한다. 외부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아무리 참는다고 해도 어떤 방식이나 형태로든 꼭 배출되게 되어있다. 그런 독기가 담긴 스트레스들이 배출되기까지 자신의 몸을 곪게 할 것이고, 그런 독기는 타인에게 쏘아질 것이다. 그런데 그 타인은 오히려 남이 아니라 더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라는 속담처럼 본인이 풀기 쉬운 곳에 가서 화풀이를 하는 셈이다. 이런 상황은 약국에서도 많이 발생한다. 약국에 오는 환자들은 '몸도 아프지 + 병원에서 오래 기다렸지'로 예민함이 극치에 달한다. 그렇게 쌓인 스트레스를 의료 흐름의 종착지인 약국에서 쏟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폭발을 통해 싸움이 일어나면 그건 해소가 아니라 또 다른 스트레스의 생산이다.
스트레스를 쌓지 않는 것도 중요하고 배출의 방향을 명확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나는 '흘린다'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날아오는 피구공을 슬쩍 피하듯이 '날아오는 스트레스의 화살'들을 사전에 피해버리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참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스트레스를 어떻게 받아내냐의 관점에서는 전혀 다른 방법이다. 특정 상황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감적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당면한 상황에서 조금 벗어나 비우는 것이 내가 입는 상처를 최소화시킬 수 있다.
사람은 각자만의 '화남 기준선(이 정도까지는 화를 내지 않는다는 기준)'이 존재한다. 위에서 얘기한 친구들은 속으로 참으면서 화남 기준선을 높이고 있었고, 나는 흘려버리면서 화남 기준선을 높이고 있었다.
예시 1. 식당에서 음식을 먹다가 머리카락이 나왔을 때
친구: (헐 머리카락이네... 혐오다. 주인에게 말해야 하나 어떡하지... 요즘 소상공인들 힘들다는데 친구가 보기 전에 내가 슬쩍 숨겨야겠다. 근데... 더 이상 못 먹겠다.) 우리 2차 갈까?
나: (앗 머리카락이네. 일하다 보면 머리카락이 들어갈 수 있지 뭐~) 우리 2차 갈까?
예시 2. (알바 중) 손님이 이미 개봉한 상품이 별로라면서 환불을 요구할 때
친구: 아 죄송합니다. 그게 원칙상 바꿔드리기 어려운데... 제가 해드리기 어려운데... 그럼 환불해드릴게요. (아 사장님한테 어떻게 말하지... 아... 그냥 내 돈으로 메워야겠다. 정말 운도 없고 짜증나는 하루네...)
나: 정말 안타깝지만 개봉 후에는 구매한 장소에서 변심으로 인한 환불이 어렵습니다. 회사 고객센터로 문의해보실래요? 제가 번호 알려드릴까요? (저렇게까지 환불하려는 이유가 있겠지 뭐, 일단 내 선에서는 다 했고 안되면 사장님에게 토스해야지)
실제 예시 3. 헬스 PT트레이너의 불친절로 환불 요청했는데 불공정한 환불 조건을 내걸었을 때.
친구: 내가 서명한 거고... 덩치도 너무 커서 무섭네. 그냥 내가 포기하지 뭐... 환불 해주세요.
나: 뭐라고??? 우영우 빙의! 드디어 나도 내용증명을 써보는 건가? (설렘 가득)
내가 봐주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불공정한 상황을 마치 공정한 것처럼 꾸며 잘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사람들이다. 유사한 일로는 이전에 불공정한 보험계약에 대해 민원해지를 요청해 보험사를 상대로 전액 환불을 받았던 적도 있다. 이번에도 친구의 저런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겸사겸사 이런 일에는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은지 경험시켜주고 싶었다.
<상황 요약> 친구는 헬스장에서 개인 트레이닝 다니려고 방문했다. 헬스장에서는 1회에 10만 원이지만 이벤트가를 적용하여 1회에 5만 원으로 하여 총 20회를 100만 원(현금결제 기준)에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래의 내용을 자필로 작성하라고 요구했다.
계약서 조항. 1) 환불 시에는 전체 금액의 10%를 위약금으로 제한 후 (사용 횟수) x (할인 적용 전 금액)을 차감한 뒤 환불해준다. 2) 개인 트레이닝의 계약기간은 3개월로 그 기간이 지나면 환불을 할 수가 없다.
친구는 열심히 PT를 받을 것이니 환불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본 계약서를 자필로 쓰면서 서명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PT를 4번 정도 받았을 무렵 '트레이너'의 과실로 부상을 당하게 되었다. 트레이너는 잡아준다면서 친구의 평소 중량보다 과한 중량을 요구하였으나 중간에 줄을 놔버리면서 친구는 '근육 파열'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친구는 초보이다 보니 그것이 근육통인지? 파열인지? 인지하지 못해서 3일 후에 병원을 가서 '전치 2주' 진단서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헬스 트레이너에게 말했더니 사과가 아니라 "회원님이 너무 약하신 거잖아요 ㅎㅎ 제가 본 사람 중에 최약체입니다"라는 비웃음을 들었다.
헬스장에서는 환불을 요청한다면 100만 원 - 10만 원 (위약금) - 10만 원 (1회당 비용) x 4회 = 50 만원을 돌려준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100만 원 - 10만 원 (위약금) - 5만 원 (1회당 비용) x 4회 = 70 만원을 받아야 정상이 아닐까?
나는 환불 원정대가 되어 헬스장을 방문했다. 카운터에서 환불 상담을 요청하면서 사장님을 뵙고 싶다고 했다. 나는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협상안을 사장님에게 제안했다.
"사장님, 제가 소비자보호원을 통해 불공정 계약임을 주장하여 정상 환불을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피해를 입은 부분에 대해서도 치료비를 청구할 수도 있고요. 그리고 헬스장도 현금 영수증 의무발행 대상인 것 아시죠? 현금영수증 미발행으로 신고하면 20% 가산세가 붙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서로 번거로우니 좋게 합의했으면 합니다. 깔끔하게 70만 원으로 환불해주세요"
사장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화를 내기 시작했다.
"뭐요? 계약서 서명하셨죠? 그럼 합법입니다. 신고해보세요. 우리가 무조건 이겨요. 그리고 치료비? 본인이 약해서 다친 거면서, 애초에 그게 헬스장에서 다쳤는지 밖에서 다쳤는지 증거가 없잖아요. 우린 50만 원만 환불해줄 거니 알아서 하세요."
"네, 그럼 알아서 하겠습니다." 더 이상 대화가 통할 것 같지 않아 바로 나왔다.
나는 본 계약의 불공정함을 주장하기 위한 법률 조항을 찾아보았다. 몇 가지 조항을 찾았고 (아래 참고) 이를 통해 본 계약 행위가 무효임을 입증하고자 했다. 상황과 주장을 정리하여 헬스장으로 '내용증명서'를 보냈다. 내용증명은 법적인 효력은 없으나 환불 의사를 공식적으로 전달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추후에 다양하 쓰일 수 있다. 내용증명서에는 친구는 헬스 트레이너의 부주의에 의해서 손해를 입었고, 그로 인해 계약이 깨졌으므로 위약금은 친구가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100만 원 - 20만 원 (4회 비용) + 10 만원 (위약금) = 90만 원을 요구했으머 치료비, 내용증명 비용, 등기우편비용, 진단 소견서 비용, 연체이자를 모두 별도로 포함하였다. 일단 최대한의 비용을 요구하는 것이 추후 조정 과정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소비자 상담센터 상담을 했으나 부정적인 답변을 얻어 한국 소비자원에 피해 구제를 신청하였다. 담당 조사관이 선정되었고 '피해 사실'에 대해서 조사를 시작했다. 친구는 내용 증명서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사실들과 증거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담당 조사관에게 전달했고, 소비자원에서도 우리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조사 과장에서 친구가 헬스장에서 다쳤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헬스장에 CCTV 확인을 요청했으나 헬스장에서는 자료가 분실되었다는 핑계를 대면서 제공을 해주지 않았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조사관은 강력하게 헬스장 사장을 몰아붙였고, 극적인 환불 합의를 이끌어주셨다. 결국 내가 초기에 제안했던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환불을 받게 되었다. 게다가 친구는 현금영수증 미발행을 신고하였기 때문에 포상금까지 받을 예정이다.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6조 (일반원칙):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공정을 잃은 약관조항은 무효이다. 제9조(계약의 해지, 해제) 5항: 계약의 해제 또는 해지로 인한 사업자의 원상회복 의무나 손해배상의무를 부당하게 경감하는 조항은 무효이다.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중 '계속거래에 대한 내용'에 따라 소비자는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잔여 이용료가 있는 경우 환급받을 수 있는 내용이 있다.
친구도 처음으로 참지 않고 불합리함에 대응하는 경험을 해보았으니 앞으로는 혼자만 당하면서 살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