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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준 Nov 13. 2022

공부 재능이 없어도 계속하면 결국 될까?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좋았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 시작을 되짚어보면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초등학생 시절에 나는 남들보다 두드러지는 것이 없었다. 운동도 못하고, 싸움도 못하고, 공부도 못하고, 맨날 게임하면서 게임도 못했다. 뭐든 잘하는 친구들은 주변에는 늘 아이들이 몰렸고, 그들은 반장이 되거나 인기스타가 되곤 했었다. 그 당시에는 부럽긴 했으나 '내가 그렇게 되어야지'라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만큼 벽이 높아 보였었다. 그냥 나는 소수의 친구들과 게임만 하면서 지내는 것이 좋았고 학급 전체적으로 보면 존재감이 없는 학생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전교 꼴찌라니... 그래서 그런 것인가? 지금까지 연락하는 초등학교 친구는 한 명도 없다.


중학교를 가면서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공부를 하고 성적이 오르면서 주변에서 '공부를 잘하는 애'라는 인식이 생겼다. 존재감이 없던 나에게 아이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 문제 좀 가르쳐줘"

"시험 문제 좀 집어줘"

"답이 몇 번이야? 왜? 가르쳐줘"

사소한 일이지만 늘 대중의 관심 밖에서 지냈던 나에게는 아주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들에게 배움을 주면 그들을 고마워했고 나에게 더 잘해주기 시작했다. 나는 더 가르쳐주기 위해 더 먼저, 더 깊게 공부를 했던 것 같다. 그런 동기가 나의 성적 향상에 더 큰 도움이 되었다. 늘 시험기간만 되면 내 옆자리는 문전성시였다. 심지어 일진들도 찾아와 문제를 풀어달라고 했고, 그 덕인지 중학교 시절 맞고 다닌 적은 없었다(ㅎㅎ).


가르침에 대한 열정이 꽃을 핀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수능을 준비하면서 많은 친구들이 나에게 항상 질문하였고, 나는 1대 1 과외를 해주는 수준으로 친구들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가르치는 게 나의 재능인가?'라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나는 내 재능이 무엇인지 찾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랬겠지만)


그런데 수많은 친구들을 그들과 같은 시선에서 가르쳐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부는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죽어라 노력하면 되는 것일까?'

그 시절에는 결론을 내리긴 어려웠다. 그런데 이제 10년이 넘게 지난 시점에서 지금까지 가르쳐본 친구들이 어떻게 성장하였는지를 추적 관찰해볼 수 있게 되었다.


직접 본 사례들

1) 중학교 시절부터 7년간 과외를 해주었던 친구 A

-> 이 친구는 중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전교 꼴찌권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내가 계속 가르친 이유는 엉덩이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무거웠다. 내가 보기엔 평균 또래보다 사고력, 해석력, 이해력, 계산력, 암기력 모든 것에서 너무 떨어졌다. 고등학교 1학년 모의고사에서도 거의 평균 5~6등급 수준을 맞았다. 2년간 독서실을 같이 다니면서 매일 조금씩 수능 과외를 해주었다. 성장 속도가 너무 느렸다. 그래도 친구니깐 포기하진 않았다. 결국 수능에서 7/5/5 (언/수/외) 등급을 맞고 재수를 하게 되었다.

-> 나도 이과로 바꾸면서 산속 고시원에서 재수를 할 때였다. 이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재수학원에서 애들과 어울려 다니며 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당장 그만두고 내가 있는 고시원을 오라고 했다. 그래도 정신을 차렸는지 7월 즈음에 내가 있는 고시원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때부터 11월 수능까지 매일 같이 언/수/외 과외를 해주었다. 그래도 7년간 가르쳐온 보람이 있었는지 3/3/3을 받았고, 원서 접수를 잘해서 '인 서울 대학교'를 갈 수 있었다. (모든 친구들이 충격을 받은 사건이었다.)

-> 솔직히 보면, 이 친구의 전체적인 지능 능력이 뛰어나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요령이 생기고 숙련도가 생겼기 때문에 수능이라는 것에 익숙해진 것이다. 대학에 간 이후에 이 친구는 놀지 않고 5년간 토익을 공부했다. 그럼에도 최고 점수는 800점이었다. 하지만 400대에서 800대로 올린 것이기 때문에 엄청 잘한 것이다. 주변 친구들은 이 친구를 보고 '비효율적인 애'라고 놀려댔지만, 내가 보기엔 저 친구만큼 노력하는 애는 드물었다. 그렇게 21살부터 10년을 취업에 매진한 결과 공기업에 최종적으로 합격했다. 이 친구가 공기업에 합격하기까지 150곳 이상의 회사에 자소서를 넣고 떨어지기를 반복했고, 자괴감과 불면/불안증에 시달리면서도 도전을 포기하진 않았다. 결과론적일 수도 있겠지만 이 사례를 보면서 '치망순역지(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말이 생각난다. 공부에 재능은 없었지만 끈기라는 재능으로 이를 대체했다고 생각한다.       


2) 중학교 시절부터 1년간 과외를 해주었던 친구 B

-> 이 친구는 '재능은 있었지만 그걸 깨워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친구다. 중 3 시절 우연히 짝꿍이 되면서 알게 된 친구이다. 학교에서는 중위권 정도를 하는 친구로 잘하지도 혹은 못하지도 않는 친구였다. 그런데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공부하는 법을 조금씩 가르쳐주니 그것이 불쏘시게로 작용했다. 그 친구의 '내적 동기'가 활활 타오르더니 노는 것을 접고 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 그 친구는 내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고 SKY에 들어가게 되었고, 대학 시절에도 놀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이른 나이에 회계사가 되었다. 이 사례를 통해서는 연료를 태워주는 계기가 중요함을 확인했다.  


3) 고등학교 시절부터 공부를 가르쳐준 고등학생 친구들

-> 물론 외고를 들어온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각자의 중학교에서는 전교권을 하던 학생들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공부를 잘하던 친구들이 모여도 결국 순위를 매기면 1등이 생기고 꼴등이 생긴다. 그럼 꼴등의 입장에서 외고를 계속 다니는 것이 좋았을까? 아니면 일반계로 전학 가서 공부를 하는 게 좋았을까? 공부든 스포츠든 인생은 멘털이 작용하는 바가 매우 크다. 그래서 내가 꼴등이었다면 외고를 나가는 것을 택했을 것 같다.

-> 어쨌든 외고를 다니는 친구들의 목표는 중상위권 대학이 아니라 최상위권 대학이었다. 여기 있는 친구들은 어느 정도 본인들의 능력을 발휘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재능이 갑자기 폭발하는 경우는 흔한 일은 아니었다. 재능의 성장 속도를 어떻게 높이느냐가 관건인 것 같았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대학교 시절 그리고 졸업 후의 흐름을 보았을 때, 학창 시절 약간의 '차별성'과 '비상함'을 가지고 있던 친구들이 대학 졸업과 그 이후에도 계속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다.

-> 그런데 그런 비상함이 없더라도 '수능 운'이 터져서 SKY를 들어갔던 친구들도 많았다. 하지만, 주변 동기들과의 자신과의 괴리감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들은 학교의 이름 아래에서만 웅크리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4) 드림클래스와 학원 강사를 하며 가르쳤던 중학생 친구들 80명

-> 수학과 영어 강사로 약 4년 정도 일을 했었다. 학생들을 가르쳐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학생들을 오래 가르치다 보면 '공부로서의 잠재력'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는 단순히 현재의 실력이 아니라 태도나 단-중기 간의 성장세 등을 종합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나중에 고등학생 혹은 대학생이 된 이야기를 전해 듣다 보면, 내가 예상했던 것과 대부분 일치하는 결과들이 나왔다. 그것은 내 안목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중학교 시절 이미 떡잎이 정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떡잎이 큰지 안 큰지는 조금만 주의 깊게 보는 선생님이라면 알 수 있는 일이다. 1번 사례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잠재력에 있어 '태도'라는 부분에 큰 가중치를 두는 편이다.  

 

5) 대학시절 공부를 가르쳐준 대학생 친구들

-> 대학시절을 굳이 언급한 이유는 '대학까지 왔을 때'의 상황에서 솔직히 급성장하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1학년 1/2학기 때의 등수가 거의 마지막 졸업 등수로 거의 정해지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상위권에서의 이야기이다). 내가 약대에 입학해서 치른 첫 시험에서의 1~5등이 결국 모든 학기를 합친 최종 등수로 그대로 이어졌었다.

-> 대학시절(약대 x)에도 동기들은 보면 '쟤는 좀 다른데?'라는 느낌을 받는 친구들이 있다. 앞서 말했듯이 실력을 떠나서 공부를 대하는 자세부터 남다르다. 첫 학교에서 그런 느낌을 받은 친구 4명이 있었는데 모두 내 예상대로 의학전문대학교 시험을 붙었고 지금은 전공의 과정을 하고 있다.


결론

 (그저 살아온 경험을 통해 추측해본 개인적인 의견일 뿐입니다. 당연히 반대 사례도 많고 다른 의견도 많은 것을 알고 있답니다.)

1) 수재나 천재 수준의 비상함은 타고나는 것이며 노력으로 만들 수는 없다.
-> (스스로 천재인지 아는 법) 좋은 대학이나 전문직이라고 천재는 아니다. 이건 다른 개념이다. 살면서 제삼자인 각 분야의 권위자 혹은 경력자들에게 천재 소리를 밥 먹듯이 들어왔으면 천재다.
-> 하지만, 천재도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내적 동기와 열정'이 필수적이다. 회사 다니는 '조기 축구 잘하는 메시'는 의미 없지 않은가?

2) 천재가 아니어도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자격증을 따고, 좋은 회사에 취업할 수 있다.
-> 물론 타고난 머리가 좋을수록 달성 속도를 앞당기거나 더 효율적으로 많은 일을 수행할 수 있다.
-> 그렇지만 천천히 묵묵히 가더라도 달성할 수 있는 일들이다. 괜히 비교하면서 스스로의 희망을 꺾지 말자.
-> 좋은 회사에서는 사실 천재를 원하지 않는다.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사회이기에 느리지만 꼼꼼한 사람도 필요하다.  

3) 조금 해보다가 안 될 것 같아서 빠르게 포기하는 것은 현명한 것일까?
-> 인생의 선택은 온전히 본인의 몫이고, 어떤 선택을 해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 합리적으로 선택하고 집중하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지, 그런 행위를 '자기 합리화'의 도구로 삼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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