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편, 더 이상 남 일이 아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내일 혹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 아니다. '내일 혹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통제'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2020년 연말을 뜨겁게 달궜던 화제의 드라마 '펜트하우스 시즌1'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하였다. 펜트하우스의 어른들은 자식들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온갖 궂은일은 마다하지 않고 정상을 향한 끝없는 욕망을 드러낸다. 그중, 특히 천서진 (김소연 배역)은 실력이 부족할 딸에게 본인의 명예, 부 그리고 스포트라이트를 물려주기 위해 악착같은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그녀의 딸 하은별은 집안의 높은 기대감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많아 불안해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하은별은 청아 예고 오디션 시작부터 불안 증세를 보이더니 기대에 대한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시험장을 뛰쳐나가버린다. 이는 '불안 장애'의 한 현상이며 일상생활까지 영향을 주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배경을 이용해 합격한 하은별은 본인의 실력이 들통날까 봐 두려움에 시달리는 '가면 증후군'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상담과정에서 '불안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늘 조심스럽고 어렵다. 말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상태를 숨기거나 병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사람도 있고 혹은 쉽게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를 겪어보지 않는 사람들 중에는 불안장애를 가벼운 감기 수준의 질환으로 생각하거나 편하고 나약하게 살아서 생긴 병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최근에 많은 연예인들이 용기 있게 '불안 장애'를 겪고 있음을 밝히고, 당당히 치료를 받고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비슷한 증상을 겪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다. 또한 이를 통해 '불안 장애'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도 많이 개선된 것같다. '불안 장애'는 사람마다 가지각색의 다양한 원인들에 의해 발생하며 증상 및 발현 양상도 다소 차이가 있다. 나 역시 '특정 사건'과 관련된 불안 장애를 겪어본 경험이 있고, 건강해보이는 주변 지인들이나 환자들도 각자만의 '불안 장애'를 겪고 있거나 경험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누구나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불안'이란 우리에게 닥친 혹은 당면하게 될 위험에 대한 경고 신호로써 우리 몸에서 자연스럽게 느끼는 정상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이런 불안이 비정상적으로 심해질 경우, 직면한 위험에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하게 되고 정신적인 고통과 신체적 증상이 심해져 일상생활까지 무너지게 된다. 이런 불안 장애는 더 이상 남일이 아니고, 내 일이 될 수도 있고 내 주변의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정신건강도 가끔 들여다보는 게 어떨까?
아픈 것은 모두 힘들고 슬프지만 몸 보다 정신이 아픈 것은 더 힘든 것 같다. 내가 불안 장애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어제까지만 해도 나에게 당연했던 일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이 병을 낫기 위해서는 약물 치료도 중요하지만 본인이 낫겠다는 강한 의지 (행동치료, 재활치료, 건강 관리, 예방 등)가 중요하다. 그러나, 불안 장애는 두려움과 불안을 일으켜 치료에 필수적인 '강한 의지'를 무너뜨려버린다. 따라서, 이 질환을 혼자만의 싸움으로 극복하기에는 정말 외롭고 힘들다. 내가 건강하고 주변에 아픈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해주고 매일 '흔들리는 그 마음'을 꽉 잡아주어야 한다. 본인이 혼자 아픔을 겪고 있다면, 주변에 믿을 만한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불안 장애'는 완치가 되는 병이 아니고, 조절 혹은 관리해나가는 병이다. 언제 갑자기 다시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정신건강 관리에 힘써야 한다. 간단하게 불안 장애의 특징과 현재의 의학적인 치료방법에 대해서 알아보자.
불안장애의 종류와 치료.
1) 범불안장애 : 일상생활에서 겪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과도하고 조절이 불가능한 불안 증상을 말한다. 주로 안절부절못하고, 집중을 잘 못하며, 근육이 긴장되어 있어 쉽게 피로해지고, 수면장애를 겪으며 예민한 상태를 유지한다.
초기 치료 전략은 항우울제 (SSRI/SNRI) + 항불안제 (BZD)를 사용하고 있다.
2) 공황 장애 : 특별한 이유 없이 예상치 못하게 발생하는 극단적인 불안 증상을 말한다. 극도의 공포심을 느끼며 심장이 터지도록 빨리 뛰거나 호흡이 가빠지고 땀이 난다. 비현실감이나 분리되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손발이 차가워지거나 심하면 실신하기도 한다. 이를 겪은 사람들은 공황 증상에 따라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걱정을 해서 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하거나 일상생활을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
초기 치료 전략은 항우울제 (SSRI/SNRI) + 항불안제 (BZD) + 인지행동 치료를 최우선으로 택하고 있다. 인지행동 치료로는 교육, 인지적 접근, 호흡 재훈련, 이완, 자극 감응 노출, 실제 상황 노출 등이 있다.
3) 특정 공포 장애 : 특정 상황이나 환경 혹은 대상에 대한 지속적인 불안과 두려움을 보이는 증상을 말한다. 흔히 알려져 있는 사례로는 동물 공포증, 고소공포증, 환 공포증, 시험 공포증, 폐쇄 공포증, 엘리베이터 공포증 등이 존재한다. 일부 특정 공포증은 마주치지 않는다면 일상생활에 불편을 초래하지 않기도 한다.
약물 치료로는 특정 상황에 항불안제 (BZD)를 사용하기도 한다. 주된 치료방법으로는 심리치료의 하나인 노출 요법을 쓰는데 점진적으로 천천히 두려움의 대상에 반복적으로 노출시키는 것이다. 이는 주로 혼자 하기보단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4) 이외에도 사회불안 장애, 분리불안 장애 등이 있다.
대부분의 불안장애 치료에는 항우울제 (SSRI)를 기본 약물치료로 사용한다. 복약지도를 하는 경우 '나는 우울증도 아닌데 왜 항 우울제를 준거냐'라고 버럭 화를 내시는 분들도 자주 보았다. 쉽게 설명하자면 SSRI라는 약은 우리 신경세포 밖 시냅스라는 공간에서 세로토닌의 재흡수를 막아주는 약이다. 즉, 오랜 기간 세로토닌이 신경에서 작용을 하도록 도와주는 약이다. 세로토닌은 우리 몸에서 불안과 행복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로 부족할 경우 불안증이나 우울증을 유발한다. 따라서 SSRI는 불안증과 우울증 모두 쓰이는 약물이다. SSRI 이외에도 삼환계 항우울제 (TCA)나 아민 산화효소 억제제 (MAOI) 등도 쓰일 수 있지만, SSRI가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적기 때문에 1차 치료요법으로 사용된다.
그렇다면, 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좋을까?
혹은 주변에 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면 도움을 줄 수 있을까?
1) 정신과에 가서 상담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몸이 아프면 아픈 증상을 말하는 것처럼 내가 상태와 불안한 원인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 정확한 상태에 대한 진단이 가능하다. 치료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은 본인과 맞은 정신과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다. 바람직한 치료의 시작은 치료자와 환자 사이에 유대관계 (라포)를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치료자에게 신뢰를 주고 나의 상태를 이야기할 용기를 가져보자.
2) 약물 치료를 받으면 큰일 나는 것 처럼 생각하지 말자.
초기에는 약물 치료의 도움을 받으면서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범불안장애의 경우 약 4주의 초기 치료, 약 9개월의 유지치료 그리고 약 14주간의 약물 감량 기간을 가지게 되는데, 그 기간 동안 충분의 마음을 단련하고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을 쌓도록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하자. 그리고, 스스로 이겨낼 만한 힘이 생기고 적절한 시기에 약물치료를 중단하면 된다.
3) 마음을 꾸준하게 단단히 유지해야한다.
초기에는 강한 정신력과 약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불안함이 개선될 수도 있다. 조금 개선됐다고 해서 마음을 놓거나 약을 빼놓고 먹거나 하면 갑작스럽게 다시 찾아올 수도 있다. 불안증은 완치한 다기보단 조절해나가고 예방해간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흔들리지 말고 마음을 굳건하게 지켜야 한다.
4) 무조건 회피하지 말고 가끔은 맞서야 한다.
본인이 불안을 느껴하는 대상을 피하고 회피할 수 록 그것에 대한 두려움은 커지게 된다. 만약 일상생활과 연관된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면 본인의 정상적인 삶에 피해를 줄 수 있다. 노출 요법을 통해 조금씩 이겨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노출 요법 시에는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도 효과적이다.) 또한 본인만의 진정시키는 방법을 확보해야 한다. 예를 들면, 불안한 상황이 되면 호흡법을 바꿔보거나, 상황이 된다면 앉거나 누울 수도 있고, 손과 발을 주물러 보기도 하고, 물을 마실 수도 있고, 내가 평온했던 기억이나 순간을 떠올려보거나 심할 경우 (응급 시 복용으로) 처방받은 항불안제를 복용할 수도 있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마인트 컨트롤을 계속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불안의 상황이 오더라도 내가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과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 자신감 형성에도 중요하다.
5)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겁내지 말자.
간혹 불안장애를 겪는 사람들 중에는 본인이 겪는 상황을 다른 사람들이 보거나 알게 될까 봐 겁내는 사람들이 있다. 또는 남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마음은 스스로를 더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겁내지 마라. 세상이 그렇게 냉혹하지는 않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더라도 도와줄 사람이 분명히 있다. 도움을 받고 나중에 누군가에게 다시 도움을 베푸면 되는 일이다. 일단 건강해지자.
1) 상대가 불안한 만큼 나는 돌이 되어야 한다.
상대방은 불안한 상황이다. 그렇기에 나는 반대로 돌이 되어야 한다. 갑작스런 상황이나 위기에도 놀라거나 불안한 티를 내면 안 된다. 상대방은 나에게 의지를 하고 있기 때문에 옆에서 묵묵히 믿고 응원해줘야 한다. 특히, 상대방이 새로운 도전 (노출 요법)을 한다고 했을 때에는 상대방도 큰 용기를 낸 것이다. 본인이 걱정된다고 상대방을 무작정 말리기보단 함께 도전에 해주고 옆에서 응원해주도록 하자.
2) 이해가 안 가고 힘들더라도 진심으로 대해주어라.
상대방의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 오락가락할 수도 있다. 기운을 차렸다가도 풀이 죽고, 도전하려다가도 포기하고, 웃다가도 울기도 하고, 스스로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한다. 간혹 '이걸 왜 못해', '마음을 단단히 먹으면 되잖아', '도대체 왜 무서운 거야?' 등의 잘못된 언행을 하는 사람도 있다. 상대방도 어제까지만 해도 당연하게 하던 일이었다. 우리보다 당사자가 더 힘들다. 억지로 이해한 척 조언하기보단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함께 힘을 주면 된다.
3) 끝까지 도와주어야 한다.
처음에는 선의의 마음을 가지고 도와주려고 했을 수 있다. 하지만 불안장애를 이겨내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당사자도 지치고 힘들지만, 주변 사람도 지칠 수있다. 그렇다고 주변사람이 먼저 포기해버리면 당사자에게는 엄청난 고통과 상처를 줄 수 있다. 도움을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끝까지 책임 질 필요가 있다.
나도 특정 공포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중요한 시험을 오랜 기간 집중해서 준비하다 보면 그 시험을 망치고 떨어지는 상상을 계속 나도 모르게 하고 있다. 그러고 나면 갑작스럽게 심장이 뛰면서 땀이 나고 집중이 안 되는 증상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중요한 시험을 준비할 때에는 늘 불면증을 달고 살았고, 새벽 5시가 넘어서도 쉽게 잠들지 못해 수면유도제를 먹고 자는 경우도 많았다. 시험에 대한 불안증의 시작은 수능이었다. 오랜 기간 열심히 시험을 준비해왔고, 주변의 기대와 관심을 받으며 수능을 치르게 되었다. 언어영역을 무난하게 잘 넘기고, 수리영역을 문제를 푸는데, 6월/9월 모의고사들에 비해 문제 난이도가 너무 어려웠다. 처음에는 의연하게 한 두 문제를 패스하고 지나쳤는데, 뒤로 갈수록 나를 당혹스럽게 하는 문제들이 계속 등장했다. 여태껏 모의고사를 보면서 문제를 넘겨본 적이 없던 나에게는 '견딜 수 없는 충격'으로 다가왔고, 갑작스럽게 불안증세가 시작되었다. 몸은 떨리고 호흡은 가빠져 도저히 시험에 집중할 수 없었다. 샤프로 허벅지를 찔러가며 10여분간 나만의 사투를 벌였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시간이 부족했고, 결국 답안지를 밀려 써버렸다. 이 순간의 아찔한 기억은 살아가면서 중요한 시험을 앞둔 나에게 지속적인 불안감을 일으켰다. 주변에 도움을 청할 자신은 없었고, 더 이상 추락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이겨내야했었다. 내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세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1) 모든 시험을 가볍게 생각하자.
-> 내가 보는 모든 시험을 일부러 가벼운 쪽지 시험을 본다고 여겼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공부기간을 최대한 줄였다. 이는 공부기간이 길어지면 불면증으로 인해 체력이 계속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시험도 3개월 이상 공부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정된 시간안에 집중력을 높이려고 노력했다.
2) 최대한 노출 요법을 많이 이용하자.
-> 긴장된 상황에 나 자신을 많이 노출시켰다. 남들 앞에 나서는 역할과 책임지는 일들을 많이 맡으려고 노력했다. 발표할 기회가 생기면 모두 자진해서 했고, 봉사나 알바도 남들 앞에서 강의하는 활동 위주로 하였다. 나 자신을 많이 노출시키고 많은 경험이 쌓이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긴장이나 불안감이 무덤덤해지는 효과가 있었다.
3) 모르는 것을 받아들여라
->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내가 모르는 것이 나올까 봐'를 걱정해서가 아니다. '어떤 것이 나오던지 완벽하게 해야한다'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재수를 하고 수능을 본 해의 수리영역 1등급 컷은 79점이었다. 전년도 혹은 다음년도 수능 수리 1등급 컷이 각각 92점, 95점인 것을 보면 난이도가 상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나는 상대평가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떤 문제가 나오던지 다 맞혀야 한다는 마음'으로 인해 마인드 컨트롤을 실패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내 실력이었던 것이다. 이후로는 최대한 노력하고도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쿨하게 패스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넷플릭스의 드라마 '스위트 홈'에 나오는 인상적인 대사가 하나 있다.
"가장 짙은 어둠도 가장 흐린 빛에 사라진다."
'불안'이라는 짙은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 한 줄기의 흐린 빛 (아주 작은 희망)이 되어 주자.
참고
1) Korean Medication Algorithm Project for Generalized Anxiety Disorder 2009 (I) : Initial Treatment Strategy, J Korean Nueropsychiatr Assoc, 2010.
2) Korean guidelines for the treatment of panic disorder, J Korean Med Assoc.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