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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준 Jan 01. 2023

선생이 되고 싶었다

새해 첫 글

학창 시절 어른들은 종종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그냥 이런 질문은 싫었다.

내가 뭘 잘하는 지도 모르겠는데? 괜히 내 주제에 대단한 직업을 말했다나 비웃음을 당하는 거 아냐? 혹은 기대감을 심어주는 게 아닐까?

그래도 그런 생각은 있었다.

'나이가 좀 더 들면 뭐라도 되고 싶은지 명확해지겠지?'


초등학교 때에는 장래희망을 발표하는 시간들이 많았다.

나만 그랬나? 늘 곤욕이었다.

공부도 못하고 말썽만 피우던 '내 장래희망'을 누가 관심 가져줄까?

그저 비웃지만 않으면 다행이겠지..

나는 누구도 고르지 않는 그러면서도 나빠보이지 않는 '위장용 장래희망'을 골라서 발표하곤 했다. 다행히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어린애가 '대통령이 되고 싶다, 대기업 사장이 되고 싶다, 판사 검사가 되고 싶다'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꿈을 크게 가져라 혹은 boys be ambitious'라는 것의 대표적인 예시가 되곤 했다.

하지만, 나이에 맞지 않게 현실적이고 염세적이었던 나에게는 도저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들이었다.

내 분수를 누구보다 잘 알았고 뱉은 말은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말이든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 여섯 분의 담임 선생님들을 만났었다. 한 반에 40명의 학생이 있다 보니 선생님이 모든 학생들에게 공평하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공부도 잘 못하고 말썽만 피우는 나에게 애정을 준 선생님들은 많지 않았다. 벌을 많이 섰던 기억밖에 없다. 중학생이 되고 나니 나에게도 이쁨을 주시는 선생님이 생기기 시작했다.


왜?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성적을 잘 받으면서 이쁨을 받을 조건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중2의 나는 이런 불합리한 현실에 역겨워하기보다는 내 노력으로 얻은 성과라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런 관심을 나의 성장동기로 활용하기도 했었다. 이것은 그저 수단이었을 뿐 솔직히 존경심... 감사함... 은 느끼지 못했다.


당시 남들이 가고 싶다던 외고에 합격을 했다. 여전히 뭘 해야 할지 뚜렷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방향성을 제시해주지 않았다. 그저 성적을 올리고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고 했다. 매번 모의고사를 보고 성적순으로 자리를 배치하고 성적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그런 곳이었다. 학생들에게는 인권이 없었다. 말보다는 체벌이 앞섰고 우리들은 이름이 아니라 죄수처럼 그저 번호로 불렸다.

이때까지도 '나'라는 세계관에 변화를 준 선생님은 없었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내 인생에 변화를 준 강사를 만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은 공교육의 현장이 아니라 PMP라는 영상기기 속 인터넷 강의였다. 강사는 매번 2시간 수업 중 30분은 본인의 인생 철학과 삶의 방향성을 이야기해 주었다. 누군가는 시간 때우기라고 말할지 몰라도 나에게는 알이라는 세계관을 깨 주는 어미의 부리질 같은 시간들이었다. 그 강사가 한 말들을 노트에 적어두고 매번 공부 전에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곤 했다.


그리고 점점 하고 싶은 일들이 생기고 뭔지 모를 뜨거운 열망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 혹은 인생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생이 되고 싶다.


선생이 될 수 있는 길은 너무도 많았다. 일단 교대를 가야 하나? 교육과를 가야 하나? 그런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교사인가? 아니면 교수? 혹시 인터넷 강사여도 괜찮은 것인가?


사실 내가 그저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짚신도 제 짝이 있듯 사람도 인생을 살면서 본인에게 맞은 선생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짧은 만남은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만큼 큰 힘을 가진다고 믿고 있다. 아니 믿게 되었다.

일단 다양한 경험을 해보자.


그 이후로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해보았다.

1) 보습학원 수학 강사 (20명, 8개월)

2) 중도입국자녀 지도 교사 (10명, 6개월)

3) 고등학생 수학/영어 과외 (4명, 5년)

4) 사회적 취약계층 지도 교사 (삼성 드림클래스) (20명, 3년)


오랜 기간 직접 경험해보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깨달았다.

1) 다수의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모두에게 관심을 주기란 불가능하다. 특히 학생들과 선생님 간의 기싸움이라는 것도 존재할 뿐 아니라 학부모의 피드백, 교장(원장) 선생님의 피드백 등을 신경 쓰면서 꾸준히 인생 멘토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내가 1타 강사가 되어 사람들이 돈을 내고 찾아오지 않는 이상...   


2) 1명의 학생을 가르치게 되면 단순히 지식 이외에도 지속적인 멘토링을 해줄 수 있었다. 학생들은 나와 시간을 함께하면서 나를 멘토 혹은 선배로 생각해주어 열정적으로 잘 따라주기 시작했다. 나는 한 번 과외를 시작하면 수능이 끝날 때까지 함께 해주었고, 그 친구들의 변화되고 성장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꼈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선생의 역할이긴 했지만...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 생각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훌륭한 수준의 인터넷 강의도 많고 학원도 많아져서 과거만큼 대학생 과외가 성행하지는 않는다. 수능을 잘 본 명문대생이라고 잘 가르치는 것이 보장된 것도 아니고 유명한 강사만큼 수업을 준비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대학생 과외가 주는 힘은 있다. 바로 멘토링의 효과였다.


청소년들은 아무리 옳고 맞는 말을 부모나 선생님들이 100번 해주는 것보다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한 번 하는 것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은 대학생 과외 선생님과의 심리적 거리가 더 가깝기 때문에 관계가 잘 형성되면 그들의 말을 더 잘 듣고 잠재적인 '우상'으로 삼아 성장에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멘토에 가까웠다.

누군가의 잠재된 실력이 향상될 수 있도록 옆에서 기술적 혹은 심리적인 지원과 조언해주는 존재.


그래서 이번에는 공부법에 대한 책을 써보고자 한다.


1) 대학생 과외를 받을 수 없는 취약 계층 학생들

2) 자신만의 공부법을 찾지 못하는 학생들

3) 실패해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례를 통해 힘을 얻고 싶은 학생들

4) 무엇을 하고 싶은지 감이 오지 않는 학생들


단지 수능이 아니라 대학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 성장할 수 있는 공부법과 관련된 경험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2년 전 이맘쯤 나는 브런치에 첫 글을 올렸다.

브런치 작가 신청서. (brunch.co.kr)

앞으로 어떤 글을 쓸 것인지 브런치에 당당하게 선포했었고 실제 그 내용을 담은 책을 출간하기도 했었다.

이번에도 새해를 맞아 새 작업을 선포한 셈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성격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글을 쓰는 느낌은 조금 변한 것 같다. 예전 글을 읽으면 살짝 어색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초기에 던 글들을 다시 재정리하여 반영할 계획이다.


그러면 올 해는 정말 제가 본 프로젝트를 달성하는지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2022년도에도 꾸준히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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