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2003년, 문방구 앞 오락기에는 항상 아이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공평하게 게임을 할 수는 없었다. 그곳에도 엄연히 룰이란 것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오락기 위에 순서대로 100원을 걸어 두는 것이 바로 ‘다음 차례’를 예약하는 상호 간의 약속이었다.
동전에는 제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이 아님에도 모두들 제 동전의 순서를 귀신같이 알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항상 애들로 바글바글한 오락기를 친구와 마음 놓고 깔깔거리며 편하게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바로 수업시간이었다(?)
그렇다.
나는 초등학교 때 수업시간에 몰래 나와 게임을 하던 그런... 말썽꾸러기였다. 가장 도망치기 쉬운 과목은 미술 시간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미술 시간에는 준비물이 없으면 학교 앞 문방구에 가서 사 올 수 있게 해 주었다. 친구와 나는 그 점을 악용했다. 우리는 일부러 준비물을 챙겨 오지 않은 채로 학교에 등교를 했다. 그리고 미술시간만 되면 준비물을 핑계로 문방구에 나가서 열심히 오락만 하다가 들어가곤 했다. 처음 몇 번은 걸리지 않았다. '아~ 선생님도 우리에게 별로 관심이 없구나'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친구와 신나게 소리를 지르면서 오락을 하고 있었다.
퍽~ 퍽!
“악! 누구야?”
짜증이 나서 뒤를 돌아봤더니 담임 선생님이 일그러진 얼굴로 우리를 째려보고 계셨다.
‘심장이 떨어진다’라는 말이 이런 느낌이구나! 딱 와닿았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했을까? 결국 우리는 선생님께 한쪽 귀를 잡히면서 끌려갔고 복도에서 먼지가 나도록 매 타작을 당했다. 그리고 하루 수업이 끝날 때까지 복도에서 손을 들면서 벌을 섰다. 사실 아픈 것보다 다른 친구들이 하교하면서 우리를 쳐다보고 약 올리면서 가는 것이 더 싫었다(쪽팔린 건 알아가지고…).
아이들이 다 빠져나가고 나서야 선생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너희들 부모님께 학교로 오시라고 연락드렸다. 너의 부모님은 내일 오신다고 하니 집에 가고… 강준은 남아!”
친구는 짐을 챙겨 떠났고 나는 눈치를 보다가 선생님께 빌었다.
“앞으로 절대 안 그럴게요. 청소도 하고 반성문도 쓸 테니 그냥 보내주세요. 부모님은 바쁘셔서 못 오실 거예요.”
“아니, 네가 구제불능이라는 건 부모님도 알아야지?”
결국 부모님이 오셨고 선생님은 내가 얼마나 못난 아이인지 열띠게 설명을 하셨다.
게다가 최근에 본 학력고사에서 전교 꼴등이라고 사실까지 말씀하셨다 (나도 몰랐던 사실인데...).
“당장 몇 개월 뒤에 중학생이 될 애가 저 모양이라서 큰 일이군요.” 선생님은 혀를 끌끌 찼다.
사실 매를 맞고 비난하는 것은 기분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그저 부모님 한태 혼날 것인가? 가 더 중요했다. 솔직히 공부를 안 했으니깐 점수가 낮은 거지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그러나 다음 말이 기분을 상하게 했다.
“담임으로 쭉 지켜봤는데 할 줄 아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6학년이 될 때까지 말썽만 피우다가 졸업하네요.”
내가 전교 꼴찌라는 이유로 6학년 동안의 시간들이 모두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솔직히 공부만 열심히 안 했지 다른 건 했거든요!?
물론 어른들의 시선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고 허송세월을 보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내가 6년간 가장 많이! 그리고 몰입하여한 것은 3가지였다.
게임, 만화책 그리고 바둑.
나의 학창 시절은 '오락실의 전성시대'를 거쳐서 'PC방의 붐'이 이어지고 있던 시기였다.
오락과 게임이 주는 짜릿함과 즐거움은 아이들의 정신을 홀리기에 너무나도 충분했다. 게임에 대한 집착과 중독성은 어른들의 눈에는 마약이나 다를 바 없어 보였을 것이다. 게임을 무조건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분명히 게임을 통해 얻은 교훈과 배움이 있다고 믿는다. 그 교훈을 다른 분야에도 잘 활용해서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다면 게임은 그렇게 나쁜 것으로만 볼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교훈은 활용하진 않고 게임에 계속 빠져 정상적인 성장을 해쳤다면 그건 나쁜 것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게임의 장르는 ‘삼국지’나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었다. 해당 장르는 상대방과 1:1이나 다수 간 전쟁을 치르는 시스템으로 실시간으로 전략을 구상하고 상황에 맞게 대처하여 상대방과 전투를 통해 승리를 하는 것이 목표였다. 단순하게 보일 수 있지만, 어떻게 자원을 마련할지를 고민하고 한정된 자원으로 자원 생산에 투자할지? 병력을 생산할지? 기술에 투자할지? 상대방의 상황을 파악해서 실시간으로 선택을 해야 한다. 머릿속으로는 계속 이기기 위한 전략을 짜고, 이를 실행해 옮겨서 결과로 만들어가는 과정들의 연속이었다. 본 장르의 게임을 수년간 즐기면서 일상생활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상황을 게임을 통해 체험하며 상황 파악능력, 순간 판단력, 실행력, 위기 대처능력이 조금씩 성장했다고 느꼈다. 게다가 평소에 없던 승부욕이 생겼고 실력이 성장한다는 맛을 깨닫게 되었다. 이외에도 RPG 게임을 통해서는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상황을 이해하고 달성하는 끈기를 익혔고, 사냥을 하고 아이템을 모으는 구조 속에서는 끈기와 인내심을 길러졌다 (그런데 지금의 게임들은 그런 요소들이 사라지고 자동사냥과 과금 유도가 많아서 부정적인 요소도 커졌다).
수많은 만화책을 읽었지만 내가 가장 좋아했던 만화책은 ‘전략 삼국지 60권’이었다. ‘삼국지를 보면 세상이 보인다’, ‘삼국지를 읽지 않고는 인생을 논하지 마라’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삼국지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담겨있다. 사실 소심한 성격으로 친구가 별로 없었던 나에게 삼국지는 친구이기도 했고, 사람에 대해 알려주는 스승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만화로 된 덕분에 글을 읽기 싫어하는 나도 수십 번도 넘게 읽었다. 처음 몇 번은 그저 재미로만 읽었다. 하지만 여러 번 읽으면서 인물을 분석해 보기 시작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성격을 고민해 보고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생각해 보았다.
이 인물은 이 상황에서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나라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나는 혼자 머릿속으로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들을 즐거워했다. 물론 삼국지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권모술수와 이간질과 같은 전략도 등장한다. 그런 것들을 배워서 쓰진 않더라도 상황을 미리 파악한다면 앞으로 살면서 조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많은 것을 경험하지 못할 나이였기에 삼국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다양한 세상사와 인간관계를 배웠던 의미 있던 시간이었다.
처음 바둑에 관심을 가진 것은 과거 똑똑한 책사들이 바둑을 통해 지략 대결을 펼치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게임이나 만화책으로 간접적으로 익힌 심리 전략들을 바둑을 통해 실전으로 시험해보고 싶었다. 무작정 처음 찾아간 곳은 바로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노인정이었다. 노인정에서는 매주 어르신들이나 주민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바둑 교실을 열었다. 막상 그 앞에 가니 소심한 마음에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 앞을 기웃기웃거렸다. 마침, 안으로 들어가려던 할머니에게 잡혀서 강사님 앞으로 에스코트당했고, 나는 1회 무료 수강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후,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고 정기적으로 바둑 교실을 다니게 되었다. 바둑을 배우는 것은 약간 과장해서 삶을 배우는 것 같았다. 바둑의 용어들은 하나 같이 일상생활에서 적용되는 내용들이었다.
훈수, 묘수, 악수, 자충수, 패착, 포석, 정석, 대마, 사활, 타개, 복기…
바둑에서 두는 하나의 돌도 내 앞날을 위한 ‘포석’이 되기도 하고, 패배로 이끄는 ‘악수’나 ‘자충수’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매 순간 몇 수 앞을 내다보는 결정을 해야 하고, 더불어 상대방의 심리도 늘 계산해야 한다. 나는 바둑을 두는 순간에도 초 단위로 끊임없는 사고를 했고, 수업 시간에도 두었던 대국을 머릿속으로 복기하곤 했다. 2년 간의 바둑 공부를 통해 ‘고도 집중력’, ‘순간 기억력’, ‘상황 판단력’, ‘빠른 계산능력’, ‘사고력’이 급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바둑은 아마추어는 30급부터 시작하며 승급시험을 통해 1급까지 올라갈 수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30급부터 시작해서 초등학교 5학년까지 승급시험으로 11급까지 달성했었다. 열심히 하면 오른다는 것을 느꼈고 나에겐 큰 성취였다. 아쉽게도 이후에는 여러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었다.
공부를 통해서 배우는 것도 많지만 공부 외의 활동에서도 배울 점이 많았다.
놀면서 보낸 6년의 시간들은 씨를 심기 위한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 다녔던 학원들]
1. 처음 그룹 과외를 받은 것이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고 몇 개월 정도 했던 것 같다. 동네 친구들이 모여서 영어의 기초(알파벳)를 배웠었다. 기억이 잘 안 난다.
2. 초등학교 4학년쯤 동네에 수학 단과 학원을 잠깐 다녔다. 그때 선생님이 대학생이었는데... 수업보다 썰을 풀고 노는 데에 더 바빴다. 그땐 좋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돈낭비였다.
3. 초등학교 5학년쯤 영어 원어민에게 영어를 배우는 학원에 잠깐 다녔다. 영어 동화를 함께 읽고 외우는 그런 학원이었는데... 나름 괜찮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오래 다니진 않았다. 가성비는 조금 떨어지는 것 같았다.
4. 초등학교 6학년 때 전교 꼴찌를 받은 시점부터 수학/영어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이때부터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학원을 다니게 된 것 같다.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뜻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