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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준 Mar 07. 2021

조각글 쓰기 6편

무제

<운수대통>

연구를 할 것이 많아 대학교로 출장을 자주 간다. 그러면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코로나 때문에 작년에는 학생들이 많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개학을 했는지 학생들이 많았다. 오늘은 학식에서 개강 기념으로 운수대통 이벤트를 한다고 한다. 요구르트를 하나 골라서 그 밑에 운수대통이라고 쓰여있으면 15,000원 상당의 밀 키트 (콰트로 치즈 빠네)를 준다고 한다. 재미있는 이벤트 많이 하는구나... 그렇게 배식을 받고 요구르트를 고르는 곳으로 왔다. 100개가 넘게 배열되어 있는 곳에서 신중히 하나를 고른다. 그리고 밑을 보니 '운수대통'이었다. 하하하... 올해 운이 좋은 해인가? 사소한 기쁨을 느낀다. 오늘 저녁은 빠네 파스타로 결정되었다. 신입생들에게 미안하군...


<하나만 꾸준히 즐기는 사람 A vs 다양한 것을 즐기는 사람 B>

A는 하나를 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다. 쉽게 질려하지 않는 것 같다. 어릴 때에는 하모니카를 1년간 배웠다고 한다. 학예회 같은 곳에서 공연도 몇 번 했다더라. 고등학생 때에는 3년간 춤을 배웠다는데 여러 공연도 많이 하고, 대학교에서도 많이 써먹었다고 한다. 취업을 한 뒤로는 건강을 위해 헬스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작심 살일 할 줄 알았더니 3년째 꾸준하게 다니고 있다고 한다. 체중도 7kg로나 줄였다니 신기하다. 어느 날은 갑자기 인스타그램을 하겠다며 여기저기 맛집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게시글을 꾸준히 올리는 거보니 신기한 놈이다. 황당한 건 얼마 전부터 갑자기 글을 쓰겠다고 했다. 써보라고 했다. 무슨 플랫폼에서 쓴다고 하는데 그러다 말겠거니 싶었다. 그래도 돈 드는 건 아니니깐 응원을 해주었다. 다른 건 몰라도 글 쓰는 게 쉬운 줄 아나보다. 얼마 되지 않아 밤늦게 연락이 왔다. 본인 글을 읽어달란다. 의외였다. 생각보다 볼 만했다. 칭찬을 해줬다. 그리고 1달 뒤, 이제는 계약을 했다고 연락이 왔다. 어릴 때부터 봐 왔지만 특이한 놈이다. 

  

B는 갑자기 하나에 꽂히면 깊게 몰입한다. 그것에 빠져드는 순간 그것에만 몰두한다. 최선을 다해 그것을 즐긴 후 미련 없이 끝내버린다. 이번 겨울에는 목도리 뜨개질에 빠져서 목도리를 하나 뜨고 끝냈다. 그다음으로는 비즈 공예에 빠져서 동대문 상가까지 가서 여러 재료를 산 후, 비즈 반지를 만들어 주변에 선물을 주고 끝냈다. 그러다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는 것에 빠져서 한동안 열심히 그렸다. 2주 정도 열심히 그림을 그리면서 재미도 느끼고 실력도 많이 늘었다.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길 즈음 질린 것 같다. 이제는 방 인테리어에 빠졌다. 본인 방을 디자인하고 어떻게 꾸밀지 고민했다. 이케아에 한번 쇼핑하고 오더니 방을 이쁘게 장식하면서 끝이 났다. 매번 새로운 취미를 찾아내서 온 힘을 다해 즐기고 그만두는 것이 참 신기하다. 삶을 다채롭고 즐겁게 사는 것 같다. 새로운 분야에 계속 도전하는 것도 용기이다. 다만 돈이 많이 든다는 게 아쉽긴 한다. 하지만 본인이 즐겁게 산다면 응원해주고 싶다. 




<1인 약국에서 생긴 멘붕 상황 1 - 조각 글 치고는 좀 길다.>

나는 종합병원 앞 대형 문전약국, 1인 규모의 소형 약국 그리고 병상이 큰 종합병원 등 다양한 곳에서 일을 했었다. 약사는 같은 일을 할 것 같지만, 규모나 병원/약국에 따라 업무나 분위기가 생각보다 차이가 크다. 오늘은 소형 약국에서 생긴 멘붕 상황 한 가지를 꺼내보려고 한다. 약은 일반과 전문의약품으로 나뉘는데, 전문의약품은 병원에서 처방전을 가지고 와야 조제를 할 수 있다.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작은 약국에도 천 가지가 넘는 종류의 약을 보유하고 있다. 자동 조제 기계에는 가장 처방이 많이 되는 100개 정도의 약만 들어가 있고, 그 외의 약은 직접 넣어주어야 한다. 

한 환자가 처방전을 들고 온다. 처방전을 검수를 한다. 환자의 나이, 보험 여부, 질병 기호, 약의 종류, 용량, 용법, 처방 일수 등이 올바르게 되어있는지 확인한다. 보통 10% 내외로 처방전에 문제가 발견되면 병원에 전화해서 확인 또는 수정을 요청한다. 한 환자의 처방전을 받아보니 시작부터 걱정이 앞선다. 대학병원 앞에서 받은 약 90일 치가 나왔는데, 용법과 약 종류도 제각각이었다. 심지어 어떤 약은 0.75T가 나왔다. (보통 작은 약국에서는 장기 약을 조제하기 힘들어 문전 약국에서 해야 되는데... 가끔 들고 오시는 분들이 있다.) 


<처방전>

아침 식전 : A 약 1T

아침 식후 : B 약 1T, C 약 1T, D 약 0.75T, E 약 2T

점심 식후 : B 약 1T, C 약 1T

저녁 식후 : B 약 1T, C 약 1T, E 약 2T     

취침 전 : F 약 1T


슬프게도 자동 조제기에 들어있는 약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30개의 칸으로 나눠진 틀에 아침 식전/아침 식후/점심 식후/저녁 식후/취침 전 총 5칸이 하루가 되고, 6일 치를 채우면 30개의 칸이니깐 이를 총 15번이나 조제해야 했다. 물리적인 시간으로도 족히 30분이 걸릴 듯했다. 게다가 D 약은 1T를 반으로 자르고, 그 반을 또 반으로 잘라서 조각을 합쳐 0.75T를 만들어야 한다. 나머지 약들은 심지어 PTP (은박지) 포장이 되어 있어 하나씩 일일이 손으로 까야되는데, 은박지 표면이 날카로워 손을 베이는 일도 자주 있다.


문제는 조제가 매우 어려운 처방이라 정신을 온전히 집중을 해야 한다. 약의 순서가 잘못 들어가면 모든 게 꼬이기 때문이다. 서둘러 약을 조제하기 시작했다. 역시 손이 베이고 피가 난다. 급하게 밴드로 감싼다. 그 와중에 다른 손님들이 와서 나를 찾기 시작한다. 기다려달라고 소리친다. 어차피 이 약을 조제할 동안 다른 약을 조제할 수도 없다. 그러다 일반약을 찾는 환자들도 온다. 중간에 전화도 계속 울린다. 조제 포수가 길기 때문에 중간에 약포지도 교체해주고 잉크리본도 교체해주어야 한다. 만약 여기서 기기까지 말썽을 부렸다면 정말 큰일이다. 다행히 그 정도의 시련까지는 오지 않았다. 30개의 판을 깔고 포장하는 동안 1분 정도의 시간이 주어진다. 나는 이미 병원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와서 지친 환자들을 달랜다. 일반약을 사러 온 분들에게도 상담을 하고 빠르게 약을 추천해준다. 다시 뛰어들어가서 이어서 조제를 한다. 하필 약품 배송이 온다. 뛰어가서 인수증을 받고 도장을 찍어드린다. 다시 와서 열심히 조제를 한다. 조제가 끝나면 450포를 일일이 확인하며 약이 잘 들어갔는지 검수한다. 검수를 빠르고 정확하게 하려면 머릿속에 천 가지의 약 모양을 외우고 있어야 한다. 약은 색, 모양, 파인 글씨에 따라 다르고, 기기의 이상이나 실수로 전혀 다른 약이 섞여 들어가 있으면 안 된다. 심장약의 경우 약 하나가 잘못 들어가면 환자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기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기계도 오류는 있다. 450포 중 10포 정도는 약이 튀어 잘못 들어가 있었다. 그러면 약 포를 자르고 수정을 해야 한다. 열심히 들고 나오니 10명이나 넘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표정에는 화가 가득한 모습이다. 환자에게 복용 방법을 설명해드린다. 나이가 많아 잘 못 알아들으신다. 글씨를 크게 써가며 설명을 한다. 뒤에서 바쁘다고 한 마디씩 하기 시작한다. 어르신이 눈치를 보면서 이해도 잘못하신 채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고 한다. 환자를 못 가게 붙잡고 끝까지 이해될 때까지 설명을 해드린다. 그러고 나서 다음 환자 분들의 약을 조제한다.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다른 환자분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건강이 달린 중요한 문제이고, 어르신 분들은 복용하시는 약이 많아 처음 드시는 경우나 보호자가 없는 경우, 복용방법을 이해시키는 것이 굉장히 힘들다. 


간혹, 같은 양의 약을 드려도 잘 못 드셔서 하나가 모자란다고 찾아오는 분들... 1주일에 한번 복용하는 약을 매일 복용해버려서 응급실에 가신 분들... 약을 먹고도 먹은 것을 까먹고 또 드시는 분들... 약이 맛없다고 골라 드시는 분들... 알루미늄 껍질을 벗겨서 드셔야 되는데 통째로 삼켜버리시는 분들... 안 먹겠다고 약을 환불해달라고 찾아오시는 분들... 좌약이나 질정을 복용하시는 경우... 식전/식후를 헷갈려하시는 분들... 우리들이 생각하는 상식을 벗어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약국이다. 


젊고 똑똑하신 분들은 서둘러 약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할 순 있지만... 어르신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기다리다 지쳐 화가 나는 곳이 되기보다는 한 개인의 건강을 마지막까지 점검하고 확인해주는 곳으로 인식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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