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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ihnK Feb 29. 2024

나는 초등교사를 그만두었다

16. 동료를 물어뜯는 희극-1

초등교사는 연차에 따라 호봉이 자연스럽게 승급되기에 승진이라는 것은 일반 교사가 교감이 되기 전에는 의미가 없다. 큰 징계를 받을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다른 직업군의 사람들은 승진한 상급자를 '부장'이라고 칭하지만 교사들의 그것은 일종의 명예직이다. 그해에만 해당되는 지위에 불과하고, 단순히 업무를 총괄하는 것 외에는 큰 의미는 없다. 승진이나 이동 시에 영향력은 있다. 단 저경력 교사에게는 무의미한 것이 그 점수가 평생 해당되는 것이 아니기에 일정 기간 이후에는 사라진다. 학생들에 비유하면 학급반장 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당해에 부장 수당더 받는다. 그래봐야 월 몇만 원. 일은 몇 배로 하는 듯하지만.



동료 교사들은 서로 친근하기가 이루 말하기 어려울 정도다. 어디 출신인지, 몇 살이고, 자녀가 몇 명이며, 어디 살고 등등 많은 것을 서로 공유한다. 친해진 동료들은 평생의 친구가 되기도 한다. 나도 그런 동료들이 몇 있다. 친목회를 만들어서 회식도 자주 하며, 동아리 활동도 함께 하기도 한다. 말이나 방학 기간에 함께 여행도 다닌다. 남들이 보면 매우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렇게도 친밀한 그 조직은 학년 말에 완전히 붕괴된다. 다음 해 업무 분장이 이루어지고, 동료 평가를 하는 바로 그 시점에서.




보통 학년 말 겨울방학 직전 즈음에 다음 해 업무 희망서를 제출하고, 자기 평가지를 작성하여 점수를 낸다. 업무 희망서에는 다음 해에 담임하기를 희망하는 학년을 지망 순서대로 적고, 원하는 업무명을 적는다. 특기나 취미도 적으라 하고, 기혼인지 미혼인지도 적고, 비고란을 두어 개인사정 같은 것을 적기도 한다.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업무 분장을 하겠다는 취지일 것이다.


나는 적어도 희망서의 지망 순서가 굉장히 중요한 줄 알았지만 그것은 매우 무의미했다. 업무 분장회의에서 그 자료는 들춰보는 법이 없다는 것을 몇 차례의 회의에 참여하며 깨달았다. 그저 느낌 가는 대로 아무나 점찍어 반대하는 의견이 없다면 그 자리에 지정되는 것이다.


더 재미있는 점은 열심히 여러 차례 회의한 결과를 결재를 올리면 그대로 승인되는 것이 아니고, 교장선생님의 의중에 따라 갑자기 뒤죽박죽 바뀌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해에 업무 희망서를 쓰는데  전담 희망란이 있기에 내 학사 전공을 살려 '과학 전담'을 적었고, 업무 희망란에는 예전에 해 본 경험이 있는 '정보'를 기재했다. 새 학기에 나에게 주어진 일은 2학년 담임에 과학정보부장이었다. 교원이 40여 명 되는 학교였는데 우리 부서에는 계원이 나와 계약직 과학보조뿐이었다.


하나같이 내 업무를 두고,


"과학정보부는 충분히 혼자 할 수 있지. 2학년은 쉽잖아."


라고 말했다. 나는 하루에 공문을 6개씩 올렸다. 그 해부터 새로이 시작한다는 것들이 꽤 많았고, 전 해의 계획서를 참고할 수가 없어서 몇몇 계획서는 하나부터 열 까지 창작했다. 그래도 야근은 절대 하지 않았다. 기한을 못 지키면 문책을 당하더라도 야근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5시 정각에 신발장에서 신발을 갈아 신으려고 노력했다. 전담이나 쉬는 시간에도 쉬지 않고 일하면 퇴근 전에 문서 서너 개는 처리할 수 있었다.


내가 그 학교를 떠나오니 다음 해에 과학정보부는 과학부와 정보부로 쪼개졌고, 각각 계원이 3명씩 더 있었다. 내가 혼자 하던 일을 8명이 나눠가진 것이다. 물론 그들은 학년부장을 겸임했으므로 나와는 처지가 조금은 달랐다. 친했던 동료교사가 과학부장을 맡았는데 잘 모르는 것을 가끔 전화로 질문했다. 나는 몇 번의 전화 끝에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도대체 너는 이걸 어떻게 혼자 다 했어?"


나는 반대로 묻고 싶다.


'나 혼자 하던 일을 도대체 왜 못하는 거야?'


그렇지만 그렇게 많은 업무를 처리했음에도 성과급은 S, A, B 중 A가 나왔다. 부장 중에서 S를 받지 못한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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