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근데 왜 그만두었어요?-1
나는 왜 그만두었을까. 사람들이 수도 없이 같은 질문을 반복하여 물어왔으나 딱히 어떤 정답을 간결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일단은 '초등교사'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종의 '꿈'이라고 부를만한 직업은 아니었다.
'나에게 꿈이라는 것이 있었을까?'
학창 시절 '장래 희망'란에 무언가를 적으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나는 무엇을 적었던가 되짚어 보았다. 유치원생 시절에는 단순하게 내가 알고 있는 직업명을 나열했다.
'선생님' 또는 '간호사'
등원하면 만나는 사람 = 선생님
병원에 가면 만나는 사람 = 간호사
선생님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었고, 간호사를 주사를 놓아주는 사람으로 생각했었다.
초등학생이 된 후에는 다양한 다른 직업도 적어 보았다.
'패션 디자이너'
종이 인형을 직접 만들어서 소장할 정도로 옷을 그리고 만드는 것에 관심이 참 많았다.
'소설가'
교내 백일장에서 최우수상은 아니어도 항상 상을 받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글쓰기 재주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피아니스트'
피아노 학원을 6년 이상 매일 다니다 보니 한 번쯤은 피아니스트가 되어 보는 상상을 해 봤다.
중학생이 되면서는 '만화가', '화가'를 주로 적었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에 재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다양한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기보다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탄탄한 직업을 얻는 것이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집안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의 선택은 결국 뻔했다. 음악, 미술, 체육 쪽의 특기는 결국 비싼 사교육으로 이어지고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되는지 안 되는지에 따라 할 수 있고 없고는 아주 명확해진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대학교를 어느 곳을 가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하기에 보다 현실적인 장래희망(진짜 희망과는 조금 다른)이 등장하게 되었다.
어느 날은 '의사', '수의사', '약사'도 적어 보다가 의대, 수의대, 약대가 입학이 쉽지 않다는 현실에 그렇다면 '중등수학교사'가 되어볼까도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가장 되고 싶었던 것은 '농업 연구원'이었다. 조금은 웃기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고추박사', '옥수수박사' 같은 별명을 얻고 싶었다. 나는 쌈채소를 좋아하니 '상추박사'가 되어 보면 어떨까도 상상해 보았다.
그러나 '꿈'은 '꿈'일뿐이다. 현실이 되기 쉽다면 꿈이라고 부를 일이 없을 것이다. 고3 끝무렵 수능 시험을 치렀고, 나는 망했다. 재수를 허용하지 않는 가정 분위기에 소위 '안전빵'인 대학교는 어디일까. 내가 마음속으로 진학하고 싶던 '농업대학교'는 배치표 상에서 내 성적보다 약간 상위였고, '교육대학교'는 무조건 합격으로 보였다. 가고 싶은 학교보다는 무조건 갈 수 있는 학교에 원서를 넣는 것이 나의 선택이었다.
주변에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기에 진학했다는 친구들도 아주 많았고, 다른 직장을 다니다가도 다시 뒤늦게 다시 입학을 했다는 나이 많은 신입생들도 아주 많았다. 그 정도로 다른 사람들이 힘들게 노력해서 온 건에 비해서 어렵지 않게 들어왔다는 생각에 만족감은 컸다.
나는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지망한 그 농업대학교 커트라인이 내 성적보다도 한참 아래였다는 것. 만약 다른 대학교에 원서를 접수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 내가 다른 인생을 살았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