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ne gyu Jul 07. 2019

다섯 번째 발걸음

지도자 코스 준비를 위해 글라스고 가다.

7월, 2019년 가장 큰 행사가 있다. 스코틀랜드 축구 협회 코치 라이센스 C를 취득하기 위해 지도자 코스를 받으러 가는 일이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코스이기 때문에 그 의미는 더 크고, 한 번의 실패를 맛보았기에 합격을 하겠다는 의욕이 넘친다.

7월 시험을 위해 작년부터 훈련 섹션을 스스로 준비해 노트에 정리했다. 훈련 노트에 아무리 많은 훈련 섹션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그냥 노트에 적혀 있는 글에 불구하다. 그중 어느 섹션이 실제 훈련에서 유용하게 쓰이는지 아닌 지는 훈련장에서 훈련을 해봐야 안다. 축구는 글로 풀어 나가는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이다. 


7월 시험 전, 내가 만들어 놓은 세션을 선수들과 함께 연습해 보고 가면 좋겠다 라고 생각은 하지만, 언어의 불모지인 오스트리아에서는 조금 어려운 일이다. 

하는 수 없이 영국에 알고 있는 3명의 지도자에게 도움을 구하기 위해 연락을 했다. 그중 유일하게 한 명, Kevin만이 나에게 긍정적인 대답을 주었다.

3년 전 C라이센스 코스를 들으면서 알게 된 Kevin이란 친구가 있다. 그 당시에는 미국에서 코치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Kevin이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스코틀랜드 유소년 팀을 가지고 있는 지인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Kevin은 지금 자기가 스코틀랜드에 있는데 자기 팀에서 훈련을 할 수 있게 물어보고 답을 주겠다고 했고, 며칠 뒤 허락을 받았다는 답장이 왔다. 

7월 시험을 보러 가기 1주 전에 미리 영국으로 날아가 Kevin 팀에서 연습을 해보고 피드백을 받으려 계획했다. Kevin은 6월이면 시즌이 끝나기 때문에 6월 세 번째 주 전에 와주라고 부탁했다. 한치에 망설임도 없이 6월 둘째 주에 스코틀랜드로 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잘츠부르크에서 스코틀랜드 글라스고까지 가는 길은 그리 쉽지만 않다. 아침부터 일어나 잘츠부르크에서 기차를 타고 출발해 빈 공항까지 간 후, 빈 공항에서 런던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다. 런던 공항에서 3시간 정도 글라스고행 비행기를 기다린 끝에 저녁 11시가 돼서야 글라스고에 도착했다. 가장 빠른 교통수단 기차와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지만, 정말로 하루 반나절이 걸렸다. 

3년 만에 다시 온 글라스고, 6월임에도 불구하고 잘츠부르크 5월 날씨와 비슷하다. 꽤나 쌀쌀하다. 거리에서 패딩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과, 후리스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잘츠부르크의 6월의 날씨를 생각하고 레인자켓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 3년 전 글라스고에 왔을 때는 축구 지도자 코스만 듣고 돌아가서 많은 걸 보지 못 했는데, 지금 보니 굉장히 큰 도시다. 아마 잘츠부르크 촌에 있다가 와서 더 크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Kevin이 보내 준 훈련 장소에 약속 시간보다 더 일찍 도착했다. 눈 앞에 보이는 웅장한 Queen’s Park 스타디움이 나를 움찔하게 만들었고, 스타디움에 걸려있는 앤드류 로버트슨의 독사진은 내가 심상치 않은 팀에 왔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동시에 더욱더 긴장하게 했다. Kevin을 기다리면서 알게 된 부끄러운 사실은 앤드류 로버트슨이 이 클럽 출신이라는 것이다. 어느 보통 클럽에서 연습하고, 피드백을 받고 돌아갈 거라는 기대를 했는데, 이 정도로 큰 클럽의 유소년팀에서 섹션 연습을 하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Kevin을 기다리는 동안 적어온 섹션을 보면서 계속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음에도 긴장감은 풀리지 않는다. 



섹션을 끝 마쳤다. Kevin은 잘했다고 만족해했고, 내 섹션을 자기도 나중에 사용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그럼에도 난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나의 섹션에 60%  정도 만족한다. 너무 많이 긴장해서 마음 급하게 하진 않았나란 기분도 든다. 능숙하지 못했단 말이 딱 어울릴 것 같다.



훈련이 끝난 후 Kevin은 저녁을 초대해 주었다. 저녁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코치 관련 이야기를 하면서 미국에서 돌아온 이유를 들려주었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는 지도자를 선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젠 미국도 좋은 자국 코치들을 배출하고 있고, 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때문에 자리 얻기가 전보다 어려워져 고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다시 잘츠부르크로 돌아와 레드불 아카데미 훈련장을 방문했다. 여름 방학에 들어 모든 유소년 팀들의 훈련이 없다.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하다 불어오는 바람이 좋아 잠시 앉아 있었다. 텅 빈 잔디 구장을 바라보며 글라스고에서 내가 했던 섹션을 다시 되새긴다. 왜 어디에서 문제가 있었기에 내가 보았을 때는 돚대기 시장과 같았을까? 좀 더 심플하고 선수들이 알아먹기 쉽게 만들어야 된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변형된 훈련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이걸 시험해 볼 팀이 없다는 게 너무 아쉽다. 

작가의 이전글 5월 23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