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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gyu Sep 30. 2019

9월 5일

일진이 안 좋은 하루를 대비하는 법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곤충 중 하나는 나방이다. 어렸을 때 기관지가 좋지 않은 영향 때문일 수도 있다. 나방이 날아다니면서 흩날리는 나방 특유의 가루들이 내 목구멍으로 넘어가 기도에 달라붙어 나를 죽게 할 수도 있다는 상상만 하면 정말 아찔 하기만 하다. 

꿈에 나방이 내 머리 위를 날아다녀, 신문지를 집어 들었다. 휘둘렀던 신문지는 나방에게 아무런 상처를 주지 않고, 되려 나방이 나에게로 달려들게 했다. 대담하게 달려드는 나방에 겁에 질려 머리를 흔들었다. 꿈에서 뿐만 아니라 침대 위에서도 내 머리는 흔들리고 있었다. 무언가 내 머리카락에 닿는 느낌이 났고 그건 꼭 꿈에서 나왔던 나방 같았다. 

새벽꿈 자리부터 일진이 좋지 않았다. 나방 때문에 잠을 조금 설쳐서 그런지 아침 커피를 마셔도 피곤함은 풀리지 않는다. 책상에 앉아 풀어야 될 책 만 펴 놓은 채 책에 있은 글자만 멀뚱멀뚱 바라본다. 그렇게 오전이 지나갔다.


출근길 한 번은 상대방의 운전사의 부주의와 한 번은 나의 부주의로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뻔했다. 오늘 하루 좋지 않은 일이 더 벌어질 것 만 같은 기분이 든다.


최악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생각해 본다. 나, 가족, 혹은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큰 사고를 당하는 일, 식당 손님 중 엄청 진상인 손님이 들어오는 일 - 이건 운명이다. 그냥 받아 드려야 된다. 조금 사소한 것부터 생각해 보기로 한다. 


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두 가지 핸드폰과 자전거. 핸드폰을 많이 사용하진 않지만, 핸드폰 액정이 나가거나, 잃어버렸을 때 평소에는 연락 올 사람도, 연락을 할 사람도 없으면서 핸드폰에 문제가 생기면 괜히 걱정한다. 핸드폰은 하루 종일 사용하지 않게 가방 깊숙한 곳에 넣어 둔다. 자전거는 잘츠부르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오랫동안 고치지 않고 있던 브레이크를 고쳤다. 어떤 더 안 좋은 일이 일어나도 원래 일어나려고 했던 일이니 크게 상심하지 말자라는 마음을 가슴 깊숙이 다짐했다.


하루가 끝나가는 지금 생각보다 좋은 하루를 보냈다. 어떤 안 좋은 일을 일어나지 않았고, 평범하게 지나갔다. 다시 침대로 돌아간다. 오늘 밤은 나방이 꿈에 안 나오길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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