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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gyu Apr 13. 2020

4월 10일

이제 오래된 추억

오랜 친구 거산이 와 오랜만에 통화했습니다. 이제는 10년이 지나버린 오래된 이야기 하며 ‘그땐 재밌었지’라고 말합니다.  


철부지 없는 고등학교 시절, 그땐 세상 무서울 게 없었습니다. 공부하는 것보다 놀고 싶었고, 남들처럼 교실에 갇혀 있기보단 밖으로 나가 다른 세상을 보고, 배우고 싶었습니다.  


우리들의 고3 수험생 생활은 TV에서 연일 떠들어대는 고3들과 똑같지 않았습니다. 수능을 앞두고 아주 중요하다는 고등학교 3학년 여름 방학. 학교의 지침대로 우리는 등교를 했지만, 공부를 하기 위해 갔다기보다 친구들과 만나 떠들기 위해 나갔습니다. 고3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우리는 그게 벼슬인 양 여겼습니다. 수능이라는 방패를 등에 업고 부모님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고3 수험생에게 주어진 단 일주일의 여름 방학 동안 거산이, 전종 그리고 저는 1박 2일로 순천에서 거금도까지 자전거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거금도로 출발하는 당일 이마트를 들려 여행에 필요한 장을 봅니다. [고3이라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벼슬은 있었지만 돈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잠을 자기 위한 싸구려 텐트, 소나기에 대비한 우비, 물 그리고 천하장사 소세지 큰 팩 하나를 사서 출발했습니다. 

지금처럼 손쉽게 스마트폰을 통해 길을 찾는 때가 아니었습니다. 지도를 프린터 했지만, 몸의 방향감을 믿고 달려갑니다. 그러니 길을 헤매거나, 잘 못 드는 건 당연한 일이죠. 계획했던 것과는 정말 다르게 길을 틀어 결국 버스에 자전거를 실어 고흥까지 넘어갔습니다.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도착한 거금도. 도착하고 나니 벌써 5시가 다 되었습니다. 저녁밥으로 먹을거리를 산 후, 야영할 괜찮은 장소를 찾아 나섰습니다. 무료 샤워실이 있고, 텐트를 칠 수 있는 해수욕장을 찾았습니다.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컵라면과 핫바를 들고 해수욕장 간의 편의점에 갔습니다. 사장님은 하루 장사를 마치시고, 동네 주민분들과 담소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뜨거운 물을 받아 컵 라면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조촐하게 저녁을 먹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한분이 어디서 왔냐고 물으십니다. ‘순천에서 왔어요’, ‘어머, 우리 아들이 순천에서 고등학교 다녔는데, 순천 사람들 너무 좋더라~ 내일 아침에 우리 집 와서 아침밥 먹고 가 알겠지?’ 컵라면과 핫바가 혈기왕성한 고등학생들에 배를 채우기에는 부족하다 걸 아셨을까요? 아니며 아들들 같아서였을까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 저희가 일어나기도 전에 아주머니 남편분이 오셔 저희를 깨워 집으로 초대해 주셨습니다. 푸짐하게 차려 주신 밥을 먹고 거금도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여행 중에 버스를 타고 움직인 거리가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닌 거리보다 많았지만, 우리의 소정의 목표였던 거금도를 자전거로 한 바퀴 돌기를 마쳤다며 우리들끼리 만족해하며 순천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이제는 오래돼 버린 추억 이야기입니다. 우린 서로 그때 그 정도로 놀았으니 이제는 힘든 시간을 보내야 될 때라고 말합니다. 서로 쉽지 않은 길을 가기로 선택하였고, 지금 많이 고되지만, 뒤돌아 보면 피식 웃을 수 있는 많은 추억들이 있어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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