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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tip Sep 13. 2023

깻잎할머니

은퇴 후 시골로 내려간 엄마친구는 소소하게 농사를 지으신다.  말이 작은 텃밭이라지만 배추며, 무, 고구마, 깻잎 등 마트에서나 볼 법한 야채들을 수확해서 우리 가족에게 보내주신다.


한 번은 엄마가 전화로 우리 손주들이 깻잎 장아찌를 좋아하다고 말했더니 직접 장아찌를 담가서 올라오셨다. 친구 딸의 손주들 먹이려고 장아찌를 담그는 게 보통일인가. 정성스레 겹겹이 간장에 절여진 깻잎은 보기에도 두툼하고 먹음직 했다. 다음에 만날 땐 부부동반으로 맛있는 것 사드시라고 엄마에게 용돈을 드리곤  잘 먹겠다는 인사도 엄마 편에 전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이들이 친정에 가서 자고 오면 깻잎 할머니가 주신 뭐가 맛있더라, 영상통화를 했는데 다음에는 다른 반찬을 준다고 하셨다는 소리를 했다.


"꺳잎할머니?"

"응, 엄마. 우리가 깻잎 장아찌를 주신 할머니를 깻잎 할머니라고 부르거든. 외할머니가 영상통화도 시켜주셨어. 근데 다음에는 김치도 주신데. 깻잎 할머니 최고지?"


그 말을 듣는데 등에 식은땀이 살짝 났다. 남의 집 손주들 반찬까지 챙기시느라 분주할 모습은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음식이라는 게 시작하면 번거롭고 치우는데도 손이 많이 가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더군다나 애들이 먹고 싶다는 건 장인 정신을 가지고 하나하나 다듬고 무치고 해야 하는 반찬들 아닌가.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담부터는 절대로 절대로 장아찌라는 말은 꺼내지도 말고 친구분 고생스러우시니 음식 만들어 오는 것도 하지 마시라고 전해달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하지만 그 말이 먹힐 리가 없다는 건 말하는 나도 그 말을 듣는 엄마도, 엄마의 말을 전달해 들은 깻잎 할머니도 안다.


"애들하고 직접 약속했는데 어쩌랴" 하시며 깻잎 할머니는 그 이후로도 총각김치, 고들빼기 등등의 반찬을 만들어 엄마네 놓고 가시곤 했다.


며칠 전 깻잎 할머니는 깻잎 장아찌와 함께 고구마 줄기, 방울토마토를 한 아름 들고 오셨다. 내가 부담스러울까 봐 절대 나에게는 도착 시간과 가는 시간도 비밀이다.    


아직 얼굴 한번 뵙지 못한 깻잎 할머니. 친정에 오실 때마다 부부동반으로 식사를 하시는데 청요리를 좋아하신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아직도 중국음식을 청요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나 했는데 우리 부모님이 그러실 줄이야.) 맛있는 청요리집에 가서 탕수육 드시라고 용돈만 드리고 왔다.


당분간은 밥만 해도 될 정도로 냉장고가 깻잎할머니의 정성으로 가득 찼다.  언젠가 청요리를 좋아하는 네 분의 부부동반 식사에 나도 껴주시는 날을 호시탐탐 노리며 흰밥에 깻잎 한 장을 올려 양볼 가득 채워본다.  



사진출처: 김치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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