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팔레스타인 소녀들과의 수업이 다시 시작됐다. 그동안 한국말을 까먹진 않았는지, 얼마나 컸을지 기대하며 현관문을 띵똥 누르니 우당탕탕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나지마와 수아드가 나를 꼭 껴안아 준다. "선생님, 보고 싶었어." 계속 더 꽉 안는다.
키가 훌쩍 컸다. 수아드는 어엿한 초등학생 티가 났다. 다들 여름 잘 보냈구나. 쑥쑥 자랐구나. 내가 키운 것도 아닌데 아이들이 자라는 건 봐도 봐도 기특하다.
이젠 알아서 물도 내오고 의자도 가져다준다. 그런데 익숙한 울음소리가 안 들린다. 이마드가 안 보여 두리번거리니 막내는 이제 어린이집을 다닌다고 나지마가 귀띔해줬다.
오전에 나지마 엄마가 전화해서 오늘 집에 자기가 없을 테니 이해해 달라고 했는데 막내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자유부인이 됐나 보다. 어쩐지 목소리에 신남이 묻어있더라니.
늘 했던 것처럼 학교에서 주는 받아쓰기 연습도 하고 동화책도 읽고 있는데 큰 언니 말라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오늘 동생들 수업이 있는 줄 몰랐나 보다. "선생님!" 하며 역시 나를 안아준다. 하루동안 이렇게 많은 포옹을 해본 건 오랜만이다. 아이들의 환대는 늘 순수하다. 그래서 좋다.
눈매가 더 깊어진 말라카. 여름 전부터 쓰기 시작한 히잡이 이제는 더 잘 어울린다. 오랜만에 본 말라카가 히잡을 벗는 순간. 숙녀가 다 된 모습에 헉 소리가 절로 나온다.
"말라카야 너 히잡은 꼭 써야겠다. 너무 아름다워져서 사람들이 다 쳐다보겠어!"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했는데 말라카가 너무 정중하게 감사하다고 허리 굽혀 인사하는 바람에 귀여워서 한참 웃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다들 수업은 뒷전이다. 나지마와 수아드는 방학 동안에 수영장 다녀온 이야기를 하고 엄마가 사준 옷을 들고 와서 갑자기 갈아입고 보여준다. 말라카는 여드름이 나기 시작해서 피부 관리를 한다며 새로 산 로션 바르는 법을 알려주었고, 향수도 뿌려주었다.
두 시간 반이 훌쩍 지나간다. 여자 세 명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데 우린 수다쟁이 여자 넷이다. 한 명이 수업하고 있으면 몰래 엉금엉금 기어 와서 책상 밑에서 나를 놀라게 하거나, 침대 이불속에 숨어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심장이 멎어버릴 뻔한 순간도 있었다.
늘 상상 못 한 방법으로 나를 맞아주는 말괄량이들. 남은 하반기 수업도 잘해보자!!!!
사진출처: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