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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tip Oct 27. 2023

100% 마음에 드는 청첩장을 고르는 기준

장자크 상페

드레스룸을 정리하다 청첩장을 발견했다.

10년 전. 청첩장을 골랐던 기준은 딱 하나. 액자에 걸어놓을 만한 일러스트나 스케치 형태가 들어갈 것. 그런데 이 기준을 충족하는 청첩장을 고르기가 하늘에 별따기였다.


내가 원하는 건 장자크 상페 스타일의 그림이었다!


당시 유행이어서 그랬나? 대부분 겉표지에 영어 필기체가 쓰여있거나 비슷비슷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더랬다. 검색의 검색 끝에 한 디자인 회사를 찾았는데 청첩장도 제작한다고 하여 어렵게 주문제작을 했다. (나 왜 그랬지)



장자크 상페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를 읽으며 처음 알았다. 지금도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그린 특유의 삽화는 눈에 선명하다. 그 이후로 꾸준히 장자크 상페의 발자취를 따라 찾아다니다  2년 전인가? 장자크 상페의 전집을 판매한다는 광고를 보고는 고민 없이 바로 결제했다.

풍자가 담뿍 담긴 그의 글과 그림을 보고 있으면 괜히 세상이 살만해진다.


예를 들어 이런 것.

난 어려운 상황에서도 침착성을 잃지 않아. <나한텐 친구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 걔들에게 전화하면 자동 응답기가 받지. 그래서 다음 날은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단다. <나한텐 친구들이 있고 덤으로 걔들의 자동 응답기까지 있다>고.      - 거창한 꿈(장자크 상페 글/그림 중에서-

이런 식이다.  정말로 친구가 있건지도 의문이고, 친구들이 본인을 외면한 지도 모른 채(그럴 확률이 거의 100퍼센트 아닐까) 환하게 웃으며 다른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그림의 주인공을 보면 측은하기까지 하다. 옆에 앉아있는 사람도 친구일까? 궁금하면 책을 보시길.


다른 또 하나.

떠나버린 내 사랑 앙드레,
고통스러운 이별! 하지만 나한테 주소를 남겨주다니 고맙군요. 난 아연실색했어요.
꼼짝도 할 수 없었죠. 선박의 트랩이 걷어 올려질 때, 뱃전에 팔꿈치를 기대고 서 있던 당신 모습이 눈에 선해요. 배가 멀어지기 시작하고, 내가 당신의 여행 가방을 깔고 앉아 있다는 걸 (마침내) 깨우친 당신의 절망스러운 몸짓이 아른거려요.    - 거창한 꿈(장자크 상페 글/그림 중에서

이 장면은 요즘 말로 "ㅋㅋㅋㅋㅋㅋㅋㅋ"가 제일 어울리는 것 같다.  별것 아닌데 별거로 만드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 바로 장자크 상페다. 슬픔도 유머러스하게, 기쁨도 냉소적으로 만드는 게 매력적이다.

 떠나버린 남자의 여행 가방을 깔고 저렇게 앉아있었다니. 하... 정말 보고 또 봐도 너무 재미있다.



자, 그래서 결국 어떤 청첩장을 골랐는지 말씀드리자면. 아래와 같다. 무려 3가지 종류. 하하

장자크 상페와는 전혀 다르지만 가장 비슷하다고 우기면서 고른 이 청첩장은 내 바람대로 액자에 예쁘게 넣어 걸어놓았다가 다시 정리 상자 속으로 정리되었다는 이야기.


-The end-



사진 출처: 내가찍은 장자크상페 전집, 청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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