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데서 찾아오는 감동은 두 배가 되는 법. 혹은 그 이상.
키스헤링을 보러 갔다가 뱅크시에게 빠져버린 날.
작품을 보고 있는데 누가 나를 막고 서 있는 기분이 든다.
나를 곤두서게 만든 뱅크시의 <Laugh Now, 2003>. 허락도 없이 가로막고는 이렇게 말한다.
"잠깐만, 네가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는 게 뭔지 다시 생각해 봐."
Laugh Now, 2003 by 뱅크시
이제 마흔 줄에 접어들지 않았는가.
어른이 되니 누가 나를 슬며시 용인해 줄 일은 점점 적어진다. 책임질 일을 모른 척하는 건 나뿐이다.
내가 나를 묵인하는 일이 많아진다.
교실과, 돈과 늙은 부모와 내가 낳은 아이와, 전쟁이 잠시 멈춘 나라에서 전쟁이 나고 있는 자신의 나라를 바라보는 사람들 etc...
이 모든 걸 혼자 어떻게 하려고?
웃어넘기지 않으면 된다.
우리 누가 이기나 해보자.
웃어넘기는 사람들 속에서 함께 슬퍼하는 사람들의 눈물의 힘이 한없이 크다는 걸 보여주면 되는 거 아닌가.
"잠깐만, 네가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는 게 뭔지 다시 생각해 봐."
나를 막아선 뱅크시 앞에서 더듬 더듬이라도 대답하기 위해 주말 내내 고민한 대답은 이것뿐.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같이 슬퍼라도 하자는 것.
아. 또 한 가지.
글을 썼다.
내가 나를 슬며시 묵인하는 어른은 되지 말자고.
결국 나도 "I've been Banksy-ed. (나는 뱅크시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