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하나씩 꺼내어만 보기로 했다. 절대 사지는 않을 거니까 사심 없이 작가도 살피고, 책소개도 본다. 괜히 책날개도 접어다가 폈다가 하며 책장 한편에 쌓아두었다. 오랜만에 시집도 읽어보고 싶었다가, 글 잘 쓰는 법에 대한 책도 찾아보았다. 요즘 해이해진 것 같아 자기 계발서 코너 앞에서 정신 좀 번쩍 나게 하는 책을 찾느라 한참을 쭈그려 앉아있었다. 아니지. 노년에 쪼들리지 않으려면 돈이 필요하니 갑자기 경제서적을 검색했다. 앉아있다가 급하게 일어나서 잠시 어찔했는데 청초하게 분위기를 잡고 싶었으나 허벅지는 튼튼해서 중심은 또 잘 잡힌다.
차곡차곡 양손에 책을 들고 돌아다니다 보니 열 권이 넘었다. 이참에 새로운 책을 사고 집에 안 읽는 책들은 다시 파는 게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서점에 들어오기 전의 결심은 온데간데 사라졌지만, 다른 것도 아닌 책을 사는데 돈과 시간을 쓰는 건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다는 괜한 호기를 부린다.
계산을 하러 가기 전에 꼼꼼히 다시 살폈다. 열 권을 다 사는 건 무리다. 눈물을 머금고 추리고 추려서 6권의 책이 남았다. 이것도 많은가 싶었지만 이번에 고른 <괴테의 말>은 처음부터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이다. 짧은 명언집이니 내용은 묵직하지만 읽기엔 부담이 없을 예정이므로 5권을 사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진하게 우겨본다.
그렇게 손에 잔뜩 책을 든 채로 집에 오는 길. 책의 맛에 빠진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