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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tip Nov 07. 2024

내 방식의 애도

혼령

우산을 펼 것도 없이 회색구름은 금방 우리 쪽으로 몰려왔다. 한번 바람이 휙 불더니 후드득 한 두 방울씩 비가 떨어졌고 이내 쏟아부었다. 땅은 여기저기 파이기 시작했다. 노부부가 서둘러 나오기에 밖에 꺼내놓은 식기들을 부엌으로 집어넣으려는 줄 알았는데 도리어 큰 그릇을 꺼내어 물을 담아 헹궈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흙이 잔뜩 묻은 내 옷가지와 슬리퍼가 생각났다. 방으로 들어가니 가방은 다 젖어있고 이미 바닥은 물바다가 되어있었다. 짐정리 할 땐 보이지 않던 조그만 창문이 그제야 보였는데 헐거운 나무로 겨우 덮여 있었다. 서둘러 나가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방으로 들어와 엉망이 된 방을 보여주었지만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양동이와 안 쓰는 큰 천을 가져와 창문 앞에 두고 갈 뿐이었다. 몇 번이고 물이 꽉 찬 천을 짜내고 창문 밑에 양동이를 댔다. 그리고는 어설프게나마 천으로 창틀을 막아 물이 더 들어오는 걸 막았다. 이제 일은 그저 이 방에서 남은 하루를 보내는 것뿐이었다. 


여기에 온 이후 제대로 된 잠을 잔 적이 있을까. 멀리서 무언가를 태우고 남은 냄새가 비를 타고 전해오고, 처음 맡는 풀내음이 벽을 타고 올라왔다. 꿈에서 첫날 묵었던 높은 천장이 있는 호텔이 다시 나왔다. 이 땅은 아직도 슬픔으로 가득 차있다는 그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바람소리. 윙윙. 더 이상 참아내기 어려운 그 소리의 무게 때문에 힘겹게 눈을 떴다.

탁. 바람이 창을 열었다. 툭, 하고 창틀에 걸쳐놓은 천이 떨어졌다. 창이 열린 틈 사이로 바람이 아닌 더 짙은 어둠이 밀려왔을까. 처음보다 미세하게 더 어두워진, 안팎을 구별할 수 없는 완벽한 어둠의 중심에 내가 있었다. 그리고 이내 웅웅하고 영혼들이 울기 시작했다. 그래 빗속에서 나를 불렀던 소리들. 절대 지나칠 수 없는 울림들이 내 심장까지 파고든다.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지만, 이방인에게까지 말하고 픈 당신들의 힘겨움. *당연히 당신들을 비켜가리라고 바랐던 현실이 역사가 되어버린 불행. 빗속에 떠내려 보내지 못한 고통은 결국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 흘러갔다.









*당연히 당신들을 비켜가리라고 바랐던 현실이 역사가 되어버린 불행 :줄리언 반스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 제목 일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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