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으로 면허를 땄지만 면허 시험장에서 시험을 통과한 이후로 한 번도 수동자동차를 몰아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먼저 출국한 남편이 수동차를 구해놓았다. 한국보다는 시내에 다니는 차들도 적어서 자신감 있게 운전대를 잡았는데 웬걸. 내가 후진하는 걸 보시더니 아파트 주인아주머니가 저쪽에서 뛰어오셨고 몇 분 뒤 비엔티엔 시내에 몰고 나가자 웬만하면 놀라지 않는 라오스 인들이 기겁을 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언덕도 아닌데 차가 거꾸로 밀리지를 않나, 후진하다 급발진해서 잘 서 있는 철조망 밖으로 자동차가 거꾸로 박힐 뻔했다. 지금 생각해도 수동차를 모는 건 목숨을 건 일이었다. 때마침 미술학원에 등록을 했는데 계속해서 이 차를 모는 건 비엔티엔의 교통대란을 몰고 올게 분명했다. 결국 난 미술학원에 버스를 타고 다니게 되었다.
내가 타고 다니던 마을버스는 문짝이 없는 오픈형 카트라고 생각하면 된다. 비엔티엔에는 45인승 대형버스도 있지만 우리 집과 미술학원을 오가는 길은 일명 '하얀 버스'라고 불리는 작은 버스만 다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작은 버스는 라오스 정부에서 도입한 전기버스라고 한다. 영광스럽게도 이 전기버스를 타고 학원을 다녔다!
주로 화면에서 오른쪽에 있는 차를 탔지만 가끔씩은 문이 달리고 에어컨이 나오는 차를 탈 수 있는 행운이 오기도 한다. 사진출처: 비엔티안 무역관
45인승 버스는 꽤 정확하게 시간을 지키는 덕분에 남편은 출퇴근 용으로 버스를 이용하곤 했는데 나의 '하얀 버스'는 어딘가에 시간표가 있다는 전설 같은 소문만 무성했다.
미술학원 시간보다 한 시간 반 정도를 먼저 나와서 기다리지 않으면 그날은 미술학원을 못 가는 날이다. 미술 선생님은 라오스에서 오래 사신 한국 분이셨는데 그분도 이런 상황에 너무 익숙하신 듯 내가 못 가도, 조금 늦어도 항상 그러려니 하셨다. 오히려 발을 동동 구르고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하는 내가 이상해지는 곳. 라오스는 그런 곳이다.
누구도 본 적 없는 버스 시간표가 있으니 당연히 버스 정류장도 있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에게 물어보지 않으면 여기가 거기여?라는 느낌인 곳이다. 그냥 어느 나무 아래에서 우두커니 서서 버스를 기다리면 된다. 내가 서 있던 곳은 라오스 경찰들의 초소가 건너편에 있어서 기억하기 쉬웠다.
버스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날도 있고 운이 좋으면 바로 도착하는 버스를 탄다. 그렇게 탄 버스 안에는 다양한 손님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사진을 못 찍은 게 후회될 정도다.
마을버스 안에 있던 손님들
닭
우선 내 옆자리에는 항상 닭이 앉아 있었다. 까만 닭, 암탉, 수탉... 닭은 종류에 상관없이 항상 있다. 옆자리에 닭들이 있는 날은 고개만 잘 돌리면 닭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지만 마주 보는 좌석 앞자리 앉은 손님이 닭을 데리고 있는 날에는 도무지 그 눈길을 피할 길이 없다. 현지인들만 타는 버스인데 처음 보는 외국인이 앉아 있으니 다들 한 마디씩 인사하시거나 계속 웃어주시는데 앞자리에 닭을 안고 나를 보시면 죄송하지만 그 인사에 집중할 수가 없게 된다.
새와 강아지
라오스에 가면 네모난 나무 새장에 참새 비슷한 새들을 파는 노점이 많다. 라오스는 불교의 나라다. 그 새를 방생하며 부처님께 복을 구한다.
그런데 그 새장을 버스에도 들고 탄다. 무릎과 무릎사이가 붙어 가는 좁고 작은 버스이다 보니 닭만 아니면 괜찮다 싶었는데 어떤 날은 온통 새장 천지다. 그나마 새들은 새장에 들어있어서 무섭지는 않다.
강아지가 있는 날도 있다. 보통 어린 강아지를 데리고 타는데 그런 날은 좋은 날이다. 하지만 꼭 기억해야 하는 건 항상 닭은 타고 있다는 사실이다!
라오스에서는 이렇게 방생을 위해 새를 파는 곳이 많다.
가는 건지 선 건지 알 수 없이 느린 버스. 바퀴에 날린 붉은 흙이 얼굴에 날리면 눈을 질끈 감았다가 옆에 있는 닭이 날개라도 치면 한 번 더 눈을 질끈 감는다. 이렇게 동물들과 어우러져 함께 가다 보면 30분의 여정이 정말 짧게 혹은 길게 느껴진다.
그리고 신기한 건 분명 더 이상 자리가 없는데도 버스 기사 아저씨는 계속 손님을 태운다는 것이다. 더 이상 탈 자리가 없는데 손님이 타면 또 앉을자리가 생긴다. 그러다가 정말 자리가 없는 날은 버스 뒤 난간에 서서 머리에 짐을 이고 가는 사람도 많다. 그렇게 타고 서고 하면서 버스가 움직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작은 버스에 짐도 싣고 사람과 동물이 타고 갈 수 있다는 게 미스터리다.
사진출처: 사단법인 굿파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