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I. Tchaikovsky - Piano Concerto No.1 in B-flat minor, Op.23
객석의 조명이 꺼지고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단원들이 입장했다. 대부분이 노장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였다. 내 앞에 바로 보이는 백발의 여자 바이올리니스트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기품 있었고 공연 내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번 공연은 추가로 합창석까지 오픈을 해서 관객이 무대를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였다. 꽉 찬 관객석에서 들려오는 환영의 박수에 단원들은 벅찬 눈길을 보냈다.
그리고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역사상 최초의 수석 객원 지휘자인 정명훈, 오늘의 협연자 조성진 입장.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이 시작되었다. 눈물이 핑 돈다. 아트센터인천의 음향이 좋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렇게 밀도 있을 줄 몰랐다. 심장을 부여잡으며 호흡을 가다듬는 사이에 조성진의 피아노가 강렬하게 시작한다.
익숙한 곡일수록 레코드가 아닌 생음악으로 들었을 때 실망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 이번 공연은 오케스트라, 각 악장의 솔리스트, 협연자, 지휘, 관객 이 모두가 조화로웠다.
1층 A블록 5열 6번. 조성진의 뒷모습에서도 그가 끊임없이 단원들과 소통하는 모습이 선명했다. 드레스덴 단원들은 본인과 함께 협연하는 조성진의 연주를 처음 듣는 듯이 귀 기울였고,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따뜻해서 단원들의 모습만 보아도 이 무대와 협연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3악장 후반부에서 마지막으로 치달을 때 지휘자 정명훈은 아예 뒤를 돌아 조성진을 응시했다. 그리고 계속 미소를 보냈다. 젊은 시절 자신이 연주자였던 때를 그리워하는 듯, 그리고 자신이 쳐다보는 줄도 모르고 건반 위를 달리는 젊은 조성진이 자랑스럽다는 눈빛이었다.
조성진을 보던 정명훈이 갑자기 단원들을 향해 돌아서고 마무리를 향해 달려간다.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그리고 협연자가 한 템포 느린 너울이 되고 잠시 느려진 너울들이 더 큰 물결이 되어 성난 파도처럼 몰아치며 끝. 관객들이 기립하고 커튼콜이 계속되었다. 앙코르는 브람스-8개의 피아노 소품, op.76, 제2번 카프리치오. 큰 파도가 밀려간 자리를 잔잔히 채우는 예쁜 소품곡이 앙코르곡으로 딱이라는 생각을 하며 2부를 기다렸다.
Intermission(20 min)
브람스 교향곡 제1번 c단조, op.68 (45 min)
Symphony No.1 in c minor op.68
475년의 독일의 유서 깊은 오케스트라이지만 빈필처럼 익숙히 들어온 교향악단이 아니었기에 아마 조성진과 정명훈이 아니었더라면 이 보석 같은 연주를 듣지 못할 뻔했다.
교향악단의 연주를 들으며 10명 내외의 실내악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지 의문이었는데 공연이 끝난 후 조성진의 인터뷰를 리뷰하며 무릎을 탁 쳤다. 조성진은 "드레스덴은 현악기가 벨벳 같은 깊은 소리를 낸다"라고 했다. 정확한 비유였다. 벨벳같이 깊고 깊은 소리들이 하나로 모아져 끝없이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다. 그 느낌이 마치 실내악에서 느낄 수 있는 부드러움이었고 그게 바로 드레스덴의 저력이었다.
(지금 글을 쓰면서 정명훈이 지휘한 서울시향의 브람스 교향곡 1번을 듣고 있으니 어제와 비슷한 결이 느껴진다. 지휘자 정명훈이 원하는 소리의 색이 드레스덴에게도 전해졌기 때문이겠지.)
특히 2악장에서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의 솔로 부분이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바이올린이 플르트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마지막까지 애잔함을 채워나가는데 끝부분에서 마지막 한 음을 여러 번의 활긋기로 이어가던 그 소리가 아직도 귀에 밟힌다.
이분이 바로 2악장 바이올린 솔리스트다. 한동안은 그 음색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4악장을 모두 마치자 모든 관객이 기립하고 뜨겁게 환호한다. 단원들도 이 순간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다. 정명훈이 커튼콜 들어서자마자 바로 시작된 앙코르는 브람스의 헝가리무곡 제1번 G단조. 노련미가 보여준 아주 적당한 쇼맨십일 것이다.
이런 절정의 감동이 오르가슴이라는 나의 말에 친구들은 웃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조성진에 감동하고 드레스덴에 취해 끝났다는 말이 가장 정확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