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부터 흰머리가 정말 많았다. 다행히(?) 머리 뒤통수 안쪽에 자리 잡고 있어서 머리를 묶거나 미용실에 가기 전에는 티가 나지 않았다. 미용실 원장님이 뒷거울로 내 흰머리를 비춰주지 않는 이상 내 눈으로는 어느 정도 희끗한지 알 길이 없었다. 어쩌다 머리에 흰머리가 보일 때면 친구들이 나를 앉혀놓고는 한가닥에 10원씩 달라며 뽑아준 시절이 있다 보니 흰머리가 늙은이의 상징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는 것 같다.
그렇게 학창 시절 내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던 흰머리들은 오히려 20대에 들어서자 싹 사라졌다. 미용실에 갈 때마다 항상 내 뒤통수에 매달려 있던 흰머리들의 안부를 묻는 게 내 일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다들 한가닥도 안 보인다고 하기 시작했다. 정말? 그 많던 아이들이 다 사라졌다고?
어안이 벙벙해하는 내 모습을 보고는 미용실 원장님들은 잊지 않고 축하해 주셨다. 학창 시절 스트레스가 풀려서 그런 거라며 잘됐다고 말이다.
학창 시절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대학 4년은 나의 학창 시절에 포함시키기에 조금 부끄럽다. 대학교 입학식날부터 졸업할 때까지 정말 잘 놀았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그만큼 놀 수 있을지 의문일만큼 몸과 마음을 불태워 청춘을 즐겼기에 후회는 없다. 그리고 그 후회 없음의 결과는 흰머리의 소멸 아닌가 싶었다.
마흔을 기다렸다
다시 흰머리가 난다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친구들이 흰머리를 염색하러 간다고 할 때마다 내 흰머리는 언제 보일지 은근히 기대했다면 변태 같은 걸까. 그런데 나는 희끗희끗해진 나의 모습이 궁금했다. 별 큰 계획 없이 까르페디엠을 실천하며 살았지만 항상 마흔을 기점으로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왔었다.
<내가 꿈꿔온 마흔>
+ 책을 읽는 나 -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은 마흔에 다시 읽어보겠다며 미련 없이 책장을 덮었다. (이참에 북클럽 책으로 시작해 볼까)
+ 영어로 말을 하는 나 -부끄러움보다는 두둑한 배짱이 생겨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길
+ 춤을 추는 나 - 20대에는 체력이 달려 점프동작 하나를 완성하지 못했지. 체력을 키우자
+ 글을 쓰는 나 - 최소한 라디오 오프닝보다는 긴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처음에 글을 어떻게 쓰기 시작했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딱 오프닝 정도의 길이에 모든 글이 끝나버리는 마법은 이제 안녕)
+ 인터뷰를 하는 나 - 좋은 사람들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내공이 생기기를.
+ 엄마가 된 나 - 마흔에는 강인한 엄마가 되어 있기를 바랐다.
+ 아내가 된 나 - 나이를 먹을수록 지혜로운 여인으로 성장하기를
그리고 올해, 꽉 찬 마흔이 되었다.
몇 달 전부터 정수리께에 흰머리가 보인다. 그리고 얼마 전 지독하게 앓아눕고 나니 한가닥 두 가닥 더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까지는 반갑다? 그리고 이제야 내가 되고 싶었던 마흔의 모습을 하나하나 점검하게 된다.
비록 미완성이지만 도전하면서 행복했다고 자답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지난해 현대 무용 레슨을 받다가 마루 바닥에 쿵 떨어져서 엉덩이가 다 멍들었지만 너무나 행복했다. 영어에 대한 편견도 조금 깨졌는데 전 세계 아줌마들은 자식 이야기라면 언어에 상관없이 수다 떨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A4용지 반 장보다 긴 글을 쓰고 있으니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한다.
아직 못다 한 나의 리스트는 또 시작하면 된다. 꽉 찬 마흔을 시작으로 계속 도전하면 지금보다 더 반갑게 쉰을 맞이할 수 있겠지.
p.s 흰머리가 더 나면 어떤 색으로 염색을 해야 할지 조금씩 고민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