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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tip Jul 10. 2023

테니스를 다시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우리 집 아파트 바로 앞에 테니스장이 있었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어린이 발걸음으로도 열 걸음 안 되는, 말 그대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코트가 있었다. 테니스를 배우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조건을 갖춘 터라 4학년때부터 2년 정도를 배웠다. 포핸드, 백핸드, 발리 등등  처음 해보는 테니스는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열심히 레슨을 받았다.

 

그런데 복병이 나타났다. 가슴이 봉긋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손에 이끌려 속옷가게에 가서 치수를 재고 맞는 브래지어를 고르며 눈앞이 캄캄해졌다. 지금이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한참 호기심이 왕성한 남자애들이 학교에 브래지어를 하고 다니는 여자애들 뒤에서 브래지어 끈은 당겼다가 놓는 장난을 치곤 했다. 하지 말라며 등짝 스매싱을 날려보기도 하고 울어봐도 소용이 없었다. 잊을만하면 한 명씩 새로 브래지어를 하고 나타나는 여자친구들 덕에 교실은 아수라장이었고 나도 그렇게 당한다 생각하니 좋을 리가 없었다.


가슴이 나오기 시작하자 테니스를 칠 때마다 옷이 달라붙으면 그렇게 신경 쓰일 수 없었다. 게다가 코치님은 남자였다. 테니스공 치랴, 달라붙은 옷 떼어내랴 왜 정신이 없는지 말하기 어려웠다. 이런 내게 코치님은 집중을 안 한다며 팔 벌려 뛰기를 시켰고, 팔 벌려 뛰기를 할 때도 옷매무새가 신경 쓰여 그것도 잘 안 됐다.


테니스가 점점 재미없어지기 시작했다. 괜히 코치님이 미워서 째려보거나 울음 나오는 걸 들키기 싫어서 고개를 숙이면 반대편에서 코치님의 호통이 들려왔다. 다시 팔 벌려 뛰기.


약 2년간 테니스레슨 동안 후반에 들어서는 거의 혼만 났으니 그만두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막판에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그랬는지 몇 년 전부터 다시 테니스붐이 시작됐는데도 나 혼자 시큰둥했던 것 같다. 주변에서 같이 치자고 해도 전혀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건물 간판을 보고 애들이 테니스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큰 아이가 11살이니까 딱 내가 시작한 나이다. 애들만 레슨 시켜놓고 나는 코트 밖에서 앉아 있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공을 넘기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손발이 근질근질했다. 비록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그만두긴 했지만 바로 앞에서 라켓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을 보니 안 하고는 못 배기겠더라.


그날 테니스를 등록했다.

외모에 신경 쓰던 초등학생도 아니고 이제는 뭐든지 시켜만 주면 열심히 할 수 있는 아줌마가 되지 않았는가. 아직은 주 1회 초보이지만 언젠가 아마추어 대회를 나갈 거라는 나 혼자만의 김칫국을 마셔본다.


오늘도 열심히 공을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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