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mtip Feb 06. 2024

운동하러 갔다가 견인차를 부르게 될 줄이야

며칠전이다. 평소처럼 주차를 하고 오늘은 랠리 10번을 성공시키자는 목표를 세우며 시동을 껐는데 멀리서부터 청소아저씨가 손짓,발짓으로 난리가 나셨다.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내려보니 차에서 기름이 새서 들어오는 입구부터 바닥이 기름투성이란다.


말 그대로 차 바닥에서 기름이 폭포수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주차장 바닥은 비가 샌 것처럼 온통 기름으로 흥건하고 혹시 몰라 주차장 입구로 나가보니 차가 지나온 길에 길게 기름자국이 나있었다. 며칠 전 공업사에서 수리를 받았는데 문제가 있는 건가 싶어 전화를 해보니 혹시 차키를 차 안에 두었으면 당장 빼라고 하시곤 견인차를 불러 공업사까지 오라고 했다.


테니스 코치님께 전화를 걸어 상황을 말씀드리니 주차장에 오셔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두셨다. 보험 견인차를 신청하고 기다리면서 아무래도 냄새가 너무 심하고 불이 날 수도 있으니 기름을 닦아내자는 결론이 나왔다. 청소아저씨는 재활용품통에서 수거된 옷들을 가져오시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시간이 얼마가 흘렀을까. 견인차가 지하추자장으로 들어오고 난생처음 견인차를 타고 공업사로 갔다. 정신 차리고 보니 아침에 바로 테니스 치겠다고 잠옷대신 입고 잔 얇은 트레이닝복이다. 이 차림으로 있다가는 얼어 죽을 것 같아 아빠에게 sos를 요청했다. 이래저래 하니 공업사로 가장 두꺼운 패딩을 들고 출동하시오.


서예를 할 때는 원래 전화를 받지도 않고, 받는다 해도 어떻게든 핑계를 대서 밖에 나오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아빠였지만 마침 쉬는 시간에 연락을 하기도했고, 누가 봐도 중대한 상황이었기에 아빠는 군말없이 공업사로 왔다.


아빠와 만나 공업사로 들어가면서 직원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고민고민 했는데 우려와는 달리 공업사에서는 밸브를 교체하면서 실수가 있던 것 같다며 잘못을 인정했다. 부품을 교체할 동안 기다리는 일만 남았는데 대식가인 나와 아빠는 점점 배가 고프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꼬르륵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 오겠다는 아빠는 근처에 직원식당을 알아왔다고 자랑했고, 나는 맛보장된 거 아니냐며 덩달아 신났다.


그렇게 우리 부녀는 직원 아저씨를 따라 인근 공장인부들이 애용한다는 한 공장식당에서 배식판을 가득 채워 모처럼만에 특식을 먹었다.. 공업사 대기실로 돌아오면서 문득 어제 채운 기름값부터 주차장 청소비 등등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배가 부르니 머리가 돌아가는 걸까.


믹스커피를 앞에 두고, 오늘 하루 시간을 비롯한 여러 손해 본 것들을 어떻게 보상받을지 열거하는데 아빠가 꿀밤을 한대 날리는 것이 아닌가. 불 나지 않고 안전하게 견인차 타고 여기까지 온 걸 감사하게 생각하라며 말도 안 되는 불평하지 말란다. 청소 아저씨랑 코치님께 박카스 한 박스씩 사다 드리라며 신신당부를 하고는 아빠는 쿨하게 사라졌다.


다음에 고장 나면 그때 더 잘해달라는 아빠의 넉살에 직원들 모두 안심하는 눈빛으로 우리를 배웅했다. 모습에 그날의 모든 긴장이 풀려버렸던 같다.


테니스장으로 오고 가며 아빠의 꿀밤을 생각했다. 알고 보니 나는 그날 기름 철철 흘렀던 그 자리에 계속 주차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테니스를 다시 시작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