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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tip Nov 06. 2024

남편아 미안해

최근에 직장 근처로 테니스장을 옮겼다. 코트가 훨씬 커지고 넓어졌는데 이 말인즉슨  심적으로는 탁 트여 좋은 거고 몸은 더 움직여야 된다는 소리다. 그런데 근 3년간 다니던 코트에 익숙해진 내 몸뚱이는 보이지 않는 어떤 선을 기준으로 딱 거기까지만 뛰고는 습관적으로 멈춘다.


더 뛰세요 더!

랠리 연습을 하는데 내가 계속 듣는 건 계속 다리를 움직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공이 한번 코트에 넘어오면 끝까지 쫒아가라는 말.


안다. 머릿속으로는 뭘 못할까. 저 공이 이렇게 날아오니까 나는 더 가서 쳐야 하는데 우선 바뀐 코트는 거리가늠이 생각보다 어렵고 뛸 만큼 뛰었는데 테니스채 정도만큼 계속 모자라다.


숨은 차오르는데 생각만큼 공 넘기기는 쉽지 않아 더 지쳐간다. 좀 더 다양한 코트에서 연습을 했어야 했는데 후회하면 무엇하나. 어쨌든 나는 테니스를 꽤 잘 치는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30분 정도 일찍 가서 몸을 풀고 다리를 최대한 빨리 움직이며 오늘의 수업을 준비한다.


집에서도 다리 스피드를 위주로 홈트를 하고 있는데 오늘 아침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열심히 화면을 보며 움직이고 있는데 첫째가 "우와! 저 화면에 있는 사람은 진짜 빨리 움직이는데 엄마는 계속 느려!" 라고 말했다.


뭐라고? 나는 화면속도랑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그러고 나서 다시 확인해 보니 확연히 내 속도가 느렸다.


그래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노화? 운동부족?


흠... 아니야. 문제의 시발점을 찾았다.

바로 남편이다. 부엌에서 물을 마시고 걸어오는 그의 모습을 보니 정말 느긋하고 천천히 걷고 있다.

문득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동생이 한 말이 떠올랐다. 내가 예전보다 말도 느려지고 걸음도 느려졌다고 막 웃던 기억.


참고로 남편은 모든게 느긋하고 느린사람이다.


그래 같이 살다 보니 별 걸 다 닮는구나.

남편은 당분간 테니스를 칠 때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


우리 같이 걷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

내 테니스실력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니 이해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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