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기록

부산 서면 1박 2일-첫 번째

힙하다 힙해!

by namtip

KTX 역방향의 어지러움 덕분에 부산역에 비틀비틀 내렸다. 온다던 비는 아직이었고 대신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기지개를 켜며 사람들이 역에 내리고 사투리도 함께 쏟아낸다. 아이들은 부산 사투리를 마음껏(?) 들을 생각에 들떠있었는데 직접 들으니 신기했나 보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설렘을 전했다.


기차역 광장에서 바로 산이 보이길래 "바다보다 산을 먼저 보네"라고 중얼거렸더니 "부산이 산이 많아서 부산이야"라는 남편의 아재 농담이 돌아왔다. 풋 하고 웃다가 "진짜 아니지?"라고 다시 물었던 나. 아무튼 산 등성이를 따라 위에서 아래로 집들이 죽 길게 뻗어있는 모습은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생경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로 향하면서 꼭 해야 할 일은? 택시 아저씨에게 맛집 물어보기.

워낙 무뚝뚝하게 말씀하셔서 물어볼지 말지 고민을 좀 했지만 현지인이 추천하는 맛집으로 가고 싶은 욕망이 부끄러움을 이겼다.


"거기 호텔 옆에 서면시장이 있어요. 그 안에 송정 국밥이라고 그기 가시면 됩니다."

"회요? 회는 광안리 가야 되는데 지금 무슨 행사한다고, 엄청 붐벼요. 오늘은 가면 큰일 납니다."

"순대? 아까 그 송정국밥에서 조금 달라해서 먹어보면 되지 뭐, 부산에서는 순대 쌈장에 찍어 먹는 거 알죠?"


받아쓰기하듯 아저씨의 추천 맛집들을 핸드폰에 적으며 뿌듯한 마음으로 호텔로 향했다.


서면시장으로 가는 길


(1) 힙합바지와 통바지족들을 만나다.

택시에서 내려 아저씨가 알려주신 국밥집을 찾아 나섰다. 시장을 향하는 길에 비가 오기 시작했다. 배고파서 손이 덜덜 떨리는데도 구경하는 건 잊지 않았다. 여기저기 보이는 보세 옷집들에 사람들이 가득하고 비가 오는데도 20대 젊은이들이 쏟아져 나와 길을 활보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 때 입었던 통바지와 힙합바지를 끌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으니... 믿기지가 않아 힙합 소녀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간 뒤에도 그 뒷모습을 계속 쳐다보는 나. 그 힙합소녀 이후에도 허리부터 발목까지 일자로 넓은 바지를 입은 통바지족들과 큰 티셔츠를 입고 어기적 걷는 아이들이 이곳저곳에서 출몰했다.


소싯적 나와 친구들의 모습을 한 젊은이들이 계속 지나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어머머, 어머머!" 하며 연신 놀랐다.

아무것도 모른 채 우산을 들고 걷는 남편에게 쟤네 좀 보라고 우리 때 옷 입었다고 말하자 본인은 입은 적 없다고 딱 잡아뗀다. 훗. 그럴 리가. 잊고 싶은 과거겠지.


(2) 오락실 펌프족과 방탈출 카페

국밥을 먹으러 가는 길은 요지경이었다. 이미 90년대 패션에 놀란 나는 오락실에서 크롭티를 입고 펌프를 하는 아이들을 보고는 거의 정신줄을 놨다. 큰 오픈형 오락실이 길가에 있는 것도, 그 안에서 펌프를 하는 사람들도 오랜만에 본다. 나도 한때 펌프를 하며 발놀림을 뽐내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올라가는 화살표가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는 건지 눈만 돌아가기 바빴다.


오락실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도 정말 배가 고팠나 보다. 한 바퀴 쓱 오락실을 둘러보더니 밥부터 먹자고 하며 나왔다. 사실 나는 우산 쓰랴 젊은애들 구경하랴 정신이 없었는데 첫째가 "우와~! 엄마! 여기는 방탈출 카페가 왜 이렇게 많아? 나도 탈출하고 싶어!" 해서 알았다. 고개를 드니 곳곳에 방탈출 카페 천지다. 흠... 이걸 어떻게 한다? 우선 오락실은 허락하지만 방탈출은 스무 살이 되면 같이 가자고 꼬셔보니 먹혔다. 생각해 보니 그땐 내가 쉰이 넘었네.


(3) 드디어 도착. 송정국밥

눈 돌아가는 서면 젊은이의 거리를 지나 입구에서부터 구수한 고기국물 냄새가 풍기는 시장으로 입성.

이제 본격적으로 위가 요동친다. 송정국밥이고 뭐고 입구에 있는 국밥집으로 뛰어 들어가려다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래. 아저씨가 말해준 곳으로 가자. 몇 걸음 더 가서 보이는 송정국밥 간판.


보통 이 정도 식당이면 패스트푸드 보다 빨리 국밥이 나올 거라며 남편과 내가 아이들의 배고픔을 달랬지만 어디 사람일이 생각대로 되던가. 비와 사람이 동시에 쏟아지는 시장 국밥집에서 우리는 예상보다 조금 더 기다려서야 국밥을 만날 수 있었고 기다린 만큼 더 맛있게 식사를 끝냈다. 찹쌀이 들어간 순대는 입에 들어가니 스르르 녹았다.

밥을 먹으니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더 정겹다. 점심 먹으며 저녁에 뭐 먹을지 고민하는 건 참 행복한 일. 저녁은 회를 먹기로 하고 처벅 처벅 우산을 들고 호텔로 향했다.


서면시장안에 송정국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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