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은 무조건 회를 먹어야 하는데 점점 비가 많이 내려 호텔 근처에서 회를 먹기로 했다. 광안리로 못 가는 게 아쉽지만 근처에도 횟집이 꽤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검색해 보니 예쁜 횟집들도 많았지만 내 눈길을 끈 곳은 50년이 넘었다는 동명횟집.
호텔에서 나와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거리라 애들하고 가기에도 좋고 직감이란 게 있지 않은가.
뭔가 느낌이 왔다. 여긴 맛집이라는 걸.
7시 반쯤 가게에 도착했는데 가게 안에 사람이 그득했다. 자리가 없는 줄 알고 우물쭈물 서 있는데 아주머니가 웃으며 "응, 왜 왔어?" 하신다. 회 먹으러 왔다고 하니 그럼 횟집에 회 먹으러 왔겠지 하신다. 뭔가 식은땀이 살짝 났지만 저쪽으로 가서 앉으라니 또 우리 네 명은 신나서 발걸음이 들썩들썩한다.
"애들도 회 먹어요?"
"네"
"어우 기특하네, 회도 먹고! 애들 잘 키웠네"
"알아서 내가 주면 되지? "
"네"
우리 애들은 회를 먹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 칭찬을 받아 이미 기분이 하늘로 날아갔고 나는 대답만 했는데 주문이 끝났다.
오징어 숙회, 멍게, 찐 밥 등등. 밑반찬이 나오는 대로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자, 주인아주머니가 지나가다가 또 한마디 거드신다.
"진짜로 잘 먹네."
"오징어 숙회 더 먹을 수 있어요?"
"더 줄까?"
"네!!!!!"
"애들 잘 키웠네"
(그 뒤로 남매는 오징어 숙회를 한 접시 더 먹고 싶었으나 숙회 같은 고급 반찬은 한번 리필 후에 더 먹기는 미안한 밑반찬이라는 걸 알고 난 후 매우 실망했다.)
부산 소주 주세요.
남편과 나 모두 부산에 대한 슬픈 추억이 있는데 남편은 해운대에서 만나기로 했던 친구(계속 동아리 친구라고 하는데 여자 친구 아니면 썸 타던 사람이었겠지?)가 연락이 안 되어 기다리다 기다리다 혼자서 바닷바람을 쐬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고 하고 나는 대차게 차이고 당시 부산에 있던 친구네 와서 자갈치 시장 횟집에서 울었었다. 20년 전 시련의 아픔을 달래주던 부산소주 '시원'.
그런데 이번에는 '대선'이다. 20대 슬펐던 중생들이 결혼을 해서 다시 기분 좋게 소주잔에 술을 따르니 뭔가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부산하면 떠오르던 시련의 아픔이 이번 여행 덕분에 조금은 치유되는 느낌이다.
돌아오는 KTX에서 아이들이 그랬다. 이번 부산 여행에서 자기들은 횟집이 제일 좋았다고 말이다.
잘 먹기만 해도 특급칭찬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니 또 가고 싶긴 하겠다.
그리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문득 깨달았다. 말끝마다 애들 잘 키웠다고 말하는 주인아주머니의 칭찬에 나도 위로받았다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