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참 귀엽다. 당근 라페.
"만약에 셋째를 낳는다면 태명을 '라페'로 할까 봐" 당근 라페를 우적우적 씹으며 씩 웃었다. 남편은 그러기엔 너무 당근인데 괜찮겠냐고 했다.
당근라페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 설명하려면 잠시 3년 전 제주로 가야 한다. 3주간 머물렀던 민박집 근처 빵집. 바닷가로 가는 길에 보이던 길가 메뉴판에 잠봉뵈르라고 쓰여있었다. "좜봉뵈루 주세요." 애들과 장난스레 발음 굴려 사들고 온 프랑스 음식은 내 입맛에 딱 맞았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너무 자주 가서 사장님이 나를 싫어할까 봐 잠시 제주에 놀러 온 동생에게 매일 그 잠봉뵈르를 사다 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고백하자면 나는 한놈만 패는 버릇이 있다. 맛있으면 한놈만 팬다. 지금도......
잠봉은 돼지다리살로 만든 햄이고 뵈르는 프랑스어로 버터다. 햄과 버터를 바케트에 넣어서 씹기만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음식. 그때 제주에 있으며 개인 SNS에 잠봉뵈르를 안 먹어 봤으면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헛소리 포스팅을 했던 날. 도대체 네가 먹는 잠봉뵈르가 무엇이냐는 원성과 궁금증이 넘치는 친구들의 댓글이 달렸었고, 덕분에 나는 카페에 가서 또 한 번 사진용 잠봉뵈르를 사가지고 왔었다.
그리고 제주 살이가 끝나던 날. 마지막 잠봉뵈르를 꼭 껴안고 집에 와서 와인과 함께 삼켰다.
그렇게 잠봉뵈르에 빠진 이후 집 근처 잠봉뵈르 맛집을 헤매다 당근 라페를 만나게 된 것이다.
잠깐 말했지만 나는 한놈만 잘 팬다. 그날은 카페 사장님의 추천으로 새콤달콤 바케트 위에 올려진 당근 라페를 먹게 되었다. 한입 깨무는데 아삭아삭 씹히는 당근의 풍미. 눈이 튀어나올 듯이 남편을 노려보며 이거라고 말했었다. "잠봉뵈르야 미안. 당분간 나는 당근 라페만 찾을 것 같아." 정말로 그날 접시에 있던 잠봉이와 뵈르에게 정식으로 사과 아닌 사과를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새벽배송으로 당근을 시켰다. 아주 많이.
당근 라페는 쉽게 말하자면 무생채 같은 거다. 당근을 채 썰어 소금 솔솔 뿌리고 설탕도 아주 조금 뿌려서 절인다. 취향껏 소스를 버무리지만 나는 홀그레인 머스터드를 듬뿍 넣고 올리브유를 두른 스타일을 좋아한다. 그러고 나서 반찬통에 담아 두면 하루반에서 이틀까지 두고 먹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고수를 무척 좋아하는데 고수를 넣으면 동남아 스타일로도 변신한다. 그때는 홀그레인 머스터드보다는 월남소스로 무침을 해도 맛있었다.
당근 라페는 여름에 딱이다. 더운 여름에 음식 하기 싫을 때 간단하고 예쁜 상차림이 된다. 식빵을 살짝 구워 얹어서 먹어도 되고, 한식 반찬으로도 잘 어울린다. 바게트를 좋아한다면 바케트 위에 올려 먹는 것이 정석.
자. 이제 당신 차례. 당근이 집에 있다면 채를 썰어보시죠!
P.s 당근라페 이야긴데 결국 잠봉뵈르가 주인공인 느낌이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