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mtip May 28. 2023

정확히 두 시간을 울었다.

첼리스트 한재민과 룩셈부르크 오케스트라 협연이 있던 날이다. 처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가게 되어 나도 들뜨고 아이들도 신났다.


그런데 "클래식 공연이니까 우리 조금은 멋지게 입고 가자!"라고 내뱉은 게 화근이 될 줄이야.

치장하기 좋아하는 딸이 평소 신지도 않던 구두를 찾기 시작했다.


"엄마 뒤에 리본 달린 구두 어딨어?"


공연 보러 출발하기 3시간 전. 있긴 어디 있어. 약간 작아져서 친구네 딸한테 물려준 걸 잊은 모양이다.

이걸 말해줘 말어. 그래. 솔직한 게 최고다 싶어 A에게 네가 직접 쇼핑백에 넣어서 물려주지 않았냐고 말하니 그런 적도 없다고 한다. 기억이 안 난다는데 어쩌랴. 말문이 막혔다.


흠.. 그럼 다른 구두를 찾아봐야 하는 데 있을 리가 없다. 죄다 운동화뿐이다. 오늘은 엄마도 구두 안 신고 봄 느낌으로 흰색 단화를 신고 갈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달래려는 순간 둘째의 울음이 터졌다.


시계를 보니 그때가 정각 5시. 엄마는 직감할 수 있다. 이 울음은 달랜다고 쉽게 그치지 않을 거라는 걸 말이다.


둘째가 울면서도 배가 고프다고 팬케이크를 해달라고 했다. 집이 떠나가도록 흐느끼는 소리에 정신줄을 놓은 상태라 알겠다고 하며 식빵을 꺼냈다. 내가 왜 식빵을 구웠을까. 가뜩이나 구두 때문에 서러운데 식탁 위에 올려진 식빵을 보고 숨이 차도록 울어재낀 다.


6시 반. 이 와중에 공연에 늦으면 안 되니까  계속 시간을 확인한다. 7시에는 출발해야 되는데 어쩌지.

아이의 울음은 그칠 줄을 모른다. 물려준 구두가 마지막이었나 보다. 아무리 신발장과 창고를 뒤져봐도 구두처럼 생긴 건 없다.


"엄마가 내일 구두 사줄게. 오늘은 운동화 신고 가자."

더 이상 울 힘이 없는 건지 내일 구두를 살 수 있다는 말에 위안을 삼은건지 아이는 꾸역꾸역 울음을 삼켰다.

공연장에 도착하자 기분이 좋아진 초록의 그녀. 생각해 보니 운동화도 괜찮다고 했다.


7시. 드디어 딸아이의 울음이 멈췄다. 액셀을 밟아 공연시작 20분을 남기고 도착!


그날 저녁 아이는 잠들면서 너무 엄마를 힘들게 한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실눈을 뜨며 이렇게 울었는데도 정말 구두를 사줄 거냐고 물었다. 구두 한켤레 없는건 심했다며 내일 꼭 사러가자고 하니 천사같은 얼굴로 잠이 든다.


다음 날 새벽 6시. 안방으로 달려온 둘째가 나를 깨운다.
"엄마! 구두 사러 가야지!"



사진: photoAC







  

매거진의 이전글 발 다른 자매의 몹쓸 친밀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