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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Jun 02. 2023

변심을 들켜버렸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버블 파티에 참여한 것이 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날 내 변심 탈로났다.






내 맨발이 그의 운동화 속으로 서서히 가 닿았다.

그곳은 약간 축축하고 공기가 퀴퀴했다.

일부러 냄새를 맡아보지 않았지만 맡아졌다.

이제 그의 운동화에 그대로 노출된 내 발은 점점 썩을 것이다.

바이러스에 노출 급격되어 흑화 되던 만화 속 캐릭터들이 떠오른다.

미안하다.

발아.

지못미.




그는 어려서부터 양말 신기를 싫어했다.

발목 밴드의 조임이 답답하고, 발이 숨 쉬지 못하는 것 같다나.

암튼, 어딘가 실내 공간에만 들어가면 양말을 벗어 던졌다.

그래도 외출 시 운동화를 신을 때는 양말을 신던 그가 코로나 시기에 변했다.  

외출 없이 집에만 있으면서 매양 내복과 맨발로 하루를 보내는 날이 늘었다.

양말의 속박 없이 자유로운 발가락의 움직임이 좋았는지 이후 양말 거부가 심해졌다.

 

그래도,

그랬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말 안 신고 운동화는 신지 말았어야 했다.

평소 잔소리 없으면 발도 잘 안 닦는 녀석이 양말 없이 운동화를 신는 건 참았어야 했다.

아들의 범죄 행위(공기오염죄, 독가스살포죄 등을 적용할 수 있겠다)를 처음 눈치챈 건 어딘가로 향하며 운전하던 때였다.

어디선가 참을 수 없는 구린내가 뇌까지 침입했다.

이는 거의 동시에 그와 같이 뒷자리에 있는 딸에게서 도달했는지 비명으로 반응했다.

차 안은 혼란의 도가니였는데 혼자 태평한 사람이 있었으니 아들이었다.


뒤늦게 상황의 엄중함을 느꼈는지 의아하다는 듯 냄새나냐고 되묻는 녀석.

그리고는 자기 발을 들어 굳이 깊은 호흡으로 킁킁킁 냄새를 탐색했다.


좀 난다.
양말을 안 신어서 그런가












다양한 놀이가 가능한 유명한 키즈 캠핑장을 갔던 5월의 주말

일찍부터 놀이터, 방방장, 수영장까지 두루 챙겨 놀고 빠지지 않고 버블파티를 즐기러 온 가족이 출동했다.

아이들은 우비로 무장한 채 놀고 우리 부부는 한발 뒤에서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들아, 넌 뭘 신고 온 거니?

아들이 크록스를 두고 운동화를 신고 온 것이 아닌가.

행사장에서 우리 사이트까지는 꽤 멀었고 이제 곧 버블파티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남편은 엄마 슬리퍼를 신고 놀면 되겠다며 일이 쉽게 해결되었다며 좋아했다.

내 슬리퍼를 아들에게 주면, 그럼 나는?

내 발은?

 

다시 놀 수 있게 된 기쁨에 아들은 역시나 맨날로 신고 있던 운동화를 한 개씩 툴툴 던져 벗었다.

그리고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슬리퍼에서 나를 몰아냈다.  

아들의 운동화를 신느니 차라리 맨발로 있자고 결심하던 그 순간 아들은 쓸데없이 친절하게 다가왔다.  

벗어던진 자기 운동화를 가지런히 모와 내 발 앞에 내려주었다.


툭툭!

쪼그리고 앉아 정강이에 신호를 주며 해맑게 '엄마 이거 신어' 하고 올려다 보는 아들

아들의 호의를 무시하지 못하고 내 말을 내밀었다.


내 맨발이 그의 운동화 속으로 서서히 가 닿았다.

그곳은 약간 축축하고 공기가 퀴퀴했다.

일부러 냄새를 맡아보지 않았지만 맡아졌다.

이제 그의 운동화에 그대로 노출된 내 발은 점점 썩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틀켜버렸다.

표정이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투명 케이스처럼 속을 다 비춰버렸다.

어려서는 똥만 눠도 사랑스럽다던 엄마는 지금 아들 신발을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아들은 잠시 찡그리더니 이내 버블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순간 더 놀란 건 나다.  

아들을 향한 내 변심과 마주하고 당황하고 있었다.






아들은 강한 녀석이다.

놀라운 자기애를 지녔다.

엄마의 운동화 거부 정도로 상처를 받지 않았을 것을 믿는다.



(증빙자료↓)

 

 




다만 아들을 향한 사랑이 변했음을 나 스스로 반성한다.

요즘 아이를 너무 평가하고 맘에 안 들면 지적하는 일이 늘었다.

정말 사랑이 변한 건가 싶다.

조건 없이 지지하고 응원하던 마음이 자꾸 작아진다.

성과를 바라고 내 기준으로 기대하는 마음은 자꾸 커져간다.



축축하고 퀴퀴한 230mm  공간 안에서 찜찜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버블 파티를 즐기는 아들을 본다.

그리고 아들에게 (안 하지는 못하겠고) 잔소리를 줄여야겠다고 반성문을 읊조렸다.

그 반성문에서는 아주 구린내가 난다고 한다.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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