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부터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고 있다. 시작하기까지 망설임이 있었던 이유는 20년 전 내가 쏟아부었던 말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생이 되어 푸릇푸릇한 생기를 머금고 성당에서 교리교사로 활동하던 시절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 있었다. 그중 남사친이 사회복지과를 다니고 있었고 실내건축과를 다니는 나는 충고랍시고 주접을 떨었다. (그 당시 실내디자인은 TV영향으로 인기가 많은 직업이었다.
사회복지사? 박봉에 그 월급으로 누굴 고생시키려고 다른 직업 알아봐
매주 토요일 만나는 친한 친구라는 명목으로 거침없이 그런 조언을 했었다.
"솔직히 말해서 힘들고 돈도 적고 너 1급도 따기 어려운데 어쩌려고 그래? 나중에 결혼해서 부인 고생만 시키지 말고 다른 거 찾아봐."
솔직하지 말았어야 했다. 사회 경험도 없는 동갑내기 친구에게 할 소리도 아니고 누군가의 직업을 평가할 위치도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남사친은 사회복지사로 일을 하면서 1급 시험에 도전했고 당당하게 합격했다. 당연히 박봉이었고 주말에 스냅사진 기사 알바도 하면서 성실하게 가정을 꾸려나갔다. 몇 년 만에 성당에서 만난 친구는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소로소로 잘 지냈어? 아이들은 잘 크고? 카페 한다고 이야기 들었는데 한번 못 가봤네"
"항상 똑같지. 카페는 음.. 노코멘트할게 한번 놀러 와. 너는 어때? 일은 안 힘들어?"
"응. 괜찮아" ( ^_______^) 일하는 거 뭐 어디든 똑같지.
친구는 20년 전처럼 너털웃음을 보이며 잘 지낸다고 했다. 항상 그 친구를 볼 때면 마음속 미안함이 자리 잡았고 성당 여자친구에게 그때의 일들을 고백성사했다. 그때 나 잘랐다 말했는데 내가 이 공부를 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니 궁금한 거 물어보지도 못하겠어.
올해부터 친정엄마가 일하는 게 힘에 겨워 보였다. 몇 년 전부터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들려주신 이야기는 삶에 대한 생각도 많았고 죽음과 나이 들어 요양원 생활을 어떻게 하나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어르신들이 아이 같다며 일하는 게 괜찮다고 했다.
엄마는 요양원에 갈 수 없다
엄마는 20년 넘게 당뇨병을 앓고 계신다. 배에 부착한 기계에서 인슐린이 나와 시간에 맞춰 약이 들어가기도 하고 밥을 먹고 나서 버튼을 누르면 더 많은 양의 인슐린이 들어간다. 부실하게 먹고 인슐린을 넣게 되면 저혈당이 와서 위험할 수 있어 조심해야 하고 저혈당이 오면 오렌지주스나 당을 올릴 수 있는 것을 가까이 둬야 한다. 엄마의 걱정은 치매가 오면 인슐린 사용을 잘 아는 요양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매달 나가는 병원비가 많아 가족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새끼발가락에 티눈이 생겼다며 구두를 신지 못 했다. 여유로운 운동화나 발등이 조이지 않는 투박한 신발들을 신고 다녔다. 당뇨환자는 합병증과 잘 아물지 않는 특성(아스피린 복용으로 피가 잘 응고되지 않는) 때문에 대학병원에서 쉽게 제거를 해주지 않았고 엄마는 병원에서 이제 포기했나 봐 볼멘소리를 하셨다. 다시 예쁜 구두를 신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결혼을 하고 엄마에게 제대로 선물을 한 적이 있었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념일에 하얀 봉투에 돈을 넣어서 드렸던 거 같다. 발이 아프곤 더욱 신발을 사드릴 수 없었는데 그동안 예쁜 구두하나 못 사드린 게 마음에 걸렸다.
엄마에게 받았던 첫 신발
유아세례 받을 때 신었던 하얀색 구두
첫 생일이 되기 전 아자아장 걸을 수도 없었던 그때 엄마는 성당에서 유아세례를 받기 위해 하얀색 원피스와 구두를 나에게 선물해 줬다. 사진 속 나는 혼자 서 있지도 못해 뒤에 엄마가 받치고 있고 유난히 뽀얀 구두는 천사처럼 보이기 딱 안성맞춤이었다. 처음 내 발에 신을 신겨주었을 때 어떤 기분일지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그 기분을 알기에 마음이 두근거린다.
내발이 커감에 따라 사이즈를 바꿔가며 사주었을 테고 장소와 용도에 따라 다양한 신발들을 사주셨다. 신발을 일부러 크게 사주시지도 닳아 떨어질 때까지 신었던 적도 없는 걸 보면 엄마의 사랑과 관심은 끝도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삶의 모든 색 (이미지 출처)
당신의 신발이 되어 드릴게요
아직도 부족한 당신의 딸이 이제야 첫 신발을 준비합니다. 마흔이 되어서야 엄마의 늙음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고 당신의 발에 눈이 멈추어 시간이 더디 가기를 소망합니다. 행여 당신이 치매에라도 걸릴까 그래서 혹시나 도움이 되고자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사용하지 않는 날이 오기를 더 간절하게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