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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Jun 06. 2023

글을 쓰면서 짙어지고 있습니다.



무채색입니다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딱히 나만의 색은 없었어요.

미술시간에 이색 저색 사용하다가 헹궈놓은 물통의 물처럼 탁하지만 색은 아니었어요.

나만의 색이 없으니 딱히 존재감도 없었습니다. 

투명인간까지는 아니고 반투명 정도.
치열하게 나만의 색이 뭘까 생각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무채색의 삶에 대해 고민스러워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순간마다 생에 침투해 오는 간섭들을 내 물통에 넣어 헹궈버리면 색은 없던 일이 됩니다.  

그렇게 고유한 색없이 살아왔습니다. 



묽었습니다.

뭐든 주어지면 잘하려고 노력은 합니다. 

얼기설기하는 성격은 못돼서 완성도 있게 해내곤 했습니다.

그것이 원했던 일은 아닐지라도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왔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끈끈한 애정을 갖고 매달려지는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해내온 일들은 떠올려보면 대체로 주르륵 흐르는 묽은 농도의 마음만 내 주었습니다. 

끈덕하게 매달려했던 일은 아이를 키우는 일 외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늘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흐리마리합니다

내 마음을 정확히 알지 못하니 늘 말끝을 흐립니다. 

원하는 것을 꼭 집어 말하지 못하는 내 의사는 늘 희미합니다. 

하고 싶은 말, 먹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이 늘 분명하지 못했습니다.

   

남들에게 흐릿한 사람으로 각인된 후에는 좀 편해져서 굳이 또렷한 생각을 요구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 그렇게 돼버린 후에는 더욱 내 마음을 깊게 들여다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속을 알지 못했고, 흐리마리한 채로도 불편하지 않게 살았습니다. 





분명 얼마 전까지는 그러했습니다. 

또렷한 색 없이, 끈적한 애정 없이 흐리마리하던 삶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행복하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늘 다정하고 한결같은 남편과 사랑하는 남매.

항상 곁을 지켜주는 울엄마와 분신 같은 동생들이 있기에 투박하지만 아기자기한 삶이었습니다. 


그렇게 제법 만족하며 살던 내게 글쓰기가 찾아왔습니다. 

사고였을까요? 

운명이었을까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를 찾고 싶어 졌습니다.  



아직은 아무것도 아닌 글이지만, 

글이라는 것을 쓰기 시작한 후부터 그것에 눅진하게 매달리고 있습니다. 

매일 끈덕지게 매달려서 글을 생각하고, 쓰고, 고칩니다. 

그랬더니 흐리마리하던 속마음이 진한 마음의 농도를 타고 올라와 글이 됩니다.  

형체없이 떠돌던 속에 것들이 또렷한 글자가 되어 눈앞에 보여집니다. 

그곳에 담겨진 진짜 생각을 찾아 다시 오래동안 몰입하면서 생각에 색을 입힙니다. 

아직은 온전한 나만의 색은 찾지 못한 탓에 16색 물감통에 든 색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새로운 조색을 시도하지만 실력이 부족해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얼마나 더 걸려야 나만의 색을 찾게 될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분명 나만의 색을 찾을 것을 기대합니다. 

아마도 삶의 짙은 애정이 묻어나는 색일 겁니다. 

  

나만의 색이 기대하며 오늘도 씁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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